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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소설가 표성흠의 캄보디아 편지] 바탐방의 대나무기차와 프놈 삼파우

2016-05-13

驛도 기관사도 없지만 ‘덜커덩 덜컹’…대나무기차는 달린다

20160513
관광객들이 세계 유일의 대나무 기차를 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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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놈 삼파우의 천연동굴에서 나온 박쥐 떼 행렬.
20160513
바탐방의 상징물인 검은 할아버지가 두 손으로 들고 있는 긴 막대기다. ‘잃어버린 서까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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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부들이 잡아 온 고기들을 손질해 젓갈을 담그고 있는 호숫가 사람들.

캄보디아엔 기차가 없다. 그런데 선로는 있다. 보수공사를 하는 지역도 있는 것을 보면 곧 기차가 다시 운행될 전망이 있긴 한 것 같은데 그때가 언제인지는 알 수 없다.

과거 프랑스 식민지 시대엔 기적 소리도 요란하게 기차가 달렸다 한다. 하지만 승객을 실어 나르기 위한 기차는 아니었던 것 같다. 역이 있었던 자리를 잘 살펴보면 대합실보다는 정미소와 창고가 더 가까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화물 수송이 목적인 철도였다는 이야기다. 바탐방은 캄보디아에서도 가장 질 좋은 쌀 생산지로 2모작, 3모작까지 가능한 곡창지대다. 풍성한 쌀을 실어 나르기 위한 수탈의 철도.

이 선로의 끝은 이웃 나라 태국으로 연결이 돼 있긴 하지만 항구도시 시하눅빌이 종착역이며 시발점이다. 시하눅빌 인근에 프랑스인들이 살던 별장 지역이 있고 바탐방에는 프랑스풍의 주지사 관저 같은 공공건축물들이 많이 남아 있는 것을 보면, 과거 일제가 건설한 우리나라 철도를 떠올리게 된다. 군산, 목포, 진해 등지의 항구에다가 역을 건설하여 영·호남평야의 쌀을 수탈해갔듯, 여기서도 침략자들의 철도건설 목적을 엿보게 된다. 이 철로를 통해 쌀과 흑단목 같은 목재와 앙코르 유적지의 문화재를 반출해 나갔던 것이다. ‘인간의 조건’이라는 세기적 소설을 쓴 프랑스의 작가 앙드레 말로도 앙코르 유적지의 문화재를 밀반출하려다가 옥살이를 한 적이 있음을 상기한다면, 캄보디아의 철도는 그냥 철로가 아니라 수탈의 역사 그 자체다. 어쨌든 괴물 같은 이 철로는 녹슬고, 둑길엔 잡목들이 우거져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거나 소들이 풀을 뜯으며 어슬렁거린다.

佛 식민지시대 물자수송 목적 철로
지금은 현지인 이동수단 겸 관광상품
교행땐 승객·화물량·운전자 나이 順
적은 쪽이 기차 분리해 선로밖 대기

킬링필드 강제노동현장 인공저수지
프놈 삼파우 ‘죽음의 동굴’ 고스란히
해질녘 박쥐동굴의 박쥐떼 행렬 장관
도심서 생선 젓갈 담그는 모습 이색

◆ 지붕도 의자도 없는 명물 기차

목가적인 풍경이라고 보기엔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러한 철길을 이용해 대나무 기차를 굴려 관광상품으로 접목시켰다. 세계에서 유일한 대나무 기차라는 선전이 호기심을 사로잡아 이색체험을 즐기려는 관광객들이 줄을 선다. 대나무 기차는 기존 선로를 이용한 현지인들의 교통수단으로 선로 위에 네 개의 굴렁쇠 바퀴를 놓고 그 위에 대나무 평상처럼 짠 탈것을 얹어 짐을 날랐던 것이 시초다. 처음에는 사람이 밀다가 더 발전해 사람이 타고 기다란 막대 같은 것으로 밀어 무거운 짐을 운송했지만 지금은 모터를 달아 동력으로 움직인다. 이웃 마을에 장 보러 갈 때 타거나 화물을 운송할 목적이었지만 지금은 관광열차가 돼 내·외국인을 막론하고 즐겨 찾는 명물이 되었다.

이 대나무 기차의 재미는 무방비 상태의 대나무 평상에서 즐기는 덜커덩거리는 속도감도 있지만 상·하행선 기차끼리 서로 교행할 때 기차를 분리시켜 선로 밖으로 비켰다가 다시 조립하는 이색적인 체험을 하는 것이다. 종착역에는 과일과 음료, 기념품을 파는 가게까지 생겨 현지인들로선 생계수단이 되기도 한다. 선로가 단선이기 때문에 기차끼리 만나면 승객이 적은 팀이 내려서 기차를 선로 밖으로 들어내야 한다는 기본원칙이 있다. 화물이 많은 기차가 우선이라는 원칙도 있다. 때문에 사람을 우선으로 할 것인지 화물을 우선순위로 할 것인지를 따지는 시비가 일기도 하지만, 이럴 때는 운전자의 나이순으로 이루어지기도 하는 미덕을 볼 수도 있다.

그 화물이 또 재미있다. 바나나나 망고 같은 농산물도 있고 톤레삽 호수에서 잡은 고기가 있는가 하면 송아지며 염소·오리 따위 가축이 승객이기도 하다. 옛날 인천 소래포구를 지나다니던 경인선 협궤열차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바탐방의 대나무 기차는 지붕도 없고 의자도 없다.

◆ 바탐방 검은 할아버지 막대기

바탐방은 바탐방주의 주도로 캄보디아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큰 도시다. 각 주에는 그 도시의 이름을 상징하는 조각물이 있는데, 바탐방의 상징물은 로터리에 세워져 있는 검은 할아버지가 두 손으로 들고 있는 긴 막대기다. ‘잃어버린 서까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서까래는 대들보에 걸쳐 지붕을 이게 해 비를 막아주는 주요 건축자재로, 이 서까래를 잃어버렸다는 것은 어떤 침략자로부터 집을 빼앗겼다는 뜻이 될 터. 프랑스인들에게 나라를 빼앗긴 설움을 상징하는 것이냐는 질문에는 그건 아니라고 하면서도 정확한 시기를 아는 사람은 없다. 한마디로 그러한 역사학자가 살아남지 못한 캄푸치아의 비극이 여기 있다.

킬링필드로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강제노동의 현장인 바탐방 인공저수지도 여기 있고 학살의 현장인 프놈 삼파우도 바탐방에 있다.

프놈 삼파우는 조그만 산이지만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도심에서 남서쪽 파일린 방향으로 12㎞ 떨어진 이 화강암 언덕 위에는 사원들과 전망대, 죽음의 동굴, 박쥐동굴 등 볼거리들이 산재해 있는데 곳곳에 원숭이들이 어슬렁거리고 있어 조심해야 한다. 수직에 가까운 절벽 계단을 타고 올라가는 길 옆에 박쥐동굴이 있다. 해 질 때를 맞춰 가면 시간이 멈춘 듯 태곳적 동굴에서 끊임없이 날아 나오는 박쥐들의 행렬을 볼 수 있어 오후에 정상을 올랐다가 내려와 동굴 앞에서 일몰을 기다리는 요령이 필요하다. 산 중턱에서 또 하나의 동굴을 만나게 되는데 과거 크메르루즈들이 참혹한 방법으로 학살을 자행했다는 죽음의 동굴이다. 이 ‘프놈 삼파우 죽음의 동굴’은 크메르루즈들이 이곳을 점령하고 있던 당시의 학살현장으로, 총알을 아끼기 위해 매우 날카로운 종려나무 잎을 톱처럼 만들어 목을 베어 동굴에 내던졌다고 한다. 그 해골들이 유리관 속에 보관 전시되고 있다.

여기 잠시 쉬면서 오세아니아를 점령한 백인들이 원주민들의 땅을 뺏기 위해 절벽에서 밀어 던졌다는 애보리진과 아메리카 대륙을 점령한 백인들이 무참히 도륙한 인디언들을 떠올려본다.

그렇다면 크메르루즈들은 도대체 무엇을 위하여 200만명에 가까운 동족을 학살했던가. 무엇이 저들로 하여금 미쳐 날뛰게 만들었을 것인가. 캄보디아 여행 중 내내 생각하게 되는 이 이념 전쟁을 여기서도 떠올려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저들은 바탐방에 인간이 더 이상 만들 수 없을 만큼 큰 인공저수지를 만들었다. 가뭄에 시달림 없이 안정적인 농사를 짓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시작된 트레퐁 터머와 바탐방 저수지는 아직도 완공 상태는 아니지만 농사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동전의 양면 같은 이 모순의 역사를 생각하며 정상을 향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산 정상부에는 크메르루즈 본부가 있던 프놈 크라베우를 겨냥하고 있는 대포 두 문이 있고, 사후약방문 격이겠지만 학살된 자를 위한 위령기도처도 있다.

다시 시내를 돌아본다.

바탐방은 톤레삽 호수로 유입되는 기나긴 수로와 연결돼 있다. 이 수로 옆에서는 어부들이 산다. 그러니 고기잡이나 젓갈 담그는 광경조차 이색적인 볼거리가 된다. 큰 트럭에 잔뜩 실은 물고기를 도로에 그대로 부려놓고 삽으로 퍼 담는 광경을 어디서 또 볼 것인가. 이 고기들에 소금을 뿌려 젓갈 담그는 모습을 어디서 또 촬영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런 생활의 현장을 빼놓으면 여행이 아니다. 마치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도심에서 해변을 보는 것 같다. 다행스럽게도 바탐방에서 가장 큰 뷔페식당이 한국인이 경영하는 곳이라 삼겹살에 김치 맛까지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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