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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정영희의 ‘천 개의 도시 천 개의 이야기’] 모로코 메르주가

2016-12-23

바람 따라 꿈틀꿈틀…절대 고요의 사막을 걷다

20161223
해 질 무렵 사구의 제일 높은 곳에 올라 사막의 일몰을 감상한다.
20161223
사막 입문의 첫 단계는 낙타 타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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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구의 움푹 파인 곳에 자리 잡은 사막 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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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의 색깔은 해의 방향과 기우는 정도에 따라 변화무쌍하다.

마라케시서 버스로 12시간 메르주가
사하라사막 에르그 셰비로 가는 관문
요새도시 아이트 벤 하두도 놓치면 후회

숙소마다 여행자 위한 사막투어 마련
게스트하우스에 여장풀고 점심때 출발
낙타 타고 1시간…사막 중간 캠프 도착
모래썰매·걷기에 전통부족 천막 숙박
별 헤는 밤 이어 이튿날 사막 일출 감탄


모로코 마라케시를 떠난 버스가 흙바람을 일으키며 평지를 달린다. 아틀라스 산맥을 넘을 참이다. 경치를 본답시고 제일 앞 좌석을 예매했는데, 구부러진 길의 코너를 돌 때마다 그 험준함이 적나라하게 보여 어질어질하다. 버스 탑승만 열두 시간. 메르주가로 가는 길은 절대 만만치 않다. 구불구불 비포장길을 종일 달려야 하니 체력은 기본이고 먹을 것도 든든히 챙겨야 한다. 벌건 흙집, 누런 흙집, 흙바람 날리는 대평원, 잊을 만하면 나타나는 바위산. 온 나라에 흙을 끼얹기라도 한 것 같은 생경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다행히 지루할 틈은 없다.

아틀라스 산맥을 넘으며 처음 차가 멈춘 곳에 기념품 가게가 있었다. 전통 그릇인 고깔 모양 토기를 주르르 늘어놓고 판다. 흥미롭긴 한데 여행 내내 들고 다닐 엄두가 안 나 구경만 할 뿐이다. 조금 더 달려 나타난 휴게소에선 양고기를 구워 파는데 그 맛이 정말 끝내준다. 바로 잡아 냉장고조차 거치지 않은 고기를 그 자리에서 토막 내 한참 달군 숯불에 지글지글. 육즙을 가득 품은 신선한 양고기 맛에 빠져들어 이후부턴 휴게소가 나타나기만 고대한다. 이 고행(?)길의 목표가 사막투어가 아니라 휴게소 양고기 투어라도 된 것처럼 말이다(다시 찾게 된다면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

메르주가를 향해 가다 보면 스쳐 지나가기엔 아쉬운 장소가 종종 나타난다. 특히 아이트 벤 하두가 그렇다. 전통 부족 베르베르인이 거주하는 요새 도시 아이트 벤 하두는 198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고대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이 독특한 마을은 영화 속에 여러 차례 등장했다. ‘글래디에이터’와 ‘미라’ 등 할리우드 영화 수십 편이 이곳에서 촬영됐단다. 영화로 이름을 떨친 것에 비해 관광지로선 덜 유명하다. 아직은 마라케시에서 출발한 사하라 투어 차량이 잠시 거쳐 가는 곳 중 한 군데일 뿐이다.

◆에르그 셰비를 거쳐 사하라 사막으로

열두 시간 버스로 달려온 곳은 사막 마을 메르주가다. 사하라 사막은 북아프리카 11개 나라를 아우르는 광대한 지역에 뻗어있다. 사막은 대부분 암석 고원과 소금, 모래로 구성되는데 우리가 아는 모래사막은 전체 면적의 20%에 불과하다. 정치적 이유로 일부 지역은 관광객이 접근할 수 없지만, 모로코나 리비아, 튀니지의 사구는 가능하다. 그중 가장 쉽게 방문할 수 있는 곳이 모로코 남동부의 에르그 셰비(Erg Chebbi). 그 셰비 사구로 가는 관문이 바로 작은 마을 메르주가다.

메르주가에 접근하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다. 사람들은 보통 사륜구동 자동차를 타고 마라케시에서 왕복하는 가이드 투어를 선택한다. 차를 빌려 직접 운전하는 이도 있다. 도로를 따라 게스트 하우스가 자주 나타나고 큰 마을엔 주유소도 있으니 자유롭게 다닐 수 있다. 단, 도시 사이가 멀기 때문에 연료 잔량에 항상 신경 써야 한다. 저렴하고 안전한 대중교통도 있다. 수프라 투어 버스는 마라케시, 페스, 메크네스와 메르주가를 각각 연결한다. 그 경로 중 토드라 및 다데스 협곡, 아이트 벤 하두 정류장에 정차한다. 여행사를 끼지 않고 메르주가에 도착했더라도 호텔이 대부분 사막 투어 프로그램을 준비해놓고 있으니 걱정할 건 없다.

메르주가 숙소는 한국인에게 잘 알려진 ‘알리 게스트하우스(정식 명칭은 Auberge L’oasis)’로 예약을 했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일본인이 먼저 개척한 루트를 따라 한국인이 움직이고 그 후에 중국인이 몰린다는 느낌을 종종 받는다. 모로코 사람인 알리가 운영하는 이 게스트하우스도 오래전 일본인들에게 꽤 알려진 후 한국인이 하나둘 찾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금은 오히려 한국인 손님이 대부분이다. 알리 게스트하우스엔 비수기인 그때도 여덟 명의 한국인이 있었다. 특이한 것은 한 명을 제외한 나머지가 장기 여행자였다는 점이다. 여행한 지 두 달 된 휴학생, 하던 일을 그만두고 6개월째 같이 다니는 연인, 그리고 아르바이트하며 여행을 하던 20대 여자는 한국을 떠난 지 1년이 넘었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일을 그만두지 않고선 꿈꿀 수 없는 장기여행. 모로코가 한국에서 멀기도 하고, 여행 기간이 짧다면 메르주가까지 가는 건 엄두조차 나지 않으니 그럴 만했다. 대부분 기한 없는 여행을 하더란 것도 공통점이다. 장기여행자에서 제외됐던 한 명은 일주일 휴가를 온전히 메르주가에서만 보내기 위해 온 사람이었다.

◆낙타 타고 사막을 걷다

어떤 여행사, 호텔이든 운영하는 셰비 투어 형식은 거의 같다. 일단 메르주가에 도착하면 숙소에 여장을 풀고 간단한 소지품만 챙겨 점심 즈음 사막으로 출발한다. 사막 입문을 위한 첫 단계는 낙타 등에 오르기. 쌍봉낙타들은 메르스 감염과 상관없다는 설명에 일단 안심하고 낙타에 슬그머니 다가간다(메르스 바이러스를 매개한 낙타는 중동지역이 주 서식지인 단봉낙타다). 낙타는 이전에 경험이 없더라도 누구라도 탈 수 있다. 바닥에 엎드려있는 낙타 등에 오르는 건 별일이 아니다. 그.러.나. 낙타가 일어설 땐 좀 과장해서 생명의 위협까지 느낀다. 가이드가 신호를 주면 낙타가 일어나며 등이 순식간에 솟구치는데 이때 손잡이를 대충 잡고 있으면 앞으로 고꾸라지기 십상이다. 낙타가 사구의 모서리를 따라 오르내릴 때도 중심 잡는 데 온 힘을 집중한다. 떨어져 봤자 푹신한 모래밭. 재미 삼아 일부러 떨어지는 사람도 있다 들었다. 주변을 둘러볼 겨를이 생기면 햇빛에 환하게 빛나는 고운 모래가 눈에 들어온다. 단지 모래 언덕일 뿐인데 정말 아름답다. 100m 이상의 높이, 날렵하게 꺾인 모서리, 그리고 빛의 굴절이 느껴지는 사면. 경이로운 풍경을 감상하며 머리 위에는 뜨거운 태양을 얹은 채 사막 중간에 있는 캠프까지 1시간을 간다.

북아프리카 토착 민족인 베르베르인의 위엄을 느끼는 것도 이때다. 우리 일행은 가이드를 포함해 총 8명. 2명의 베르베르인 가이드는 걸어서 낙타를 이끈다. 나침반도, 이정표도 없는 모래밭을 이리저리 가늠해가며 한 시간 거리의 목적지로 인도하는 모습이 놀랍기만 하다. 매번 가는 길이겠지만 바람에 따라 사구의 모양이 바뀔 텐데. 더 놀라운 건 낙타를 타고 먼저 나선 우리보다 한참 뒤에 출발한 알리가 캠프에 먼저 도착해 주변을 점검하고 있더라는 것. 축지법이라도 쓴 걸까. 5개 국어를 하는 데다 축지법까지 쓰는 알리라니.

손잡이를 얼마나 꽉 잡았는지, 허벅지엔 또 얼마나 힘을 줬는지 낙타에서 내리니 다리가 얼얼하고 후들거린다. 사막 캠프에 도착해 자유 시간을 가지는 동안 점심이 준비됐다. 고된 낙타 트레킹 후라 그런가 닭고기 타진과 신선한 샐러드로 차려놓은 모로코식 점심을 사람들은 순식간에 먹어 치운다. 식사 후엔 천막 그늘에 누워 낮잠도 청하고, 나무상자나 보드를 이용해 모래 썰매도 탄다. 모래 위를 걷다 보면 따뜻하고 가는 입자가 발가락 사이를 스르르 빠져나가는 느낌이 참 좋다. 별생각 없이 이리저리 걷기만 해도 편안하다. 좀 쉬었다 싶으니 다들 또 언덕을 낑낑대며 올라가 썰매를 타고 바람을 가르며 내려온다. 눈썰매 못지않다.

해 질 무렵이 되자 일행은 일몰을 보기 위해 제일 높은 사구에 올랐다. 붉은빛으로 물드는 광경을 바라보며 알리와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눈다. 사막에선 사진을 어찌 찍으면 되는지, 어떤 놀이가 신날지, 사막의 어떤 부분이 궁금한지, 아랍어로 한국 이름을 어떻게 쓰는지. 묻기도 전에 알리는 대답을 척척 내놓는다. 그런데도 그가 뻔하지 않은 건 박학다식하고, 적당히 웃기고, 적당히 진지하고, 어떤 말이든 진심 어린 눈빛으로 이야기해서일 거다. 그런 알리가 멍하게 앉아있는 우리에게 ‘행복’이라는 화두를 던진다. 그리고 누군가 답하기를, ‘행복은 곧 술’. 술을 팔 수도 마실 수도 없는 이슬람 국가인 모로코에서 답한 이는 알코올이 얼마나 그리웠을까! 반대로 알리에게 술 없이 무슨 재미로 사냐 물으니 ‘술이 없어도 충분히 행복해서 굳이 필요 없다’며 명쾌한 대답이 이어진다.

◆별빛 쏟아지는 천막에서의 하룻밤

해가 떨어지고 어둠이 찾아오니 베르베르 남자들은 또 바빠진다. 우선 저녁밥을 짓고, 식사 후에 즐길 공연도 준비한단다. 차를 마시는 동안 열린 베르베르 전통 공연은 이색적이고 흥겹다. 그 와중에 ‘매일 하는 일이니 진심으로 즐겁긴 힘들겠구나!’ 싶다. 오히려 그들을 신나게 하는 건 우리 몫이라는 생각도 들어 열심히 춤을 따라 하고 악기도 가르쳐주는 대로 두드려 본다. 소란스러움이 끝나고 각자의 방으로 갈 시간. 천막을 친 방은 생각보다 따뜻하고 운치 있다. 화장실이 따로 있긴 하지만 아무도 없는 컴컴한 모래밭을 이용해도 된단다. 볼일을 볼까 싶어 나갔더니 자는 줄 알았던 사람들이 모래밭에 담요를 깔고 누워있다. 나도 그 옆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 하늘은 무수한 별들로 가득하다. 별자리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그 많은 행성과 별자리, 그리고 성단까지 하나하나 찾아본다. 여기저기 유성도 떨어진다. 고요하다. 그렇게 별 헤는 밤을 보내고 천막으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 다음 날. 날이 밝기 전에 일어나 다시 낙타를 타고 캠프에서 조금 나오니 모래 언덕 위로 해가 솟는다. 사막의 아침은 잠잠하고 눈부셨다. 여행 중 가장 편안하다고 느꼈던 순간이다.

이 구석진 곳도 이제는 많이 알려져 메르주가를 찾는 행렬이 끝이 없다. 보석 같은 경치를 더 많은 사람이 누릴 수 있으니 좋기는 한데 그럴수록 본연의 매력은 사라질 테니 그 점은 아쉽고 한편 미안하기도 하다. 그럼에도 별빛 쏟아지는 베르베르인의 천막 아래 잠들고, 낙타 트레킹을 하고, 사막에서만 느낄 수 있는 절대 고요를 경험하기 위해 지금도 수많은 사람이 버킷 리스트에 사하라를 써넣고 있으리라. 그렇다면 부디 이 체험이 리스트의 위쪽에 놓이길 바란다.

여행칼럼니스트 android2019@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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