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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식 한국해사기술 회장 “산업화, 박정희 대통령 결단 덕에 가능”

2015-09-25

영남일보 CEO아카데미 특강

신동식 한국해사기술 회장 “산업화, 박정희 대통령 결단 덕에 가능”
신동식 <주>한국해사기술 회장이 22일 영남일보 강당에서 열린 영남일보 CEO아카데미에서 ‘박정희 대통령과 한국의 조선산업, 그리고 나’를 주제로 강의를 하고 있다. 황인무기자 him7942@yeongnam.com

“잘 살아야 민주주의도 가능합니다.”

한국 조선산업 발전의 산 역사로 불리는 신동식 <주>한국해사기술 회장(83)이 지난 22일 대구를 찾았다. 신 회장은 이날 대구시 신천동 영남일보 대강당에서 열린 영남일보 CEO아카데미 강연에서 ‘박정희 대통령과 한국의 조선산업 그리고 나’라는 주제의 강연을 펼쳤다.

신 회장은 “오늘날 산업화는 박정희 대통령의 결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경제개발에 동참할 수 있었던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신 회장은 “애초 군사정권의 경제관료가 될 마음은 없었다”고 밝혔다. 6·25전쟁 당시 학도의용군으로 참전해 간신히 목숨을 건졌고, 피나는 노력 끝에 세계 최대의 선박 관련 조직인 로이드(LLOYD’S)에 입사했다. 한국은 전쟁 후유증으로 극심한 사회적 혼란이 지속돼 귀국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이후 고국이 4·19, 5·16 등의 격동기를 겪었지만 애써 외면했다.

하지만 신 회장은 박 대통령과의 만남을 계기로 조국의 현실에 관심을 갖게 된다. 우연히 로이드 일본 지사로 출장을 오면서 박 대통령과 신 회장의 첫 만남이 이뤄졌다. 5·16 직후 미국 케네디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중간기착지로 일본에 들렀던 박 대통령이 젊은 엔지니어의 귀국을 종용했던 것이다.

당시 박 대통령은 “당신의 경험을 조국발전을 위해 써달라”며 신 회장을 설득했고, 얼마 후 신 회장은 대한조선공사(현 한진중공업) 기술고문을 맡게 된다. 이후 신 회장은 조국의 현실에 괴리를 느끼고 다시 미국행을 선택하는 등 우여곡절도 겪었다. 결국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발탁돼 한국 조선산업 전반의 발전을 이끌어 냈다.

봉화 출신인 신 회장은 서울대 해양조선공학과를 졸업한 뒤 스웨덴과 영국에서 조선공학을 공부했다. 경제기획원 고문을 비롯해 대통령정무비서관과 경제수석 비서관을 역임했다. 이후 장관급인 대통령 직속 해사행정특별심의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냈다.

임훈기자 hoony@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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