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닫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
    스토리
  • 네이버
    밴드
  • 네이버
    블로그

https://m.yeongnam.com/view.php?key=20170223.010220802120001

영남일보TV

[선비들의 사랑이야기 .14] 경포호 맑은 놀이 꿈속에 아련한데- 박신과 홍장

2017-02-23

죽은 줄만 알았던 기생 홍장과 재회…박신은 하룻밤을 뜬눈으로 지새

20170223
강릉 경포호 호숫가의 홍장암. 홍장이 경포대에 오면 올라가 놀던 바위로, 후세인들이 ‘홍장암’이라는 이름을 붙여 부르게 되었다(작은 사진). 홍장암 근처에 세워진 ‘박신과 홍장’ 조형물.

‘한송정(寒松亭) 달 밝은 밤 경포대 물결은 잔잔하고/ 유신(有信)한 백구(白鷗)는 오락가락하건마는/ 어찌 된 것인가 우리 왕손(王孫)은 가서 돌아오지 않으니’ 고려 말 조선 초의 인물인 박신(1362~1444)과 사랑을 나누었던 강릉 기생 홍장(紅粧)이 남긴 시조다. 물결은 잔잔하고 갈매기가 오락가락하며 날아다니는 경포대 풍경을 보면서, 떠나간 후 다시 돌아오지 않는 임을 그리는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박신과 홍장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는 서거정의 ‘동인시화(東人詩話)’, 이능화의 ‘조선해어화사(朝鮮解語花史)’ 등에 전해오고 있다.

고려말∼조선초 文臣 박신
안렴사로 강릉 순찰때 홍장 만나
다른지역 순시로 아쉽게 헤어져

박신과 친했던 강릉부사 조운흘
그를 골려주려 홍장 사망 거짓말
경포호 뱃놀이서 재회하도록 해


◆첫눈에 반한 두 사람

박신은 젊어서부터 명망이 있었다. 그가 강원도 안렴사가 되어 강릉을 순찰할 때 홍장이라는 기생이 절세미인이라는 소문을 듣고 그녀를 찾아갔다. 과연 소문대로 절세가인이라, 박신은 첫눈에 반해 그녀를 좋아하게 되었다. 홍장도 풍류를 아는 박신을 본 순간 반해 버렸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빠져들었다. 강릉에 있는 동안 두 사람은 꿈같은 시간을 보내며 깊은 정을 나누었다.

며칠 후 박신은 다른 지역을 순시하기 위해 홍장과 헤어져야 했다. 박신은 다른 지역을 돌며 공무를 처리하면서도 홍장만을 생각했다. 순시를 마치고 다시 강릉으로 돌아온 박신은 여장을 풀자마자 홍장의 집을 찾았으나 홍장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당시 강릉부사는 박신과 친분이 있는 석간(石磵) 조운흘(1332~1404)이었다. 조운흘은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으로 전라·서해(西海)·양광(楊廣)의 삼도 안렴사(三道按廉使)를 지냈다. 1390년에는 계림부윤(鷄林府尹)이 되었으며, 1392년 조선 개국 후에 강릉부사에 임명됐다.

조운흘은 박신이 돌아왔다는 말을 듣고 그를 찾아갔으나 역시나 홍장의 안부만 물었다. 홍장에게 깊이 빠져있음을 안 조운흘이 그런 박신을 골려줄 생각으로 홍장을 빼돌린 것이다. 조운흘은 박신에게 홍장이 밤낮으로 박신만을 생각하다 죽었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박신은 너무 실망하며 슬픈 마음을 가누지 못했다. 홍장이 죽었다지만 박신은 그녀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그칠 수 없었고, 아파 누울 정도가 되었다. 너무나 상심한 박신은 며칠 만에 몸도 수척해지는 가운데, 마침내 강릉을 떠나야 할 날이 다가왔다.

조운흘은 측은한 생각을 하면서 관동에서 풍광이 제일인 경포대에 박신을 초청해 뱃놀이를 하기로 했다. 조운흘은 남몰래 홍장에게 특별히 아름답게 치장하게 하고, 별도로 놀잇배를 준비하라고 시켰다. 그리고 눈썹과 머리가 흰 늙은 아전을 한 사람 뽑아, 의관을 갖추고 도포를 입혀 그 모습이 마치 처용과 같아 보이게 하였다. 그리고 홍장을 실은 배에는 다음과 같은 시를 적은 현판을 걸게 했다.

‘신라 태평성대 신선 안상은(新羅聖代老安祥)/ 천년의 풍류를 아직까지 잊지 못하네(千載風流尙未忘)/ 안렴사가 경포호에 노닌다는 말 듣고(聞設使華遊鏡浦)/ 목란주에 차마 홍장을 태우지 못하였네(蘭舟聊復載紅粧)’

◆선녀로 변한 홍장을 보며

준비를 마친 조운흘은 박신에게 “달이 뜬 밤에는 천상의 선녀들이 내려온다는데 홍장도 내려올지 모른다”며 경포호에 달구경을 가자고 청했다. 홍장에게 넋을 빼앗긴 박신은 귀가 솔깃해져 조운흘을 따라나섰다.

호수에 배를 띄우고 술잔을 기울이며 달구경을 하는데, 갑자기 안개가 끼더니 미묘한 향기가 나며 퉁소 소리가 노랫소리와 함께 은은히 들려왔다. 조운흘이 박신에게 말했다.

“이곳에는 예부터 신라의 유적이 있다네. 산꼭대기에는 차를 끊이던 차 부뚜막이 있고, 수십 리 떨어진 곳에는 한송정이 있는데 그 정자에는 사선비(四仙碑)가 있네.”

박신은 “그것은 나도 알고 있는 일입니다”라고 말하면서 넋을 놓고 앞을 바라보고 있기만 했다.

조운흘은 이어 “그런데 지금도 그 정자와 사선비 사이로 신선들이 가끔 왕래하며 노니는데, 꽃 피는 아침이나 달 밝은 밤이면 사람들이 그들을 볼 수 있다고 하네. 그런데 바라만 볼 수 있을 뿐 가까이 갈 수는 없다고 하네. 어떻든 저기 어렴풋이 보이는 배는 신선들이 탄 배인 것 같군”이라고 말했다.

곧이어 특별히 화려한 배가 순풍을 타고 눈 깜짝할 사이에 바로 앞에 다다랐다. 배 위에는 백발의 노인이 선관우의(仙冠羽衣)를 입고 단정히 앉아 있었고, 그 앞에는 푸른 옷을 입은 동자와 화관을 쓰고 푸른 소매를 두른 선녀가 있었다. 박신이 보니 그 선녀는 홍장 같았다.

박신이 뱃머리에 나와 선관에게 절을 하니 선관이 말하길 “이 선녀는 옥황상제의 시녀인데 죄를 짓고 인간 세상에 와 살게 되었다. 이제 속죄의 날이 다 되어 곧 올라가려고 하는데 박신과의 연분으로 오늘 밤 이곳에 오게 되었다”고 하였다.

선관의 말을 듣고 선녀에게 가 보니 틀림없는 홍장이라,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니 홍장도 그리던 임을 만나 기뻐하였다. 박신은 선관 앞에 가 무릎을 꿇고 홍장과 하루만 인연을 더 맺기를 원했다. 뜻밖에 선관이 선뜻 허락했다. 박신은 홍장과 객사로 돌아왔다.

그날 밤 박신은 홍장과 쌓였던 정을 풀기에는 너무 짧은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게 되었다. 그러다가 박신은 새벽에 잠깐 잠이 들게 되었는데, 인기척에 눈을 뜨니 천상으로 간 줄 알았던 홍장이 옆에서 곤히 자고 있었다. 이때 조운흘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제야 박신은 조운흘에게 속은 줄 알고 웃었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사선(四仙)’은 신라시대 화랑으로 알려진 술랑(述郞)·남랑(南郞)·영랑(永郞)·안상(安詳) 네 사람을 말한다.

그들은 자주 강원도지역으로 놀러 다녀 많은 유적을 남기고 있다. 고성 해변에 그들이 3일을 놀고 간 삼일포(三日浦)가 있고, 통천에는 사선봉(四仙峰)과 총석정(叢石亭), 간성(杆城)에는 선유담(仙遊潭)과 영랑호, 금강산에는 영랑봉(永郞峰), 강릉에는 한송정(寒松亭)이 있다. 특히 한송정에는 이들과 관련된 다천(茶泉)·돌아궁이·돌절구가 있는데, 모두 사선이 놀던 곳이다.

박신은 후일에 ‘관동에 부치는 시(寄關東)’란 제목의 시를 지어 조운흘에게 보냈다.

‘젊었을 때 관동의 안렴사 되어 갔는데(少年時節按關東)/ 경포호 맑은 놀이 꿈속에 아련하네(鏡浦淸遊入夢中)/ 경포대 밑에 아름답게 꾸민 배는 또 뜨겠지만(臺下蘭舟思又泛)/ 홍장은 이 몸 보고 늙었다고 비웃겠지(却嫌紅粉笑衰翁)’

1년 후 여름에 박신이 순찰사가 되어 다시 강릉에 들르게 되었다. 홍장의 굳은 절개를 알고 있던 박신은 그녀를 한양으로 데리고 올라가 부실(副室, 첩)로 삼았다.

경포호 호숫가에는 방해정(放海亭)이란 정자가 있고 그 정자 근처 호숫가에 바위가 있는데, ‘홍장암’이라고 불린다. 홍장이 경포대에 놀러 오면 반드시 그 바위 위에서 놀았기 때문에 후세 사람들이 그렇게 부른 것이다. 그 바위에는 한자로 ‘홍장암(紅粧)’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그리고 홍장암 주변에는 박신과 홍장의 이야기를 담은 조각상들이 세워져 있다.

글·사진=김봉규기자 bgkim@yeongnam.com


Warning: Invalid argument supplied for foreach() in /home/yeongnam/public_html/mobile/view.php on line 399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기획/특집 인기기사

영남일보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