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닫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
    스토리
  • 네이버
    밴드
  • 네이버
    블로그

https://m.yeongnam.com/view.php?key=20140721.010150737040001

영남일보TV

대구고 학생 23명의 책쓰기 프로젝트

2014-07-21

양적완화·사형제도·차등벌금제…‘이 친구들 장난이 아니네’
경제·사회·철학 분야 6개 주제에 대해 토론 책으로 만들기
말미엔‘미래일기’실어

20140721
지난 14일 오후, 대구고등학교 한에서 최근 책을 펴낸 토론 동아리 학생들이 사형제도를 주제로 토론을 벌이고 있다. 손동욱기자 dingdong@yeongnam.com

한 권의 책을 통해 지은이는 삶을 정리하고, 독자는 그 삶 속에 스며있는 가치를 배운다. 독서의 중요성을 어려서부터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구교육은 이 지점부터 변화를 꾀했다. 책을 읽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닌, 직접 책을 써보는 것. 학생 저자 10만명을 양성하기 위한 프로젝트는 대구시교육청이 심혈을 기울여 추진하고 있는 핵심 사업 중 하나다. 지금도 가치 있는 삶을 갈무리하기 위한 학생 저자의 펜이 종이 위를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이 남자들, 참 말 많다!

한국 대통령:(격앙된 표정으로) 선진국의 무자비한 양적완화 정책으로 인해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많은 신흥국이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 대한민국은 일본의 무제한적 양적완화 정책인 아베노믹스로 인하여 많은 피해를 받고 있습니다.

일본 총리:어떤 피해를 말씀하시는 거죠?

한국 대통령:아베노믹스로 인하여 일본의 화폐인 엔화가 시중에 많이 풀리고 있는 건 사실이죠?

일본 총리:그렇습니다만.

한국 대통령:화폐가 많이 유통될수록, 그 화폐의 가치는 떨어지는 것이 당연한 사실입니다. 즉, 엔저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엔저현상이 지속될 경우 단기적으로는 수출 부진과 경상수지 악화 등 한국 경기 회복의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며…(중략) 즉, 아베노믹스는 철저히 일본 자국만을 생각한 매우 이기적인 경제정책입니다. (중략) 이건 경제 양극화를 더욱 더 부추기는 현상이란 말입니다.

대구고 토론동아리 학생들이 지난 5월 펴낸 ‘말 많은 남자들의 이야기’에 담긴 내용이다. ‘양적완화’라는 어려운 용어를 연극 대본의 형식을 빌려 이해하기 쉽도록 썼다.

책 속에는 사형제도, 차등벌금제, 담뱃값 인상 등 경제와 사회, 철학 관련 6개 주제를 비롯해 동아리 자체 토론캠프를 통해 나온 세 가지 이야기 보따리, 그리고 봉사활동을 통해 느낀 점을 담담히 풀어낸 글과 ‘10년 뒤의 자신’이 겪게 될 일을 상상해 쓴 학생 저자들의 ‘미래일기’도 담겼다.

◆말이 많다는 건 나누고 싶은 좋은 경험이 많다는 것

이 학교 학생 저자들은 평소 법과 정치, 경제 등 사회 전반의 다양한 이슈에 대해 토론을 하고, 토론재능기부활동으로 연계하는 활동을 이어왔다. 하나의 논제에 대한 토론이 끝날 때마다 이를 기록해 왔다. 이런 과정에서 더욱 확장된 이야기를 풀어놓고 싶은 욕구도 생겼다.

최정숙 지도교사는 “학생들이 단순한 교내 토론동아리 활동뿐만 아니라 각종 토론행사와 봉사활동을 하면서 경험하고 느낀 점들을 남기고 싶어했다”며 “그래서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학생 23명이 고민하고 더 깊게 조사하는 과정을 거쳐 책쓰기에 도전하게 됐다”고 소개했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생애 첫 책 만들기 작업. 이들은 1학기 때는 토론활동을 지속적으로 벌이고, 2학기부터 본격적인 책 만들기 작업에 들어갔다. 저자 수가 많은 데다 준비 기간이 짧지만은 않았지만 처음으로 책을 펴낸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규재군(17)은 “책 속에 원 그래프를 넣을 부분이 있었는데, 편집하는 과정에서 통계치의 소수점 이하를 없애버려 이미지와 맞지 않는 경우가 발생했다. 출판사에서 연락이 와서 알게 됐다”며 “흔히 편하게 읽던 책이었지만 생각과 달리 훨씬 정교한 작업이 요구된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특히 저작권 부분은 이들이 작업 내내 애를 먹었던 부분이다. 최 교사는 “공항 입국장 면세점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인터넷에 있는 상표 이미지를 붙여 넣었는데 바로 출판사의 지적을 받기도 했다. 출처가 분명하지 않은 것들이 많아 출판 직전 부랴부랴 수정했던 게 기억에 남는다”며 멋쩍어 했다.

이진영군(18)은 “책 작업을 마쳐야 할 시기가 하필이면 기말고사 직후였다”며 “당시 편집을 도맡은 친구가 일을 마무리한 줄 알았더니 맞춤법 정도만 체크한 데 그쳐 처음부터 다시 편집작업을 해야 했다”고 전했다.

대학 입시 준비에만도 바쁜 고교생 신분으로 책을 펴내기가 쉽지 않은 건 사실. 이때 온라인의 힘을 빌려 준비과정은 물론 책 속에도 활용했다.

한병찬군(18)은 “스마트폰 소셜 앱을 이용해 각종 행사 등 공지사항을 올리는 식으로 소통했다. 각자 의견을 올리고 소그룹으로 나눠 모임도 가졌다”며 “군위 부계중학교에 봉사활동을 한 경험도 책 속에 포함됐는데, 실제 모습은 글로 전하기 힘들었다. 책을 읽는 사람에게 감동을 생생하게 전하고 싶다는 마음에 QR코드를 넣어 동영상도 제공했다”고 흡족해 했다.

학생 저자만이 쓸 수 있는 재치있는 부록도 실렸다.

류형록군(17)은 “학생 각자가 10년 후 지금을 상상하며 쓴 일기를 책의 마지막 부분에 실었다. 먼 훗날 다시 읽어보면 의미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며 “대개 꿈 이야기와 배우자상 등을 썼는데, 각자의 생각을 알고 나서 적잖이 웃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규재군(17)은 “책을 만들기 위해 글을 쓰면서, 입시에 활용할 목적으로 자기소개서를 쓰는 등 소위 ‘스펙’을 위한 글과는 다르다는 점을 실감했다. 어려운 주제를 조사하며 스스로도 많이 공부할 수 있었다”며 웃었다.

백경열기자 bky@yeongnam.com

기자 이미지

손동욱 기자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영남일보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