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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혜숙의 여행스케치] 포은 정몽주의 혼 서린 경북 영천 임고서원

2014-11-07

가을, 충절의 향기와 함께 깊어가다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포은 정몽주의 혼 서린 경북 영천 임고서원
새롭게 조성된 조옹대와 용연. 후세 사람들은 포은 선생이 낚시를 즐기던 반석을 ‘조옹대’라 명명했다고 한다.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포은 정몽주의 혼 서린 경북 영천 임고서원
임고서원의 500년 된 은행나무에 가을이 깊다.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포은 정몽주의 혼 서린 경북 영천 임고서원
서원 앞으로 물길을 내어 개성의 선죽교를 실측, 재현해 놓았다.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포은 정몽주의 혼 서린 경북 영천 임고서원
포은 정몽주 선생을 배향하는 임고서원. 성역화 사업을 마치고 단장된 모습이다.


정오를 넘긴 시간. 태양은 서쪽으로 약간 기울어져 임고서원의 구서원과 은행나무 위에서 빛나고 있었다. 점점 다가가자 태양은 왕의 호위무사처럼 소리 없이 나무의 우듬지 아래로 내려왔다. 역광 속에서 나무는 눈을 지그시 감은 부처처럼 보였지만, 사실 나무의 후광이 눈부셔 지그시 눈 감은 것은 나였다. 땅을 더듬으며 나무 아래 섰을 때서야 눈이 번쩍 뜨였고, 머리 위로 노랗게 물든 은행잎이 황금의 박편처럼 차르르 떨어져 내렸다.

◆500년 가을이 깊다

4년 전 초봄에 찾아와 가을에 다시 오겠다 마음 먹었던 것을 이제야 걸음 한다. 온 세상의 가을이 깊건만 어째서 해마다 이곳의 가을을 생각하고, 어째서 걸음은 쉽지 않았던지. 그사이 임고서원의 모습은 너무나 달라져 깜짝 놀라고, 달라진 모습이 너무 젊어 어쩐지 서운하다.

아주 오래전 7월, 운주산(雲住山) 기슭에 자리 잡고 있던 붕어 같은 작은 언덕이 홍수에 떠내려 와 부래산(浮來山)이 되었고, 그 산에 포은 정몽주를 기리는 서원을 지은 것이 명종 8년인 1553년. 이후 임란으로 소실된 것을 지금의 자리에 다시 지은 것이 선조 때인 1603년이다. 그때 부래산에 있던 은행나무를 현재의 자리에 옮겨 심었다. 그렇게 500여년, 나무는 500번의 가을을 맞이했을 터. 그러는 동안 이곳에는 깨끗한 음식이나 정화수를 차려 놓고 기도하면 부녀자는 사내아이를 낳고, 병자는 소생하며, 나무를 해치면 크게 벌을 받는다는 전설이 깃들었다.

나무는 수나무인 듯하다. 은행나무는 언제나 노랗게 물드는 것보다 한발 앞서 열매의 향내로 먼저 가을을 알리는데, 임고서원의 은행나무에서는 향내를 맡을 수 없다. 오직 나무는 스스로 깃발을 올려 이 깊은 가을을 천하에 공표하는 듯하다.

◆ 새로워진 임고서원

임고서원은 1871년 흥선 대원군에 의해 철폐되었다. 이후 1979년에 존영각(尊影閣)을 건립, 포은 선생의 영정을 모시고 향사를 지내왔다. 1965년에 복원했고, 80년에 새로운 서원을 건립하여 구서원과 신서원이 나란한 지금과 같은 구조가 되었다. 그리고 2012년, 서원 일대는 대대적으로 정비되었다. 서원 입구의 석축도 새롭게 쌓았고, 포은 유물관과 충효문화수련원도 건립되었다. 앞마당은 작은 공원으로 꾸며 놓았는데, 물길을 내어 수변공원도 더했다.

눈에 띄게 새로운 것은 물길 위에 놓인 선죽교다. 실제 다리는 개성의 자남산 남쪽 개울에 있다. 원래 이름은 선지교였다. 1392년 4월4일 포은 선생은 그 다리에서 피살됐고, 그날 밤 다리 옆에서는 참대가 솟아 나왔다 하여 선죽교가 되었다. 임고서원의 선죽교는 성역화 사업의 일환으로 개성의 것을 실측해 그대로 재현한 것이라 한다. 한석봉이 쓴 선죽교 돌비석 또한 탁본해서 세웠다.

서원 영역의 입구에는 ‘동방이학지조’ 송탑비가 서있다. 그 뒤의 자그마한 언덕 위에는 조옹대가 서있다. 임고서원 중건 상량문에 ‘조옹이라는 대가 시냇가에 있는 것은 아마도 은거하신 초지일 것이다’라는 글이 있는데, 후세 사람들은 옛날 포은 선생께서 낚시를 즐기던 반석을 ‘조옹대’라 명명했다고 한다. 또한 선생이 낚은 것은 물고기가 아니라 용이라 하여 조룡대라고 부르기도 했다. 조옹대 역시 사업의 하나로 건립되었고 그 아래에는 용연도 조성되어 있다.

◆ 해마다 새롭게 늙어가길

고건축은 자연과 잘 어울린다. 구서원과 은행나무는 얼마나 아름다운 어울림인가. 그것은 전설적이고 시적으로 보인다. 그들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포은 선생을 본 적이 없다. 그들에게도 선생은 하나의 전설인 것이다. 공신은 시대가 결정하지만 충신은 불변이다. 충신이란 오늘날 사어가 된 단어라 생각하기에, 그들의 전설적인 현재를 문학적으로 숭앙하게 된다. 그래서 다만 한발 먼 곳에서 애정 어리게 바라보며, 그들이 조용하고 평화롭게 늙어가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사실 현재의 서원은 매우 오래되었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자연으로 둘러싸여 고아한 느낌이 있었다. 때문에 새것으로 단장되고 복원된 것은 지나치게 열광적으로 보일 때가 있다. 그러나 모든 옛것은 한때 새것이었다. 건축은 나이를 먹는다. 새로운 것들은 우리와 함께 늙어가고 우리보다 더 오래 살아남는다. 그러니 임고서원의 성역화 사업이 완수된 이제, 이제 해마다 새롭게 늙어가길. 우리에게는 언제까지나 아름다운 것들과 새로운 것들이 필요하므로.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정보

대구에서 포항 가는 20번 고속국도 북영천 IC에서 내린다. 영천 방향 28번 국도로 가다 임고 방향 69번 지방도로 영천댐 방향으로 가면 임고삼거리에 임고서원이 위치해 있다. 유물관은 월요일 휴관이고, 입장료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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