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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시론] 남북관계에서 갑과 을

2015-09-23
20150923
최철영 (대구대 법학과 교수)

북한의 DMZ 목함지뢰 도발 이후 남북은 대결상태 해소와 이산가족 상봉 등을 포함하는 8·25 남북합의를 도출했다. 북한의 저강도 도발에 대해 보상 없이 이루어진 이번 합의는 현 정부의 큰 성과다. 하지만 합의내용은 불안하다. 현재와 미래의 협상 주도권이 역전되도록 짜여있는 합의내용 때문이다.

우선 8·25 남북합의는 당장의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지뢰도발에 대한 북의 사과와 우리의 확성기 방송 중단, 그리고 북한의 준전시상태 해제를 담고 있다. 이들 문제에 있어서 협상의 갑(甲)은 우리였고 북한은 을(乙)이었다. 우리가 갑일 수 있었던 것은 지뢰도발의 피해자였기 때문이 아니라 대북확성기가 가지고 있는 위력 때문이었다.

북한의 지뢰도발 이후 우리 정부는 중단한 지 11년 만에 전방에서의 대북확성기 방송을 재개하였다. 대북확성기 방송을 듣는 전방 DMZ에 근무하는 북한사병들은 일반적으로 출신성분이 좋지 않다. 더욱이 열악한 군대 내 식량사정으로 불만이 가득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기가 유지되는 것은 대북방송의 내용이 거짓이라는 지속적인 정신교육 때문이다.

하지만 대북확성기 방송에서 나오는 음악은 이념을 넘어선다. 아이유, 빅뱅, 소녀시대 등의 생기 넘치는 음악을 듣는 북한의 사병들은 청춘의 감성으로 이들의 음악을 받아들인다. 또한 대북확성기 방송에서 나오는 날씨 방송의 정확성은 대북확성기 방송에 대한 신뢰를 갖게 한다. 북한 병사는 남한의 날씨 방송을 기다리고 남한 가수들의 노래를 흥얼거리게 된다. 생각과 행동이 불일치하는 이 상황에서 북한병사들은 밖으로 표현된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게 되며, 이는 생각의 변화로 이어진다. 결국 북한 군인과 주민은 남한을 선망하게 되고, 이는 북한 최고위층의 정권적 정당성에 대한 의심으로 이어진다. 북한의 내부적 결속력이 위협받는 다급한 상황에서 북한은 을의 지위에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8·25 남북합의의 다른 내용인 남북관계개선을 위한 당국 간 회담, 이산가족 상봉행사, 다양한 분야에서 민간교류활성화 문제에 있어서는 북이 갑이 되고 우리는 을의 처지에 놓이게 된다. 협상 당시에는 우리가 갑이었기 때문에 북은 우리의 요구를 수용하였지만 이들 합의의 이행을 위해서는 추후 합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갑을 관계의 변화가 발생한다.

관계변화의 가장 큰 변수는 바로 10월10일 북한 노동당창건 70주년 행사다. 북한은 전 주민과 군인을 동원해서 이 행사를 유례없이 큰 행사로 준비하고 있다. 그런데 준전시상태 선포로 군인과 주민들을 비상대기 시켜놓았으니 행사준비에 차질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북한이 대결상태 해소를 위해 자존심을 낮춘 이유다. 따라서 당 창건 행사가 끝나고 나면 북의 입장은 얼마든지 표변할 수 있다. 10·10 이전인 추석 전후에 남북이산가족 상봉행사를 성사시키려는 우리 측의 끈질긴 요구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갑의 위치에서 10·20 이후로 행사를 관철시킨 배경이다.

지금 북한은 이산가족상봉 행사를 볼모로 삼아 우리를 압박하면서 당 창건일을 전후하여 장거리미사일 발사와 핵무기실험 가능성을 흘리고 있다. 우리 정부는 핵사용 징후 시 북한 최고지도자 제거를 내용으로 하는 작전계획 5015를 발표하였다. 갑의 위치를 차지하기 위한 남북의 권력투쟁이다.

하지만 남북관계의 갑은 남북 주민의 평화와 행복이어야 한다. 북한의 보여주기식 도발은 이미 예견된 정치적 이벤트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최고 가치로서 인도주의 실현을 위해 이산가족의 상봉은 반드시 성사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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