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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성의 북한일기 .10] 노래방 아가씨는 평양서 파견 온 직원이다

2014-08-29
20140829
20140829
나진시 김정숙유치원 공사현장에서의 필자.(왼쪽)

◆1997년 11월20일 목요일 맑음

아침에 전 직원회의 소집이다. 최 국장이 김진경 총장과 상의했다면서 평화그룹 산하에 유치원 공사를 하기 위해 건설본부를 발족한다고 했다.

본부장 조문성, 설비기사 리문정(중국 조선족), 토목기사 김건석(중국 조선족), 리군, 김선화, 배명순 등이다. 우선 5명을 구성원으로 임명했다.

이날 아침, 나진시 행정위원장(나진시 시장)이 새로 시작하는 유치원 공사 현장에 나와 이것저것을 물어보면서 공사진행에 관심을 표시했다. 오후에는 나진시 책임비서실장도 왔다 갔다. 나진시가 평화그룹에서 건축하는 유치원 공사에 큰 기대를 가지고 있음이다. 가칭 ‘김정숙유치원’ 공사 때문이리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어머니 이름을 붙인 공사장이니 나진시 최고 책임자들이 얼굴을 비친 것이리라 생각된다.

이 공사에 참여한 북한 공사팀 ‘24작업대(청진에서 온 공사팀)’의 공정에 우려와 격려가 함께한다. 홍내목씨(함북 설계사무소)도 현장에 다녀갔다. 오늘은 숙소의 방이 너무 뜨겁다. 전기난방을 사용하는 건물이다. 하루 종일 전기를 켜둔 것 같다. 팔은 여전히 쑤시고 아프다.



◆1997년 11월21일 금요일 흐림

24작업대에서 일을 하는 벽돌공이 벽돌을 쌓은 경험이 전무한 것 같다. 공사가 시작됐는데 한나절 내내 주물럭거리기만 할 뿐 공사 진척이 안 됐다. 북한에서는 작은 벽돌로 건물을 시공하는 것이 없다고 했다. 규격이 큰 블록으로만 건물을 올린다고 한다. 공사에 차질이 생길 것 같다. 유치원 공사를 3개 건설팀에 공사를 발주해 준 최 국장이다. 두 공사팀은 중국에서 들어온 한족팀이고, 나머지 한 공사팀이 청진에서 온 북한 공사팀이다. 어느 한 공사팀이라도 공사 진척이 늦어지면 옆 공사팀도 공사를 진행할 수 없다. 중국의 공사팀은 필요한 장비를 갖추어 일을 하니 진도가 빠르다. 그러나 북한 공사팀은 장비도 없이 모두 손으로만 공사를 진행하니 옆 시공대와 작업일정을 맞추기 어렵다. 그러다 오늘 낡은 장비(페이로더) 한 대가 현장에 투입되었다. 그나마 다행이다. 그런데 벽돌공이 이 모양이니 낭패다. 중국 시공대에서 벽돌공 기술자를 불렀다. 통역을 붙여 벽돌 쌓는 기술을 가르치도록 했다.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 벽돌시공이지만 처음 하는 일이라 매우 서툴다. 수없이 쌓고 허물기를 반복한다. 그러나 어쩌랴. 오늘 처음 만난 페이로더 운전수의 고향이 남한 광주이고, 6·25전쟁 때 가족들이 북으로 올라왔다고 했다. 그는 삼촌과 친척이 모두 남쪽에 있다고 하니 반가움이 앞섰다. 자기 집에 한번 놀러 오라는 인사도 했다. 무지개 식당 박동숙 여사가 나를 찾는다. 괴로운 마음을 하소연하려고 나를 찾는 것이다. 지금껏 살면서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둔 수많은 사연을 어느 누구에게도 말 못하고 살아온 박동숙 여사다. 갈까 말까 망설이다 무지개 식당을 찾았다. 늘 조용히 맞아 주는 박 여사다. 딸 혜정이가 속을 썩이고 있는 것 같다. 식사 후 남산여관 지하 노래방으로 안내했다. 노래방에는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아가씨가 2명 근무한다. 평양에서 파견 나왔다고 한다. 노래방에 근무하는 사람도 평양에서 파견을 시킨다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가씨들과 박 여사는 잘 아는 사이인 것 같다. 박 여사가 남쪽 노래 ‘장밋빛 스카프’를 불렀다. 나에게도 한 곡 부르라고 했다. 남쪽 노래밖에 모르니 어쩌랴. 평양에서 온 아가씨가 자막은 나오지 않고 흐르는 곡 ‘머나먼 남쪽 하늘’을 틀어 준다. 내가 부탁한 곡을 노래하도록 도와줬다.

‘머나먼 남쪽 하늘 아래 그리운 고~향. 사랑하는 부모형제 이 몸을 기다려. 천리 타향 낯선 거리 헤매~는 발~길. 한 잔 술에 설움을 타~서 마셔도 마음은 고향 하늘을 달려갑니다’를 한 곡 뽑았다. 여기가 어디인가. 이곳에서 남한 노래를 부를 수 있다니….

노래방을 나올 때 감사하는 마음으로 얼마 되지 않는 인민폐를 아가씨 손에 쥐어 주었다. 고맙다고 했다. 전 연변과학기술대 건설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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