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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인물 - 이 세계] 노하룡 극단 삼산이수 대표

2016-06-18

뚝심의 사나이, 연극을 김천 대표상품으로 만들다
<이 사람이 사는 세계>
스피치 향상 위해 들어간 극단
직장까지 그만두고 꾸준히 운영
김천가족연극제 성공 큰 역할
“지방서 사람·돈 부족해도 도전”

[토요인물 - 이 세계] 노하룡 극단 삼산이수 대표
극단 ‘삼산이수’의 소극장을 배경으로 노하룡 대표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천] 문학·미술·무용·음악 등이 함께 어우러지는 연극을 두고 종합예술이라 일컫는다. 연극은 특정 시간과 공간 속에서 재구성된 인간의 경험을 몸짓과 언어로 표현하는, 인간의 삶을 가장 유사하게 담아내는 예술로 정의되고 있다. 종교·교육·사회·오락·심리 등 다양한 기능을 가졌다는 점에서 지역, 기업, 학교, 가정 등 각 공동체의 정체성 확인을 통한 구심점 마련에 가장 적합한 예술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실은 척박하기만 하다. 생존수단으로도 부적합하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대도시도 아닌 중소도시 김천에서 고집스럽게 ‘연극운동’을 하는 사람이 있다.

노하룡 극단 삼산이수 대표(48). 소년기를 보내면서 문학에 심취했던 그는 대학 졸업 후 신문기자가 됐다. 어릴 적 가끔 배우를 동경한 적이 있지만 본격적으로 연극을 접한 건 성년이 되고 난 이후다. 노 대표와 연극의 만남은 지극히 실용적인 공간에서 이뤄졌다. 타인과의 대화에서 자신의 생각을 언어로 표현하는 데 서툴렀던 그는 사람들 앞에서 말을 잘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 위해 아마추어 극단 ‘삼산이수’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내 연극이 내뿜는 마력에 사로잡히고 만다. 그는 이를 ‘어울림과 소통의 매력’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연극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연명의 수단이었던 직장을 그만둔 그는 가난하기 짝이 없는 아마추어 연극 무대를 일터로 삼았다. 극단의 일상 사무에서부터 공연까지 모든 일을 챙겨야 하는, 대책 없는 인생이 시작된 것이다. 이때 그의 나이 서른 무렵. 연기 공부에 미쳐버린 그는 그래도 ‘보랏빛’ 연극인생을 꿈꾸었다.

하지만 현실은 대개 그렇듯 녹록지 않았다. 가장 난감한 일은 단원(배우) 수급. 단원을 구하는 과정에서도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지만, 연기수업을 받은 단원조차 겨우 한두 번 무대에 오르곤 그만두기 일쑤였다. 상대적으로 먹고살기 수월한 외지로 떠나는 이들을 붙잡을 수는 없었다. 떠나면 다시 뽑고, 배우 수업을 마치면 떠나는 악순환은 무려 20여년간 계속됐다. 결국 2~3명의 배우가 꾸려가는 영세한 극단 신세를 면치 못한 것이다.

상황이 이쯤 되면 작품을 무대에 올리고, 관객을 모으는 일은 후차적인 과제로 전락하고 만다. 그가 겪은 곤궁함은 오죽했겠는가. 그럼 노 대표가 이런 고생을 하는 이유는 뭘까. 여기에는 자신이 아니면 “김천에 연극문화를 퍼뜨릴 사람이 없다”는 일종의 나르시시즘이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김천 연극에서만큼은 자신이 ‘유일한 존재’라는 강한 자의식은 그를 살아남게 한 동력이 되었을 터이다.

노 대표의 뚝심은 2008년부터 김천국제가족연극제가 열리면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노 대표는 성인극 중심의 연극제에서 아동청소년극연극제로 전환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김천연극협회가 주관한 가족연극제는 김천뿐만 아니라 인근 지역에서도 구름관중이 몰려올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해를 거듭할수록 지명도가 높아지면서 가족연극제는 이제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김천의 대표적인 문화상품이 됐다.

이 사이에 극단 삼산이수는 사단법인 예술전문법인체로 거듭나 전업 배우를 양성하는 한편, 소극장·연극교실·어린이극단·청소년극단·주부극단 등을 운영하며 연극의 저변을 넓혀가는 데 온 힘을 쏟았다. 노 대표는 김천연극협회장, 경북연극협회장 등을 역임하며 연극계의 중진으로 성장했고, 뒤늦게 대학원에 진학해 연극 관련 학위(석사)를 받는 등 보다 내실 있는 ‘연극 보급’을 위한 내공을 다졌다.

노 대표나 김천 연극인들의 고생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연극을 통해 ‘빵’을 얻는 일은 여전히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이 정도라도 모양을 갖추는 데는 김천시의 지원이 중요한 요소가 됐다. 노 대표 주변에는 연극에 관심이 없을지라도 연극이 잘 되길 바라는 이가 늘어가고 있다. 일관된 그의 연극인생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해석된다.

노 대표는 “연극은 혼자가 아닌 집단이 어우러져야 하는, 사람과의 관계가 중요한 예술인 까닭에 동지들과 함께 연극이라는 밭을 일궈가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더욱이 사람부터 돈까지 모든 게 부족한 지방에서의 연극활동은 도전의 연속으로, ‘동지들과 함께하는 운동’이라고 표현해도 무방할 것”이라고 말했다.

글·사진=박현주기자 hjpar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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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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