달구고 두드리고…전통 방짜유기 脈잇기 외길 6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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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일 이탈리아 밀라노에서‘한국 공예의 법고창신 2014’를 주제로 개막한 한국 공예전에 방짜유기 좌종 18점을 비롯한 전통 공예 장인 21명의 작품 174점을 전시하고 있다. 연합뉴스 |
그는 오랜 시간 전시장 한쪽에 놓인 의자에 앉아 자신의 작품을 둘러보는 외국 관람객의 모습을 바라봤다. 65년간 방짜유기 좌종을 만들어 왔지만 여러 점이 한꺼번에 전시되는 것도, 사람들이 직접 작품을 만져보고 채로 쳐보게 하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종 안에 머리를 집어넣어 종의 울림을 듣는 외국인 관람객의 모습을 신기한 듯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쳐다보던 그는 “감회가 새롭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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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봉주 장인 |
8일(현지시각)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한국 공예의 법고창신 2014’를 주제로 개막하는 한국 공예전에 참여하는 중요무형문화재 제77호 유기장 이봉주 장인(88)의 얘기다.
그는 처음에 전시 참여 제안을 받았을 때 완곡히 거절했다고 했다. “어디 팔려고 작업을 계속 하는 게 아니라 그저 소장용으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몇 년 전 큰 작품을 만들다 무릎 인대가 끊어진 적이 있어 집에서도 반대가 심했다. 그래도 “방짜유기 좌종을 만드는 것은 이봉주 장인만이 할 수 있다"는 주최 측의 설득에 결국 지금 이 자리에 오게 됐다.
1983년 작업 중 제자 실수로
눈 쇳조각 튀어 한쪽 실명
좌절 않고 불꽃 집념의 작업
올해 밀라노 한국공예전 참여
우리 그릇 우수성 자랑
대구방짜유기박물관 개관때
작품 1480점 기증하기도
방짜유기의 고장으로 유명한 평안북도 정주군에서 태어난 이봉주 장인은 1948년서울에 있던 방짜 공장에 입사하면서 이 길에 들어섰다.
그가 만드는 방짜유기 좌종은 1천300℃의 용해로와 화덕을 오가며 단단한 놋쇠를 수천 번 두드리는 지난한 작업의 결과물이다. “달구어진 쇠를 한 번에 메질할 수있는 시간은 30∼50초"에 불과하기 때문에 집중을 요하는 작업이다.
그는 1983년 작업 도중 제자의 실수로 오른쪽 눈에 쇳조각이 튀는 사고를 겪었다. 사고 당시 작업복 차림이어서 수중에 돈이 없었던 데다 주말이어서 병원의 응급처치가 늦어지는 바람에 끝내 한쪽 눈을 잃게 됐다. 당시 주위에서는 “이봉주는 끝났다"는 얘기도 돌았다.
절망하거나 좌절할 법도 하지만 그는 한 달 만에 다시 작업장을 찾았다.
“그냥 마음 편히 갖고 이것도 하늘의 뜻이겠거니 생각했죠. 숙달이 되니까 눈이 두 개든 하나든 똑같아요. 한석봉 어머니는 불 꺼놓고 떡도 썰었는데 제가 하는 작업은 세공이 아니라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실명 후에도 전승자로서 계승활동을 게을리하지 않은 그는 1994년에는 지름 161㎝, 무게 98㎏의 세계 최대 방짜징을 만들었고, 2007년에 개관한 대구방짜유기박물관에 자신이 수집했거나 제작한 유기 제품 1천480점을 기증하기도 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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