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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교육] 친구와 함께하는 인문학 독서

2014-09-15
[행복한 교육] 친구와 함께하는 인문학 독서

얼마 전 경북여고에서 주최한 인문학 독서 PT 대회를 볼 기회가 있었다. 동부지역 고등학교 대표 9개 팀이 자신이 읽은 책 내용을 프레젠테이션하며 발표하는 시간이었다. 친구와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하고, 자신의 스토리를 청중 앞에서 발표한다는 점에서 이전과는 다른 신선한 독서 활동이었다. 그때의 감동을 담아 의미를 정리해 본다.

인문학 독서 PT 대회는 첫째, 책을 친구들과 함께 읽는다. 함께 내용을 분석한 뒤, 논제에 대해 함께 토론한다. 그러다 보면 못 보고 넘어간 내용들을 새롭게 보게 되고, 친구들의 생각도 잘 이해하게 된다. 일명 ‘눈 밝아지기’다. 혼자 책을 읽다 보면 자신의 인식 체계 안에서 검열이 생겨 사고가 정체되기 쉬운데 친구와 함께 읽으니 인식의 경계에서 논쟁이 일고, 논쟁을 통해 인식의 테두리가 확장될 수 있다.

둘째, 책을 매개로 자신의 삶을 이야기한다. 예전의 독후감쓰기는 책 내용이나 작가 이해에 방점이 찍혀 있어, 책읽기도 ‘받아들이기’와 ‘이해하기’를 중요하게 여겼다. 하지만 독서 PT 대회는 줄거리나 작가의 의도보다는 책 읽기를 통한 내 삶 ‘들여다보기’가 강조된다. 솔직히 책 내용은 아주 조금만 나와도 된다. 책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매개체일 뿐, 발표의 뼈대는 자신의 삶이다. 저자는 자신의 삶을 책으로 표현하고 독자는 그 책을 매개로 자신의 삶을 표현한다. 저자와 독자의 경계가 사라지고 그곳에서 반짝이는 만남이 일어난다.

셋째, 모둠끼리 청중 앞에서 발표를 한다. 동일한 내용을 글로 적어도 충분히 의미 있는 책읽기가 되겠지만 이 행사는 학생들이 직접 파워포인트를 만들어 역할 분담하여 발표하도록 요구하였다. 10분 동안 서너 명의 학생이 연극을 하기도 하고, 청중을 대상으로 주장하기도 하고,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한다. 책 내용을 모르는 청중도 책 속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친구의 삶 속으로, 다시 자연스레 자신의 삶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날 대구공고 대표로 참가한 ‘대공대세’팀을 응원하기 위해 행사에 참석하였다. 인문계 학생들 틈에 낀 유일한 특성화고 팀이라 행여 기죽지 않을까 염려도 되고, 교내 예선에서 보았던 발표자들의 뜨거운 열정이 인문계 학생들에게도 통할지 궁금하기도 했다. 세 명의 학생은 ‘99℃’라는 책을 소재로 자신들의 꿈의 온도를 솔직담백하게 발표하였다. 특히 중학교 때 최하위 성적이었던 학생이 특성화고에 와서 전교 1등이 되기까지의 성공 스토리를 발표하였을 때는 청중석에서 엄청난 축하와 격려의 박수가 나왔다.

그 환호 속에서 나는 이 독서 활동이 앞으로 큰 흐름이 될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책을 통해 친구와 만나고 자신과 만나고 나아가 세상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좋아 보였다. 무엇보다도 책을 지적 유희로 다루지 않아 초등·중학교 및 인문계나 특성화고 학생 등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이 맘에 들었다. 지식보다는 삶이 돋보이고, 책보다는 사람이 빛나는 행사, 그곳에는 ‘인문학’이라는 이름을 달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이금희<대구공고 수석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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