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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경남 하동군 악양면 최참판댁

2016-08-19

소설 ‘토지’의 세상으로 들어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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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참판댁 앞에서 본 악양들. 저 멀리 섬진강 물줄기가 어슴푸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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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참판댁의 별당. 서희가 지내던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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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세트장. 드라마에서 사람이 살던 그대로 보존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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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변의 평사리 공원. 개치 나루가 있던 곳으로 악양 ‘토지길’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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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세트장 내 장터와 주막. 실제로 식당이 운영되고 있다.


섬진강 물줄기 따라 달리다 너른 들판 사이 길로 들어선다. 지리산과 섬진강이 에워싼 작은 땅, 그러나 드넓은 들. 악양들 혹은 평사리 들판이다. 들판 한가운데 두 그루 소나무가 장승처럼 서 있고 저 높은 형제봉은 구름에 젖어 있다. 들판과 봉우리 사이 언덕진 곳에 초가와 기와가 그득하다. 실제가 아닌 실제, 소설 ‘토지’의 무대 평사리다.

지리산·섬진강이 에워싼 평사리들판
박경리 선생 작품 속 공간 그대로 재현
최참판댁·용이네는 물론 장터·주막 등
너무나 익숙해 소설 기억이 실제인 양

슬로시티 만끽할 18㎞ ‘토지길’도 조성

◆가상이 현실이 되는 곳, 최참판댁

박경리 선생이 귀천하신 지 벌써 8년. 선생의 대하소설 ‘토지’는 구한말 동학혁명에서 일제강점기를 거쳐 1945년 광복까지 우리 민족의 고단한 역사를 담은 작품으로, 1969년부터 집필을 시작해 무려 26년에 걸쳐 완성되었다. 우리는 2006년의 드라마 ‘토지’를 더 가깝고 강하게 기억한다. “찢어 죽이고 말려 죽일 거야”라는 어린 소녀의 외침을 어찌 잊겠나.

평사리 마을은 소설 ‘토지’의 무대를 그대로 재현해 놓은 공간이다. 선생은 직접 이곳을 둘러보고 소설을 썼다고 한다. 2001년 경에 최참판댁을 재현해 지었고, 이후 드라마 ‘토지’의 세트장이 조성되었다고 한다. 이후 10편의 드라마와 5편의 영화가 이곳에서 제작되었고, TV 예능 및 교양 프로그램도 촬영되었다고 한다. ‘토지 세트장’이나 ‘평사리’라 불릴 법한데 ‘최참판댁’이 대표 이름이다.

최참판댁으로 오르는 언덕 길 양쪽에는 기념품 가게와 식당이 늘어서 있다. 천연 염색으로 제작한 여러 제품과 수공예품들, 즉석에서 그려주는 초상화 엽서 등이 인기가 많다. 가겟집들은 실제로 사람이 살고 있다는 착각이 들게 한다. 가끔 뒤돌아보면 가파르게 하강하는 길 끝에서 평사리 들이 든든하게 지켜서보고 있다. 천천히 다녀 와, 나 여기 기다리고 있을게 하는 듯이.

곧 숲으로 둘러싸인 초가집들이 좌우에 옹기종기 무리지어 나타난다. 용이네, 칠성이네 등 소설 속 등장 인물들이 살던 집이다. 장터와 주막도 있다. 평일 늦은 시간이라 모두들 귀가한 모양이다. 목이 긴 투박한 술병들과 초가 마루에 줄 지어 앉은 소반들이 막걸리를 들이켜는 용이 아제와 왁자한 장터의 환영을 보여주는데 ‘물은 셀프’라는 글귀에 그만 웃고 만다.

장터 위 언덕의 가장 높은 자리에 대지주인 최참판댁 한옥이 자리한다. 커다란 집은 안채와 사랑채, 별당채, 문간채, 행랑채, 중문채, 사당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박경리 선생은 이 집을 그릴 때 ‘조씨 고가’를 모델로 삼았다고 전한다. 조씨 고가는 평사리에서 멀지 않은 악양 정서리에 있는 조선후기 상류층의 가옥으로, 조선의 개국공신이었던 조준의 후손 조재희가 낙향해 10여년에 걸쳐 지은 고택이다.

최참판댁 앞에 최 참판이 동상으로 앉아 있다. 아래로 마을의 지붕들이 물결을 이루고, 그 너머로 평사리 들판이 펼쳐져 있다. 섬진강의 물줄기는 먼 데서 아슴푸레하다.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마을이다. 그러나 너무나 익숙한 모습에서 소설의 기억은 실제의 기억이 되어 버린다. 이곳에서 주인공 서희와 길상은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이들조차 무람없이 행복할 수 없는 시절이었다.

◆세계 111번째 슬로시티, 악양

평사리가 위치한 악양면은 신라와 당나라가 연합하여 백제를 칠 때,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중국 후난성의 악양과 닮았다고 붙인 이름이라 한다. 땅은 섬진강을 앞에 두고 삼 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작은 분지로, 14개 법정리와 30개 자연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일조량이 풍부해 철마다 다양한 작물을 번갈아 수확하고, 왕에게 진상했던 대봉감이 자라고, 천 년을 넘게 지켜온 야생 차밭이 있다. 그리고 악양에는 비닐하우스가 없다.

악양은 2009년 슬로시티로 지정되었다. 세계에서 111번째, 국내에서는 5번째다. 차재배지로는 세계에서 처음인데, 하동의 녹차는 2009년부터 세계슬로시티연맹 총회의 공식지정 특산품이 되었다고 한다. 세계인의 차인 하동 차는 악양의 ‘매암 차문화 박물관’에서 접할 수 있다.

평사리 들판의 끝자락에는, 버드나무 가지가 드리워져 호젓이 산책하기 좋은 동정호가 있다. 들판 한복판에 나란히 자라는 부부송도 흐뭇한 볼거리다. 사람들은 이 두 그루 소나무를 서희와 길상으로 여긴다. 하덕마을에는 골목길 갤러리가 조성되어 있다. 이 마을에서 태어난 고 정서운 할머니는 소녀시절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다. 그 역사는 골목길에 이승현 작가의 ‘만남’이라는 작품으로 기록되어 있다. 악양면 앞을 흐르는 섬진강 가에는 평사리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악양의 섬진강은 소리 없이 느리게 흘러간다.

◆악양 토지길

악양에는 슬로시티 악양과 소설 ‘토지’ 전체를 껴안은 ‘토지길’이 조성되어 있다. 섬진강변의 평사리 공원에서 출발해 회귀하는 코스로 18㎞ 정도다. 공원에서 출발, 평사리 들판을 가로지르고, 동정호와 부부송을 지나 최참판댁에 이른다. 그리고 산 중턱 길을 따라 입석마을로 향하고 조씨고가의 문을 두드렸다가 악양천을 따라 취간림으로 스며든다.

취간림은 푸를 취(翠) 산골물 간(澗) 수풀 림(林), 즉 푸른 개울물 옆의 숲이다. 악양천의 중간지점에 수구막이로 나무를 심으면서 숲이 되었는데, 숲 한가운데는 일제강점기 지리산 일대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순국한 3천여 명의 항일독립투사를 기리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그리고 다시 악양천과 함께 흘러 섬진강으로 돌아온다. 평사리 공원은 옛날 개치 나루가 있던 곳이라 한다.

소설 속 최참판은 나루터에 내려 들판을 가로질러 집으로 간다. 토지길은 그 걸음으로 출발해 서희와 길상과 동시대 청년들의 역사를 지나 오늘에 닿는 길이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정보

남해 고속도로 하동IC로 나가 19번 도로 구례쪽으로 간다. 하동읍 지나 조금 가면 악양면이다. 섬진강 가 평사리 공원에서 도로를 사이에 두고 평사리 들판이 펼쳐져 있다. 최참판댁 입장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입장료는 어른 2천원, 청소년과 군인 1천500원, 어린이 1천원이다. 주차는 무료. 전통한옥 숙박체험도 할 수 있다. 매암 차문화 박물관은 악양면사무소 부근에 위치한다. 평사리 공원에서는 캠핑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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