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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신작 대결] 와일드·엑스 마키나

2015-01-23

와일드
절망의 여성, 멕시코∼캐나다 4천286㎞ 단독 도보여행

20150123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셰릴(리즈 위더스푼)은 멕시코 국경에서 캐나다 국경에 이르는 4천286㎞를 도보로 여행중이다. 지난날의 슬픔을 잊고 상처를 치유하고자 악명 높은 도보여행 코스인 PCT(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를 선택했다. 하지만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극한의 고통속에서 셰릴은 하루에도 수십번씩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럴때면 에밀리 디킨슨의 격언을 새기며 마음을 새롭게 다진다. ‘몸이 그댈 거부하면 몸을 초월하라.’

‘와일드’는 셰릴 스트레이드의 실화를 다룬 동명의 자서전을 원작으로 했다. 가난과 가정폭력으로 힘든 유년 시절을 보낸 그녀는 유일한 삶의 희망이었던 엄마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자 마약과 외도에 탐닉하며 자신을 방기했다. 결국 남편도 그녀를 떠났다. 가진 것도, 기다려주는 사람도 없이 인생의 밑바닥을 향해 치닫는 그녀에게 이제 남은 건 아무것도 없다. 영화는 그렇게 고통과 절망의 끝에서 발견한 PCT를 통해 자아와 희망을 찾아가는 셰릴의 94일의 여정을 따라간다.


셰릴 스트레이드 동명의 자서전 원작
러닝타임 119분…등장인물 최대 배제
셰릴의 신체적 고통 적나라하게 포착


홀로 여행길에 나선 셰릴의 그때 나이는 26세. 야외 생활 경험이 전무한 그녀는 자신의 몸무게를 능가하는 커다란 배낭을 꾸려 첫 트레킹을 시작한다. 젊은 남자도 완주하기가 쉽지 않다는 PCT는 야생과 어우러진 거친 등산로, 눈 덮인 고산 지대, 아홉개의 산맥과 사막, 그리고 광활한 평원과 화산지대까지.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험난한 자연환경이 펼쳐져 있다. 무엇보다 사람의 흔적도 찾기 힘든 고독한 그 곳에서 육체적인 고통은 물론, 수시로 찾아 오는 두려움과 외로움도 이겨내야 한다.

‘와일드’는 등장인물을 최대한 배제한 채 119분의 러닝타임을 셰릴의 여정에 온전히 할애한다. 이야기도 단조롭다. 어깨와 허리에 배낭 자국이 깊게 패이고 발톱 등이 빠지는 그녀의 신체적 고통을 적나라하게 포착하고, 자기자신과의 공허한 대화를 이어가는 외로운 모습에 주목할 뿐이다. 이는 상업영화로서 자칫 무모한 선택일 수 있지만 제작자이자 주연으로 나선 리즈 위더스푼과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의 장 마크 발레 감독의 생각은 달랐다. ‘와일드’를 읽고 단번에 영화 제작을 결정했다는 리즈 위더스푼은 “‘와일드’에는 삶과 사랑, 상실, 가족에 관한 이야기 등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요소가 많다. 완전히 무너졌다고 생각한 여자가 자신을 재건해가는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셰릴은 트레킹을 통해 절망의 끝에서 새로운 인생을 마주한다. 과거에 겪은 고통과 상실, 현재의 여정에서 느끼는 외로움뿐만 아니라 신체적 고통과 극한의 고난에도 불구하고 흔들리지 않았던 그녀의 용기다. “일출과 일몰은 매일 있으니까 네가 맘만 먹으면 볼 수 있어. 너도 아름다움의 길에 들어설 수 있다”며 늘 용기를 주었던 엄마 바비(로라 던)의 말처럼 셰릴은 긴 여정과 함께 차츰 자신의 모습을 찾아간다. 특히 이 영화가 인상적인 건 극한의 여정속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고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임하는 그녀의 모습이다.

이 영화의 공은 당연히 셰릴을 연기한 리즈 위더스푼에게 돌아갈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인생을 되찾기 위해 거칠고 험한 여정도 담담히 견뎌내며, 끝끝내 눈부신 희망을 마주했던 실제 인물의 모습을 소름끼칠 정도의 사실적인 연기로 소화해냈다. 덕분에 누군가에게 구원받는 것이 아닌, 스스로 자신을 구원하는 그녀의 삶과 기억은 특별한 감동으로 보다 진정성있게 다가올 수 있었다.(장르:드라마 등급:청소년 관람불가)


★ 엑스 마키나
두 남자와 고도의 두뇌게임 펼치는 여성 A.I. 에이바

20150123

세계 최고의 인터넷 검색 엔진 회사 블루북에서 일하는 프로그래머 칼렙(돔놀 글리슨)은 어느 날, 수천대 1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운좋게 사내 이벤트에 당첨된다. 그 대가로 블루북의 회장인 천재 개발자 네이든(오스카 아이삭)과 1주일간 함께 지낼 기회를 얻는다. 들뜬 마음으로 그의 연구소에 도착한 칼렙. 자연과 완벽한 조화를 이룬 비밀 연구소에서 칼렙은 네이든이 창조한 인공지능(A.I.) 로봇 에이바(알리시아 비칸데르)와 마주한다. 그는 이곳에 머무는 동안 에이바의 성능을 테스트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다.

‘엑스 마키나’는 미니멀리즘의 미학을 인상적으로 표출한 SF스릴러다. 눈을 현혹시키는 화려한 볼거리와 스펙터클은 없지만 이야기의 힘만으로 러닝타임을 채워가는 내공의 힘이 느껴진다. 특히 고립된 환경을 배경으로 형성된 세 사람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은 결정적인 순간마다 등장하는 강렬한 이미지와 함께 그들의 관계를 더욱 밀도감 있게 담아낸다. 연출은 ‘28일 후’ ‘선샤인’ 등의 각본을 담당했던 알렉스 가랜드가 맡았고, 그의 첫 연출작이다.


미니멀리즘 미학 인상적인 SF스릴러
인간·로봇 경계 통한 윤리·의지 탐색
고립된 환경 배경 세사람 긴장감 팽팽


일단 가장 눈길을 끄는 건 기존 A.I.를 훨씬 능가하는 존재감으로 탄생한 에이바 캐릭터다. 여성 A.I.인 에이바는 아름다운 외모뿐만 아니라, 그녀를 창조해낸 네이든조차 미처 알아채지 못했을 만큼 고도로 지능화된 냉철함과 인간미를 지닌 순수함의 결정체다. 이제 그녀는 자신의 인격과 감정이 진짜인지를 실험하는 개발의 마지막 단계인 ‘튜링 테스트’만을 남겨두고 있다.

‘엑스 마키나’는 그 점에서 ‘튜링 테스트’를 통해 고도의 두뇌 싸움을 펼치는 세 사람의 이야기로 압축된다. 네이든 이외에는 누구와도 만나본 적 없었던 에이바는 그 과정에서 칼렙을 만나게 되고, 자신을 로봇이 아닌 인간으로 대해주는 그와 교감하며 미묘한 감정에 빠진다. 칼렙 역시 혼란스럽긴 마찬가지다. 첫 만남부터 에이바의 완벽한 외모와 화법에 매료된 칼렙은 누구도 믿을 수 없게 된 상황들과 그로 인한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낀다.

네이든은 그런 두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줄곧 CCTV로 지켜본다. 그리고 카메라는 한 발짝 뒤로 물러나 세 사람이 서로를 시험하고, 정신적으로 상대방을 이기려고 하며, 또 서로에 대한 신뢰를 형성해가는 과정을 흥미롭게 포착한다. 주목할 건 에이바의 테스트를 위해 동원된 칼렙도, 모두를 조종한다고 생각했던 네이든도 실상은 그녀의 교묘한 심리전에 철저히 이용당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A.I.의 등장으로 인간은 머지않아 아프리카의 화석 같은 존재로 인식될 것”이라는 네이든의 말이 최소한 영화에선 현실로 다가온 셈이다.

알렉스 가랜드 감독은 기존 SF 문법을 차용하는 대신, 자신만의 독창적이고 기발한 상상력을 흥미롭게 펼쳐냈다. 테크놀로지에 대한 현대인의 두려움과 그 삶 속에서의 인간의 역할을 다루고 싶었다는 그가 인간과 로봇의 경계를 통한 인간적인 윤리와 의지의 이야기로 이를 확장시겨 나간 것. 이 점이 특히 매력적인데, 한정된 요소와 이야기들의 충돌로 강렬한 시너지 효과를 발생시켰다는 점이 그렇다. 별다른 기교나 장치없이 극적 긴장감을 형성하는 알렉스 가랜드 감독의 스타일리시하고 디테일한 연출력은 그 점에서 빛났다.(장르:SF 등급:청소년 관람불가)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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