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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멸치쌈밥·쓴맛 도는 막걸리·달달한 섬초 한 입이면 온몸에 봄 생기

2017-02-10

[이춘호기자의 푸드로드] 경남 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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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랭이마을에서 갓 캐어 온 냉이와 곁들이면 딱인 해동된 남해 멸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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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장에 버무려 비린 맛이 덜한 멸치쌈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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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조중인 물메기. 다랭이마을에선 울금가루를 발라 말리는 게 특징이다.

가난한 시절의 식문화가 궁금해 김봉수 이장댁을 찾았다. 올해 84세의 김태영씨. 이장의 아버지다. 최근 경운기에 치여 병원 신세를 지고 나와 운신을 제대로 못한다.

가난했던 시절을 회상하던 그의 눈매에선 금싸라기 땅으로 변해가는 지금이 맘 편하지 않다고 술회했다. “관광촌 같은 다랭이마을보다 옆집과 더없이 오순도순했던 힘든 시절의 가난이 더욱 그립제”라고 말했다. 가천초등학교는 폐교되고 2명의 아이가 근처 남면초등에 다닌다.

두 산 사이로 3개의 하천이 흘러서 마을 이름이 ‘가천(加 川)’이 된다. 다른 곳에서는 하천에서 잡은 미꾸라지·잡어 등으로 추어탕을 끓여 먹지만 여기선 민물고기는 고기라 여기지 않는다. 봄에는 ‘공멸치’로 불리는 까나리를 잡아 쌈밥을 해먹거나 튀겨 먹었다. 이게 요즘 남해군의 대표 메뉴로 등극한 멸치쌈밥의 원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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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할매’로 불리는 유기준 사장.

봄엔 ‘공멸치’인 까나리 잡아 요리
남해군 대표 메뉴 멸치쌈밥의 원형


다랭이마을 쌀로 빚은 할매標 탁주
공장표 막걸리와 차원 다른 맛 매력


밀물 이용해 고기 잡는 전통 죽방렴
죽방렴멸치 1.5㎏ 30만원 ‘이름값’


◆할매 막걸리를 찾아서

다랭이마을 골목을 타고 해안으로 내려갔다.

이 마을엔 참 다양한 할매표 밥집이 있다. 다랭미맛집, 다랭이밥상, 다랭이두레방, 시골할매막걸리집, 농부맛집, 촌할매막걸리집 등이다. 두 곳을 찾았다. 마을의 성황당 구실을 하는 밥무덤 바로 옆에 있는 ‘촌할매막걸리집’. 올해 예순둘의 유기순 사장은 시어머니(강재순)로부터 막걸리 만드는 법을 전수했다. 이 마을에서 태어나 26세 때 이 마을로 시집을 갔다. 지난해 9월 시어머니로부터 가업을 받았다. 10일 만에 만든 촌할매막걸리는 다랭이마을 쌀로 만든다. 한 병을 사니 반찬 같은 안주를 깔아준다. 여느 공장표 막걸리는 올리고당 등이 많이 들어가 달달한데 여긴 쓴맛이 감돈다. 이게 촌막걸리만의 특징.

취기를 안고 가게를 나왔다. 해안에서 가장 가까운 데 있는 ‘시골할매막걸리집’. 이 섬에서 할매막걸리를 제일 먼저 선보인 조막심 할매 집이다. 2013년 김운성·송덕자 부부가 가업을 이어받았다. 2005년에는 ‘유자잎막걸리’를 개발했다. 남편 김씨가 그 공장을 운영한다. 가게 입구 빨랫줄에 물메기가 꾸덕하게 걸려 있다. 말릴 때 강황으로 만든 울금가루를 발라준다. 물메기탕을 시켰다. 주인은 이제 끝물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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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자잎으로 만든 유자막걸리.
육수를 전혀 사용하지 않아서 더 칼칼한 맛이다. 요리엔 3년 된 멸치액젓을 사용한다. 그래서 도시의 음식보다 비릿한 해감내가 더 깊었다.

남해 전통음식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전어밤젓’이다. 전어 내장 가운데 완두콩만 한 타원형 담낭으로 담근 젓갈이다. 주산지인 남해읍 선소리. 육지 사람들은 미역국에 소고기를 주로 넣지만, 남해 사람들은 ‘미역국에 감성돔·도다리·낭태·광어 같은 생선이 들어가야 제대로 된 맛이 난다’고 한다. 남해에서는 어느 식당에 가나 밑반찬으로 시금치가 나온다. 식당 주인들은 한결같이 ‘별다른 양념 없이 내놓은 것’이라고 말하는데 단맛이 줄줄 흐른다. 재배 시기는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라고 하는데 1월 말 나오는 것이 가장 달다.

◆죽방멸치와 멸치쌈밥

창선교 위에 섰다. 지족해협 곳곳에 V자 모양의 ‘죽방렴(竹防簾)’이 창과 방패처럼 포진돼 있다. ‘지족해협 청정해역의 명품-원시어업 남해 죽방렴멸치’. 곳곳에 죽방렴 관련 간판이 부착돼 있다. 한국에서 가장 비싼 멸치가 거래되는 지족마을도 저 죽방렴 때문에 먹고산다. 지족마을에선 김민식씨가 죽방렴공동체 위원장을 맡고 있다. 최고령 죽방렴 지기는 임근택씨. 지족해협은 23통의 원시어업 죽방렴을 간직하고 있다. 현재 사천 쪽에는 22통이 설치돼 있다. 다른 곳에는 죽방렴이 없다. 죽방렴은 ‘대나무를 발처럼 엮어(簾) 고기를 잡는다(防)’는 뜻으로 ‘대나무 어살’ 또는 ‘대나무 어사리’로도 불렀다. ‘좁은(손) 바닷길’이라 하여 ‘손도’라 불리는 지족해협에 설치된 대나무 정치망인 죽방렴은 10m 정도의 참나무 말목 300여개를 물살이 빠르고 수심이 얕은 갯벌에 박고 주렴처럼 엮어 만든 그물을 물살 반대 방향으로 벌려 놓은 원시어장이다. 물살이 느린 조금 때는 수확이 없고 물살이 시속 13~15㎞에 달하는 사리 때 많이 잡힌다. 조류를 따라 들어온 물고기는 ‘함정(임통)’에 빠져 썰물 때가 돼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된다. 죽방렴을 관리하는 주인들은 하루 두세 차례 물때에 맞춰 후릿그물이나 뜰채로 물고기들을 건져 올린다. 고기잡이는 3~12월에 이어지며 5~8월은 멸치와 갈치를 비롯해 학꽁치·장어·도다리·농어·감성돔·숭어·보리새우 등이 주로 잡힌다. 고기잡이를 하지 않을 때는 임통만 빼서 말려둔다. 통 안에 그물을 엮어 넣으면 밀물 때 물고기는 후진을 할 줄 모르고 물살은 세니, 들어오는 길에 생각이 바뀐다 해도 다시 나갈 방법은 없다. 임통은 밀물 때는 열리고 썰물 때는 닫힌다.

멸치는 성질이 급해 잡히면 금방 죽는다. 그래서 곧바로 삶고 말려야 한다. 뜰채로 떠서 코앞에 있는 가공공장으로 옮기면 된다. 멸치 질이 뛰어날 수밖에 없다. 이 지역 사람들은 우스갯소리로 ‘죽방렴 멸치 한 마리가 아이스크림값’이라고 말한다. 성수기에는 1.5㎏ 한 상자에 30만원 안팎.

지족해협에서 가까운 사천 늑도에서 죽방렴을 하는 홍관포씨(60). 그는 아내와 함께 일을 한다. 집 앞에 죽방렴이 있다. 30년째 죽방렴을 하고 있는 그가 사천과 지족 죽방렴 차이를 설명해준다. 사천식은 임통이 사각형, 지족식은 원형이란다. 그는 지난해 12월23일 어장 일을 마쳤다. 오는 4월에 죽방렴을 개시할 모양이다. 1~3월은 멸치 금어기다.

남면 홍현리에는‘석방렴(돌그물)’이 있다. 석방렴은 원래 ‘돌살’ 또는 ‘독살’이라 했다. 바다가 움푹 들어간 데에다 둥글게 돌담을 쌓아 밀물과 함께 들어온 고기를 썰물 때 빠져나가지 못하게 가둔 다음 잡는 전통 고기잡이법이다.

멸치는 육식성 어류의 먹이가 될 운명을 헤쳐나가기 위해 새끼를 많이 낳고 빨리 자란다. 태어나서 1년이 되면 어른고기가 돼 한 마리가 4~8월 여러 번에 걸쳐 수천 개의 알을 낳는다. 멸치는 우리나라 바다에서 매년 가장 많이 잡히는 생선이다. 연간 생산량은 약 20만t. 전남과 경남지역 생산량이 전체 생산량의 약 70%를 차지한다.

멸치는 크기별로 요리법이 다양하다. 2㎝ 이하인 ‘세멸’은 주먹밥용, 3㎝ 내외인 ‘자멸’은 볶음용으로, 6㎝ 이상인 ‘대멸’은 뼈째 구워 먹거나 젓갈·쌈밥용으로 사용된다. 남해군은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멸치쌈밥의 고장이 된다. 대다수 고추장에 버무려 상추·배추·묵은지 등과 함께 싸먹도록 한 것. 남해군에서 가장 오래된 곳은 삼동면사무소 근처 ‘우리식당’, 외지 사람들 입에 맞게 쌈밥의 간을 조정한 ‘배가네’ 등이 인기몰이를 한다. 물론 죽방멸치는 아니고 대멸로 요리한 것이다.

지금은 철이 아니다. 4월이 되어야 제철이다. 요즘 쌈밥용 멸치는 해동한 두절 대멸이다. 초장에 너무 버무린 것보다 찢지 않은 통마리를 밥에 올려 묵은지와 함께 먹어보라. 색다른 맛을 느낄 것이다. 이게 토박이스타일.

입을 벌리고 숨을 쉬어봤다. 입안 가득 해감내가 진동한다. 비로소 남해의 해풍이 된 듯했다. 오는 4월 죽방렴이 개시되면 제철 멸치를 보러 다시 와봐야겠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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