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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아이들 희망을 품다] 대구 자연과학고 김보리양

2014-12-15

“희망과 웃음을 심는… 저는 나눔의 조경사입니다”

20141215
지난 5일 김보리양이 대구자연과학고 교정에서 수목감별 실습을 하고 있다. 황인무기자 him7942@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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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리양이 설계 실습을 하고 있다. 황인무기자


대구 자연과학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김보리양(18·생태조경과)은 얼마 전, 안전행정부 지역인재 채용 시험에서 산림조경 직렬에 최종 합격했다. 김양은 중학교를 졸업하면서 대부분의 학생들처럼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할 수 있었지만 꿈을 좇아 이곳으로 왔다. 미래의 조경 전문가, 김보리양을 자기소개서 형식을 빌려 소개하고자 한다.

“농고라고
농땡이들이 다닐 거라는
선입견을 갖지 마세요”

고교 입학을 앞두고, 부모님께서는 자연과학고를 가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하셨습니다. 조경분야에서 일하는 부모님은 이쪽 분야의 비전에 대해 말씀을 줄곧 하셨던 터라, 특별한 거부감이 들지는 않았습니다. 마침 언니도 특성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원하는 회사에 취직해 보란듯이 생활하고 있어서 롤 모델로 삼기에 충분했습니다. 집안에도 보탬이 되는 언니가 멋있어 보이기만 했습니다. 중학교 내신 성적이 40%로, 인문계 고교에 충분히 진학할 수 있었지만 이곳을 선택했습니다.

생태조경과 학생은 총 63명이었는데, 여학생은 저를 포함해 고작 8명이었습니다. 남녀 비율에 적잖이 당황스러웠지만, 평소 남학생과도 잘 어울렸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성비가 워낙 불균형한 탓인지, 조금은 거칠었던 남학생은 물론, 여학생과도 친해지기까지의 시간이 꽤나 길었습니다. 1학년 첫 학기가 다 가도록 가까운 사이가 되지 못했습니다. 같은 반 친구들과의 학교 생활이 즐겁지 않게 되니, 학교에 대한 불만도 커졌습니다. 꿈에 대한 확신까지 점점 희미해졌습니다. 인문계에 진학한 친구들이 SNS에 삼삼오오 짝지어 찍은 사진을 올릴 때면, 늘 혼자 있는 저 자신이 한없이 작아 보였습니다.

“글쓰기로 되찾은 자신감
나를 더 확실히 보게됐죠
다시 꿈을 향해 한발한발…”

2학년 때, 단순히 ‘스펙을 쌓을 수 있겠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책쓰기 동아리에 가입했습니다. 진실되게 글을 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문장의 완성도를 높이려고 했던 마음을 버리고 나의 이야기를 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책쓰기에 빠졌습니다.

신기하게도 내 마음을 담으니 문장은 자연스레 완성됐습니다. 지나간 날을 떠올리며, ‘지금의 나는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를 위로하고 응원했습니다. 책을 쓰며 나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저에게 책쓰기는 단순히 글을 쓰는 것이 아닌 사랑하기, 치유하기, 마음 쓰기, 되돌아보기, 그리고 ‘김보리 쓰기’였습니다. 사진에도 흥미가 컸던 나는 동아리 회원들과 함께 ‘동감’이라는 제목의 포토에세이를 펴내기도 했습니다.

책쓰기 과정에서 인상적이었던 활동 중 하나는 바로 ‘알깨기’ 였습니다. 책에 진실된 이야기를 담기 위해서 동아리 친구들끼리 서로의 콤플렉스나 비밀 등을 털어놓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신기하게도 책을 쓰는 과정이 거듭될수록 우정과 믿음이 자리 잡는 걸 보게 됐습니다. 동아리 시간이 기다려지고, 학교 다니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꿈에 대한 열정도 다시 되찾았습니다. 함께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고, 나 자신을 보다 확실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저는 꿈을 다시 찾아 조경기능사 자격시험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게 됐습니다. 학원을 다니고, 방과후 수업도 들었지만 늘 불합격하기 일쑤였습니다. 합격선을 넘기지 못한 좌절감에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습니다. ‘왜 불합격일까?’ 곰곰이 생각하던 저는 공부하는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만의 공부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집에서 ‘오감으로 소리 내며 공부하기’ 방식을 시작했습니다. 무작정 외우기보다는 많이 읽어 이해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자신을 믿고 노력하는 것이 참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농기계정비’와 ‘조경기능사’ 자격증 등을 딸 수 있었습니다.

지게차 운전 수행평가를 할 때도 기억에 남습니다. 저는 운전 실력이 다른 친구에 비할 바가 못됐습니다. 담당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방과 후에 지게차 운전 연습을 더 하고는 집에 간 적도 많습니다. 또한 다른 사람을 가르치면서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 친구들에게 과외 아닌 과외를 해주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3년 동안 전체 계열 1등을 거머쥘 수 있었습니다.

저는 ‘조경가’라는 꿈을 일찌감치 정한 이상, 남들보다 더 빨리 제 진로를 개척하고 싶었습니다. ‘전국 FFK(Future Farmers of Korea)전진대회’가 있는데, 이는 전국의 농·생명산업계열 학생들의 경진대회입니다. 저는 조경·산림분야에서 대구 대표 선수가 되어 3년간 출전해 은메달을 따기도 했습니다.

대회를 준비하면서 무려 200개가 넘는 수목을 감별하게도 됐습니다. 매발톱나무, 너도밤나무, 생강나무, 은수원 사시나무, 쥐똥나무, 화살나무, 공작단풍, 큰꽃으아리, 함박꽃나무, 히어리 등. 이름조차 생소한 수목이었지만, 잎과 열매 모양 등으로 수목을 판별하는 일이 재밌기만 했습니다. 2학년 담임 선생님은 대학전공 수업보다 우리학교가 더 전문적인 교육을 한다고 늘 말씀하셨는데, 이 말이 딱 맞았습니다. 3학년 때 학교로 온 교생 선생님에게 수업을 들었는데, 침엽수 감별과 벽돌포장, 관목식재, 판석포장, 지주목세우기 등 여러 실습을 오히려 친구들이 더 잘했습니다. 이때 저는 대학을 가지 않아도 충분히 전문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특성화고에서 조경을 전공한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생겼습니다.

안행부 지역인재로 채용
“부귀와 명예를 좆지 않고
이웃과 함께하는 삶 살 것”


저는 부귀와 공명을 추구하는 삶이 아닌 이웃과 함께 더불어 살고 싶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로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도록 저의 것을 나누고 싶습니다. 그렇게 다른 사람들을 웃음 짓게 하는 조경가가 되기 위해서는 봉사가 중요한 덕목이고 항상 실천해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올해 초 있었던 선배의 졸업식은 어느 졸업식보다 훈훈했던 특별한 졸업식이었습니다. 저는 1명이 졸업하며 1명을 입학시키자는 취지에 ‘1+1 기부 졸업식’ 바자회를 기획했습니다. 졸업식은 우리만의 행사가 아닌 어려운 여건에 있는 이웃을 돌아 볼 수 있는 의미 있는 행사를 위해 친구들과 후배 20명으로 봉사단을 구성했습니다. 방과후 활동으로 한방 샴푸 80개, 천연 비누 200장을 직접 만들어 판매를 했습니다. 이렇게 마련한 기부금 140만원을 필리핀 등지에 학교를 짓는 기금으로 사용했습니다. 작은 노력이 누군가에게 보탬이 “농고라고 농땡이들이 다닐 거라는 선입견을 갖지 마세요”

될 수 있다는 나눔의 가치를 배울 수 있었던 계기였습니다.

수업시간에 조경 설계를 하며 배운 것을 바탕으로 주위의 불편한 점을 바꾸는 데 도전하기도 했습니다. 대형마트에서 쇼핑을 끝내고 쇼핑카트 안에 있는 짐 상자를 차로 옮길 때, 짐 박스를 힘들게 들어 올려도 계속 카트 옆면에 걸리거나 카트가 같이 움직여 짐 상자를 빼는 것은 무척 힘들고 짜증났습니다. 대형마트의 카트 안에 있는 상자를 차로 쉽게 옮기는 카트를 설계했는데, 이는 ‘제11회 전국 특성화 고교생 창업 경진대회(Be the CEO)’에서 산업통상부 장관상을 안겨줬습니다. 작은 아이디어 하나로도 다른 사람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도 있다고 믿게 됐습니다.

공무원에 합격해 남 부러울 게 없는 시기이지만, 도전을 멈추기는 싫습니다. 지금은 후배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책쓰기 동아리 멘토로 활동하고 있는데, 같은 나이에 비슷한 상황에 놓인 후배들에게 상담을 통해 가장 솔직한 조언을 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줌으로써 저의 초심을 되새겨 보기도합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제가 생각하는 성공의 정의는 ‘돈을 많이 버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성공이란 진정한 행복을 알고 나누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박봉으로 굶주리는 일에도 행복할 수 있다면, 열정적일 수 있다면 저는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미래에 저는 산림·조경가로서 북한의 민둥산 초록 옷 입히기, 일반 사람에게도 재미있는 조경·산림 책 쓰기, 농업과 산림의 중요성 전 국민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홍보하기, 농업의 6차 산업 적극 추진하기, 많은 사람의 꿈이 되는 사람이 되기를 저는 꿈꿉니다. 이 꿈을 꾸며 노력하는 저는 매일매일이 행복합니다. 그리고 매일 이것을 이루기 위해 한 발 한발 내디디며 성공의 조각을 그려가고 있습니다.
백경열기자 bky@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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