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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김찬일의 방방곡곡/길을 걷다] 대청호 둘레길 4구간

2017-01-13

시리도록 맑은 호수엔 점점이 앙증맞은 섬이 떠 있네

20170113
갈대 군락이 있는 전망 좋은 대청호 비경을 보며 걸을 수 있는 데크길.
20170113
둘레길에서 본 겨울 갈대 군락과 사파이어빛의 대청호 풍광이 신비롭다.
20170113
2005년 MBC 드라마 ‘슬픈 연가’ 촬영지. 주인공이 어린 시절을 보낸 오두막집이 있던 곳.
20170113
길 양쪽에 억새가 나부끼는 정취 가득한 겨울의 대청호 둘레길.

호수 끼고 S자로 끊임없는 모롱이들
숲과 갈대 속에 뱀허물처럼 누운 길
갈대군락 지나 시야에 드는 작은 섬

호수로 난 길 되돌아 드라마 촬영지
저편 조개섬 나무 풍광에 절로 ‘찰칵’
길가 廢船·枯木…모든 게 겨울 수채화


끼룩거리는 철새들의 울음이 간간이 떨어지는 추운 달밤에 겨울은 야간 비행으로 착륙했다. 해가 두 뼘이나 떠올랐는데도 대청호 둘레길 마산동 들머리에는 서리를 머리에 인 갈대가 서걱거리며 숨어있던 겨울바람을 부른다. 맨몸으로 군락을 이루어 왠지 서럽기 짝이 없는 고독과 소외감을 던져주는 저 갈대의 나부낌은 겨울나라 호수의 영상이다. 갈대 군락을 걸어가면 두 길이 나온다. 우리는 오른쪽으로 가는 길로 걷는다. 벌써부터 대청호의 아름다움이 은근히 보인다. 남빛 하늘이 호수까지 내려와 그리는 그림은 마치 연필 드로잉 같다. 하얀 갈대 군락은 내 안에서 일어나는 감성의 물결이다. 마산 마을을 지난다. 하루도 빠짐없이 문만 열면 마을 사람들의 눈에 가득 차는 대청호의 비경을 보는 그들이 종내 부럽기만 하다. 저토록 아름다운 자연을 보며 살아가는 그들의 심성은 아름답고 순박하리라.

모롱이를 돌아가면 다음 모롱이를 돌아가는 돌출부가 보인다. 그 잔잔한 호수를 끼고 S자형으로 끊임없이 이어지며 숲과 갈대 속에 마치 뱀 허물처럼 누운 길은 겨울의 을씨년스러운 풍경과 걸맞다. 스산한 감정으로 걷는 마음은 허우룩하다. 오라는 데도 없지만, 갈 곳도 없고, 또렷하게 할 일도 없는 저 회색의 도시에서 허덕거리는 자화상이 지워지지 않아 괴롭다. 사실 우리 모두는 외롭다. 군중 속에 있을 때도 외롭고, 이렇게 겨울 호수의 휑한 분위기에서 보내는 시간도 뼈아프게 외롭다. 이 외로움의 정체를 모르고 걷는 시간은 무의미하다. 나는 느낀다. 처절하게 외로울 때, 자신 속에 또 다른 내가 있다는 것을 안다. 군중 속에 있을 때 전혀 감지되지 않던 다른 내가, 외롭고 고독한 순간에 그림자로 나타나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다른 나와 함께 있는 시간을 가진다. 나와 다른 내가 서로 공감하고 대화하고 그 사이에 있는 수로에 물꼬를 튼다면, 사실 나는 진정한 혼자가 아니다. 나와 우주의 에너지가 함께 축적되어 있는 다른 나는 저 쓸쓸하면서 맑고 아름다운 대청호와 하늘, 자연의 에너지와 연결되어 있는 나이다. 이런 깨달음으로 걷는다면 비로소 고독과 소외감에서 벗어나고 자연과 하나가 될 수 있다. 만물과 만상은 하나의 꽃이다. 나와 우주도 화려하고 장엄한 하나의 꽃이다. 비로소 나와 우주는 하나의 의미가 된다.

◆슬픈 연가 촬영지에서

호수로 난 길을 따라가 본다. 갈대 군락을 지나서 시야가 확 퍼지자 지근에 나타나는 작고 앙증맞은 섬. 내 안에 섬이 있다,는 그 섬을 보면서 나는 고독에서 한 번 더 자유로워진다. 잠시 멈춰서서 하염없이 섬을, 호수와 하늘을 보면서 반 고흐가 필생의 힘으로 그렸던 물결 모양, 원 모양, 나선 모양의 배열을 느낀다. 눈에 보이는 현실을 단순하게 복사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소재가 지니고 있는 본질과 특성, 말하자면 자신이 그것에 대해서 느끼는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더 중요한 그의 작품 ‘몽마르트언덕의 채소밭’을 여기서 느낀다.

하늘의 겨울 해는 정오로 달린다. 다시 되돌아 나온다. 보리밥 몇 술 먹기까지 더 걸어 ‘슬픈 연가’ 촬영장에 닿는다. 여기도 바로 호숫가로, 장면부터가 왠지 슬프게 보인다. 왜 사랑의 무대는 슬퍼야 인기가 있는가. 2005년 촬영 당시 사용했던 오두막 세트는 철거되고, 안내 팻말이 슬픈 연가 촬영지임을 알려주고 있다. 세트장에서 펼쳐지는 대청호 풍경이 장관이다. 마치 먼 이국에 온 것처럼 잔잔한 물결이 밀려오는 백사장, 수줍은 듯 다소곳이 있는 조개 섬은 왠지 더 슬프게만 보인다.

섬 위에 엉켜 자라는 두 나무는 사진작가들이 좋아하는 촬영 포인트다. 슬픈 연가는 저 호수를 건너지 못하고, 호수를 닮은 영혼으로 운다. 지난밤 누가 슬픈 연가를 부르며, 저 호수를 헤엄치다 물속으로 가라앉고 말았는가. 호수는 겨울 나목으로 깃을 세우고, 철새들 울음에 애절한 순애보를 쓴다.

되돌아 나온다. 역시 갈대밭이 박무처럼 피어나는, 그 환상의 길을 걷는다. 자그마한 폐선 한 척이 길가에 누워있다. 더 걸어가자 쓰러진 고목들이 이끼와 말라버린 버섯을 달고 듬성듬성 군락을 만들고 있다. 한없이 부드러운 곡선과 함께 맨몸으로 추억을 고스란히 토악질하는 대청호. 이건 우리가 좋아하는 한 편의 수묵화다. 그 빈 여백에는 항상 사랑과 재치가 있고, 아픔과 슬픔을 쓰다듬는 보이지 않는 약손이 있다. 호수 저편 산야는 문의마을이다.

“겨울문의에 가서 보았다/ 죽음이 삶을 껴안은 채/ 한 죽음을 받는 것을 / 끝까지 사절하다가/ 죽음은 인기척을 듣고/ 저만큼 가서 뒤를 돌아다본다./ 모든 것은 낮아서/ 이 세상에 눈이 내리고/ 아무리 돌을 던져도 죽음은 맞지 않는다./ 겨울 문의여 눈이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고은 ‘문의마을에 가서’)

오늘 눈만 내리면 눈이 내리는 하늘을 품고 있는 저 호수를 접영으로 건너가 겨울 문의에 가서 그 죽음의 인기척을 들어 볼 텐데. 보리밥 한 솥 짓기까지 더 걸어, 나는 추동에 있는 매우 넓은 갈대밭에 당도한다. 길에서 내려가 갈대밭으로 난 길을 걸어본다. 갈대 사이로 떨어져 내린 햇빛이 모천회귀의 연어처럼 내 발등에서 산란하는 이 아름다운 겨울 서정을 눈가의 주름에 악보로 새긴다. 갈대밭엔 갈대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저 갈대밭에서 저 호수에서, 살고 있는 생물의 이름을 불러본다. 묵납자루, 각시붕어, 갈겨니. 이름을 부를 때마다 입안에 가득 차 지느러미를 퍼덕거리는 민물고기들. 붉은배새매, 곤줄박이, 후투티, 왜가리, 원앙, 백로 등 새들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가슴은 아름다운 설렘으로 이륙한다.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 또 불러본다. 조흰뱀눈나비, 부처사촌나비, 줄박가시, 방아깨비, 찌르레기, 얼마나 아름다운 이름인가. 내가 떠나도 그 이름들은 여기에 남아 겨울수채화가 된다.

갈대밭을 벗어난다. 데크길을 걸어 전망이 좋은 곳에서 더 넓게 더 멀리 조망을 한다. 겨울 호수와 갈대밭은 비감하다. 저 영원을 향한 그리움이 동심원으로 번져가는 이 순간 사랑이 왜 슬퍼야 하는지 알 것 같다. 저 처연한 대청호 갈대 군락이, 티 없이 맑은 저 호수 물이 우리를 슬픔에 빠뜨리는 블랙홀이란 것을. 오늘 트레킹을 마무리하면서 느끼는 감정은 눈물겹고 감동스럽다. 대청호 둘레길은 예배의 길이며, 잊어버린 영혼을 돌려받는 교감의 길이다.

글=김찬일<시인·대구문협 이사>
사진=김석<대구힐링트레킹 사무국장> kc12taegu@hanmail.net

☞ 여행정보

▶트레킹코스: 마산동 삼거리 우로-슬픈 연가 촬영지-전망대-대청호 자연 생태관

▶문의: 대청호 자연생태관 (042)251-4781

▶내비게이션 주소 : 대전시 동구 천개동로 41

▶주위 볼거리: 가양공원, 찬샘정, 계족산성, 관동묘려, 우암사적공원, 청남대, 미륵원남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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