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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대구 자수문화 창달에 열과 성…수성구 범어2동 수(繡)박물관의 이경숙 관장

2014-11-21
20141121
2011년 험로를 각오하고 지역 첫 명실상부한 자수와 민화 전문 수 박물관을 개관한 이경숙 관장. 그녀는 전시품 보러 오라고만 하는 ‘고자세’ 박물관 시대와 결별했다. 시대와 상응하는 평생교육공간으로서의 전통콘텐츠를 오늘의 감각으로 교감하는 ‘박물관 테라피’를 구상하고 있다. 이 관장 옆에 성채처럼 쌓여 있는 수많은 베갯모가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는 전통 문양의 오방색 아우라를 유감없이 발광하고 있다.


수감(繡感) 혹은 수감(繡監).

2011년 개관한 대구시 수성구 범어2동 수(繡) 박물관의 이경숙 관장(51).

낯빛이 창백할 정도로 말갛다. 잠자리 날개 같다.

가장 컬러풀한 동양의 오방색(五方色) 미학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는 수(繡) 때문에 그녀는 내심 ‘감동’하기도 하고, 그게 스스로를 너무 절벽으로 내몰아 수가 만든 ‘감옥’에도 갇힌다.

베갯모만 2천여점, 그중에 호랑이 베갯모는 상당히 귀하다. 자수품 중에는 12폭 기명절지자수병풍(조선말)이 주목받고 있으며 이 밖에 각종 민화류, 자수의류, 자수용 실, 목각인형 등이 있다. 유품 중 귀하다 싶은 걸 기증하는 유족도 있다. 그래서 ‘더불어 박물관’이다.

그런데 이 관장은 2011년 일을 저질렀다.

지역 언론에조차 박물관을 적극적으로 홍보하지 않았다. 귀한 것은 굳이 홍보하지 않아도 저절로 알려질 것이라고 믿었다. 현실은 달랐다. 깃털만 한 지원금이 들어오지만 그것으로는 시민 곁으로 다가서기 역부족이었다.

수는 자수를 비롯해 한국적 이미지를 담은 민화와 불화의 영역까지 터치하고 있다. 한때 남성 중에 유명 작가가 많았을 정도로 자수는 한민족 콘텐츠의 대표격이었다. 70년대까지는 모든 여학생의 필수품이었고, 이화여대와 숙명여대에도 자수과가 있었다. 현재 서울 종로구에 ‘한상수자수박물관’, 강남에 ‘한국자수박물관’, 강북구에 ‘박을복자수박물관’, 강원도 강릉시에 ‘동양자수박물관’ 등이 있다.

수십 년간 휴화산이던 자수문화가 최근 한류바람을 타고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특히 패션디자이너가 새로운 돌파구로 자수와 민화의 전통문양을 캘리그래피(손글씨) 스타일로 부활시킨다.

박물관에 들어오면 베갯모와 베갯잇이 가장 강렬하게 눈길을 끈다. 거기엔 수많은 이의 단꿈이 지나간 흔적이 오롯하게 남아 있다.

이 관장의 관심 스펙트럼은 상당히 방대하다. 앉아서 소장품을 보여주기만 하는 박물관을 거부한다. 그건 ‘죽은 박물관’이란다. 시대와 소통해야 하고, 그러려면 동시대 사람을 가르쳐야 된다고 믿는다.

한때는 동양화가였다. 민화연구가이면서 화랑도 운영했다. 이젠 ‘조형학 박사’로 전통문화를 가르치는 사회운동가이다. 이 관장은 최종적으로는 문화전문가, 아니 문화평론가도 아니고, 그냥 ‘풀뿌리 문화 교육자’로 남고 싶단다. ‘21세기형 독립군’ 같다.


‘팔방미인’ 그녀
동양화가…민화 연구가…
화랑 사장…조형학 박사…
다양한 삶의 족적 남겨와

베갯모繡에 빠지다
누구 작품인지 알수없고
손바닥만한 베갯모지만
삿된 기운 막아 달라는
가족 위한 ㅅ기원 뜻 담겨

대구는 본디 자수의 도시?
1970년대 삼덕동·반월당
日 수출 전문 繡공방 성황
육영수 여사 한복의 수도
대구사람이 놓았을 정도

20141121

◆ 팔색조 이경숙

- 삶의 족적이 참 팔색조처럼 다양하면서도 일관성이 있다. 한때 화랑도 경영했다면서.

“졸업 후 88년에 화랑을 열게 되었다. 당시엔 화랑이 그렇게 많지 않아 대관료가 꽤 비쌌다. 자연히 젊은 작가의 활동을 어렵게 만들었다. 그래서 다수의 작가가 화랑의 주인이 되는 방식인 미국의 ‘협동화랑’ 개념을 도입하여 문화공간의 부족과 작가의 경제력에 맞는 공간을 만들어 가고 싶었다. 당시 대관료에 비해 매우 저렴한 대관료와 서비스로 나름대로 인기가 있었다. 8년쯤 화랑 하며 놀았다.”

- 조형학 박사라고 하더라.

“대구대에서 2005년 ‘고구려 고분벽화에 나타난 연꽃의 상징과 표현’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참 오래 연꽃 문양에 심취해 있었다. 고구려·인도·이집트·중국의 연꽃을 고미술학적으로 해부해 보고 싶었다. 경북대 예술대 미술학과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다. 석사 때는 동양화로 대학원에 갔고, 석사논문도 ‘조선후기 농경화에 대한 연구’였다. 더 깊게 파고 싶어 경주대 문화재학과에 입학했다. 학생을 가르치면서 한국미술에 대한 이해가 너무 부족하다는 걸 절감했다. 그래서 대구대 미술디자인과에서 박사과정을 밟게 됐다.”

- 연화문의 비밀을 풀었나.

“고구려벽화에도 연화문이 보인다. 연꽃 문양은 문화적 상징성이 세계적이다. ‘관무량수경’에 보면 ‘사람이 죽으면 연꽃 봉오리 속에 들어간다. 깨달음의 근기에 따라 연 봉오리에서 나오는 시간도 달라진다’고 적혀 있다.

- 그런데 어떻게 박물관 쪽으로 됐는지 궁금하다.

“결혼 후 아이를 낳으면서 아이교육에 관심을 뒀다. 대학을 한국화로 선택한 것도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지만 아이를 낳으면서 더욱 관심이 증폭됐다. 한국 전통문화를 통해 민족적 자긍심과 정체성을 찾아가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한 일에 확신을 주게 된 동기는 시설아동을 위한 민화봉사활동을 하면서 그 아이들의 가슴에 뿌리와 같은 확고한 멘토가 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부터다. 비록 생물학적인 부모는 일찍 그들의 곁에 없어도 더 큰 ‘사회적 엄마’의 존재가 필요하고 그것이 바로 전통의 문화 속에서 가능하다고 생각하였다.

- 공감한다. 한국에는 생물학적 엄마만 득세하지 사회적 엄마는 거의 고사 상태다.

“어려움과 준비가 필요했지만 박물관을 연 후 이러한 생각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 자수와 민화뿐 아니라 태극기와 무궁화 유물을 통해 전통문화를 활용한 교육콘텐츠 개발연구에 더욱 많은 노력을 하게 되었다. 박물관은 유물을 수집하고 보존하는 일뿐만 아니라 유물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잇는 터미널 역할을 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공간을 거치면서 새로운 정신의 영역으로 자신을 성장시키는 공간이라 생각했다. 나 자신도 박물관을 통해 더 깊게 정신적인 성장을 하고 있다.”

- 상당수 사립박물관은 개인적 야심과 야망 때문에 너무 움켜쥐고 있다. 그래서 스스로 고립을 초래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개인 소유이면서 공공재라고 생각하기가 무척 어려울 것 같다.

“맞다. 솔직히 내가 세웠지만 이게 내 소유란 생각은 거의 없다. 사유적 공간이면서 공공재로서의 역할을 분명히 하기 위해 사립박물관을 재단법인으로 설립하였다. 이 공간은 한 개인의 사유적 공간이 되기보다 문화를 통해 자신과 사회를 성장시켜 나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소중한 터전이기 때문이다.”



◆ 자수와 민화 사이를 소요하다

- 자수에는 어떤 연유로 입문하게 되었나.

“대학 시절 그림을 그리기 위한 소재로 자수를 자주 만났다. 거기서 아름다운 한국의 색채를 발견할 수 있었다. 지금은 수를 놓은 사람의 이야기를 더 중요하게 이해하게 되었다. 베갯모수에 놓인 수의 내용을 통해서 그 사람들의 생각을 공감하고 이해하게 되었다. 그 수의 내용을 통해 한국의 어머니들은 끊임없이 가족을 위한 깊은 기도의 마음으로 살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예를 들면 손바닥만 한 한 뼘의 베갯모 안에 가족에 대한 모든 기원을 담아 표현했다. 또 그것이 영원하기를 바랐다. 삿된 기운들이 범접하지 못하기를 기원하였다. 횡액을 막아내는 것은 지고지순한 ‘선(善)’임을 자수는 말하고 있다.”

- 자수의 정신은 뭔가.

“‘연감유함(淵鑑類函)’이란 책에 ‘수는 수(修)’라는 구절이 있다. 명상과 기도의 힘에 대해 많은 말씀을 하는데 자수가 바로 그런 역할을 한다. 자수를 통해 고요한 에너지에 가 닿는 순간 우주의 기운과 합일하고 그게 가족의 행복에 영향을 준다. 일종의 정화수(井華水) 정신이다. 자수에 보면 수(壽)와 복(福) 같은 글자들이 계속 나온다. 가족에 대한 만수무강, 결국 행복을 담고 있다. 자수는 가장 중립적 예술품인 것 같다. 낙관도 없고 서명도 없으니 작가가 누군지 알 수도 없다. 그래서 많은 감상자는 이 작품이 모두 자기 엄마가 만든 것으로 착각할 수 있어 더 공감하고 감동하게 된다. 이름 없는 작품은 숭고한 보편성을 갖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개별성보다 보편성과 상식성의 회복이 아닐까 싶다. 현대는 극히 개별지상주의를 양산하는 것 같다. 개별자에 대한 지나친 강조가 고립을 자초하는 것 같다. 자수는 경쟁에서 혼자만 살아남으려는 어른들이 아이에게 준 정서적 고통을 치유해주는 ‘자수테라피적 파워’를 갖고 있다. 찢긴 걸 봉합해주고 기워주는 ‘두레정신’도 있다.”

- 자수 박물관은 어떤 프로그램을 가동하는가.

“무궁화 공동체라는 마인드를 심어주기 위해 ‘무궁화 형제놀이’를 시작했다. 무궁화 그림 위에 자기 이름을 적도록 하는 건데 일종의 수업 전 친해지기 시간이다. 그동안 3년간 100여 가지 전통문화 활용 교육콘텐츠를 개발했고, 현재 50여 가지를 활용하고 있다. 까치호랑이를 목각인형으로 형상화했다. 전통매듭을 아이들에게 재밌게 교재를 만들었다. 매듭교재의 경우 묶고 풀고 하는 과정을 초등학교 저학년 프로그램으로 만들었다. 가장 인기 있었던 건 태극무궁화 티셔츠 만들기였다. 한말의 애국지사였던 남궁억이 우리 민족에게 애국애족 사상을 전파하기 위해 고안해낸 ‘무궁화 한반도수’를 오브제로 활용해 티셔츠에 무궁화 문양의 텍스타일 물감으로 직접 칠해보도록 했다. 그러면서 ‘무궁화’란 동요와 애국가 등을 부르도록 했다. 이 밖에 자투리 천을 갖고 바늘꽂이, 장미당초문 바늘꽂이, 사과오자미 등도 만들었다. 현재 매주 토요일 꿈다락 토요문화 코너에서는 어린이 교육과정의 하나로 옷 만들기 과정을 진행한다. 또 대구시 평생교육진흥원에서 지원한 어린이민화지도사 자격과정 등도 꾸려가고 있다.”

- 요즘 남은 천으로 사과를 만든다고 하는데 사과의 도시인 대구의 문화캐릭터 상품으로도 손색이 없겠다.

“ 우리 박물관과 연계돼 ‘행복터치 사과데이 운동본부’를 발족했다. 거기서 매월 4일을 ‘사과데이’로 정했다. 2006년 농협에서도 매년 10월26일을 ‘애플데이’로 정한 적이 있다. 사과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먹는 사과이면서 잘못을 ‘사과한다’는 의미도 있다. 사과를 주면 사과한다는 뜻이다. 그동안 10여 개 초등학교에 50~100개 오자미 모양의 사과를 나눠줬다. 자투리 천도 기부받고 성공적 사과사례를 갖고 사례발표회도 하고 장학금도 주었다.”

- 대구가 섬유도시라서 자수에도 일가견이 있었겠다.

“대구의 섬유산업의 뿌리는 자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반월당, 삼덕동 등은 자수골목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70년대 당시 삼덕동에는 일본으로 수출하는 수 전문 공방이 많았다. 육영수 여사의 한복에 수를 놓았다는 분이 대구에 있을 만큼 대구의 자수는 알아줬다. 대구의 자수 자료를 정리하고 연구해서 지역의 문화적 정체성과 문화콘텐츠를 확보하는 일이 매우 중요한 시점이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 취재후기

수 박물관의 등장을 컬러풀 대구의 또 다른 도약대로 보는 이도 있다.

하지만 지금 수 박물관은 참으로 ‘절박’하다. 관심이 ‘야박’한 탓이다. 전국에는 등록 사립박물관이 179개 있다. 그런데 대구는 3군데밖에 없다. 너무나 빈약하다는 지적이다.

대구에는 내로라하는 전국적 수집가가 적잖다. 그런데 그들은 왜 앞다퉈 사립박물관을 차리지 않는가. 이유가 있다. 돈도 안 되고 지원도 너무 부족해 박물관 개관 다음 날이 ‘망하는 날’이라는 불안 때문이다. 굳이 ‘고생박물관’을 세우느니 그 돈으로 수집품을 하나 더 구입하는 게 낫다는 계산이다. 수 박물관은 현재 학예사조차 구하기 힘든 실정이다.

도움의 우선순위가 엄정하지 않으면 결국 전통적인 건 영양가가 없다는 이유로 시류적인 것에 밀려나고 말 것이다. (053)744-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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