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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조선을 지탱한 이데올로기, 貞節

2014-07-26

정절의 역사
부부간 사적 개념인 정절
삼강의 질서로 편입되면서
국가의 이념이 돼버려
과부가 개가하면 “변절자”
환향녀에 손가락질하는 등
가문을 위해, 국가를 위해
여성 억압한 조선의 법도

조선을 지탱한 이데올로기, 貞節
충남 예산군에 있는 화순옹주의 홍문. 조선 왕실 최초의 열녀가 된 화순옹주는 영조의 딸이자 정조의 고모이고 추사 김정희의 증조모로, 당시 영의정 김흥경의 아들인 한신과 혼인하였으나 한신이 38세의 나이로 죽자 식음을 전폐하고 따라 죽었다.
<푸른역사 제공>

‘정절’이라는 두 단어 앞에서 우리가 떠올리는 그림은 비슷할 것이다. 소복을 입고 언제든 몸에 지닌 은장도를 꺼내들 준비가 된 여인이다. 이 여인들은 평생 한 남편만을 섬겨야 하고, 아버지와 남편과 아들의 뜻을 따르는 것이 여자의 도리임을 뜻하는 일부종사(一夫從事)와 삼종지도(三從之道)라는 말을 금과옥조로 여겼다. 이 책은 ‘정절’을 키워드로 조선시대의 내밀한 역사를 살피고 있다.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연구교수인 저자는 정절이 조선시대 역사의 원리를 읽어내기에 유용한 개념임에 착안했다. 남녀 문제와 부부 문제가 결합된 정절은 남녀 모두에게 적용되는 상호 관계성의 개념이지만, 조선에서는 여성 일방의 의무개념으로 전개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몸과 마음을 통괄하는 이 정절 개념은 유교이념의 조선 사회를 이끌어온 사실상의 일등공신이었다. 그리고 신하의 충절과 아내의 정절이 한 쌍을 이루는 유교적인 정치체제에서, 정절은 가족을 유지하고 충절은 국가를 지탱하는 이념이었다.

조선을 지탱한 이데올로기, 貞節
조선 초기에 편찬된 삼강행실도에 실린 그림. 여기에 소개된 열녀 110명은 정절과 관련된 거의 모든 유형을 망라하고 있다.

정절은 부부의 사적 관계를 반영한 도덕 개념이지만, 삼강(三綱)의 질서로 편입되면서 사회 및 국가의 이념과 결부된 공공의 것이 된다. 정절을 지킨 아내를 국가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보상하고, 정절을 해친 아내에 대해 국가가 분노하고 응징하는 것은 무엇 때문이겠는가. 정절은 곧 국법이었다. 이 책은 정절에 내포된 이러한 복합적인 의미와 그것에 숨겨진 비밀을 밝힘으로써 조선시대 여성의 또 다른 진실을 담아내고 있다.

조선을 지탱한 이데올로기, 貞節
이숙인 지음/ 푸른역사/ 424쪽/ 2만원

‘정절’을 키워드로 읽는 조선시대 탐구는 역사의 새로운 진실을 드러내는 작업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국가의 법과 제도는 여성의 몸과 마음을 어떻게 이해했고, 남성 지식인들은 여성에게 어떤 성적 판타지를 투사했는가. 성과 결부된 사건과 사고를 처리하는 정치권력의 태도와 논리는 무엇이었는가. 과부의 개가를 금지한 법과 제도는 어떤 계기와 과정을 통해 성립되었는가. 과부의 개가를 죽은 남편에 대한 배신으로 해석하고, 개가 부녀의 자손을 국가에 대한 잠재된 변절자로 규정하는 심리적·사회적 맥락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보여주고자 한 주제들이다.

여자의 정절은 가문을 일으키는 수단이 되기도 하고, 폐가멸문의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정절은 조선시대를 설명하는 중요한 키워드가 아닐 수 없다. 이 책은 정치, 제도, 문화, 담론 등 전방위적 측면에서 그 실체를 규명하고 있다.

‘정절의 역사’는 또한 조선 사회를 이끌어온 다양한 차이에 주목한다. 정절 개념이 조선의 역사적 조건과 만나는 지점은 다양하고, 그 전개 또한 광범위한 영역에서 행해졌다. 이에 대한 남성 지식인들의 인식과 실천 또한 일률적이지 않았다. ‘음행’ 소문을 대하는 미암 유희춘과 남명 조식, 퇴계 이황의 태도가 달랐다면 그 차이는 어디서 온 것인가. 전쟁 포로가 되었다가 돌아온 ‘환향녀’를 맞이하는 최명길과 장유의 태도는 정반대였다. 그 차이는 어디서 연유한 것인가. 권력을 가진 사족 남성 대부분은 여성의 정절을 열렬히 주장하지만, 이를 차갑게 바라보며 ‘말류의 폐단’으로 치부하는 연암 박지원 같은 학자도 있었다. 이처럼 정절은 지식인 각자의 개성과 지성을 구성하는 재료이자, 인식과 실천의 차이를 드러내는 중요한 개념이기도 했다.

김봉규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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