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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규의 읽기 세상] 토사구팽

2017-03-24

감언이설로 지지 호소해 표 얻으면 유권자는 뒷전
참다못해 타오른 게 촛불…대선정국 유권자 힘모아 못된 정치꾼들 몰아내야

[양선규의 읽기 세상] 토사구팽

역사적 평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함의가 있겠습니다만 평가의 대상이 되는 당사자 입장에서는 패자부활전의 의미가 짙습니다. 그 유명한 공자(孔子)부터가 그렇습니다. 공자 당대의 삶은 그리 녹록지가 않았습니다. 오죽하면 마누라가 집을 다 나갔겠습니까. 그 집 나간 마누라가 죽었는데 아들이 어미 잃은 슬픔을 표 나게 드러내며 울자 고함을 쳐서 못 울게 합니다. 집 나간 어머니가 죽으면 소리 내어 울지 않는 것이 당시의 법도였답니다. 오죽했으면 여자가 자식을 두고 집을 다 나갔을까. 역지사지해서 그냥 모른 척해주면 될 것을 끝까지 그렇게 자기를 주장합니다. 그렇게 보면 공자도 ‘주인 같은 주인’ ‘사람 같은 사람’ 제대로 한번 못 만나고 한평생 팍팍하게 주변만 맴돌며 살다 간 사람입니다. 그런 공자가 후일 문성왕(文聖王)으로 추존되어 천하인의 존숭 대상이 된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겠습니다. 역사의 기록, 역사의 맥락은 그렇게 패자부활전의 좋은 장소가 되기도 합니다.

역사서라면 단연 사마천의 ‘사기(史記)’입니다. 그중에서도 ‘열전(列傳)’은 인간 탐구의 보고(寶庫)입니다. 한 인간의 삶을 투시화법(透視畵法)으로 그려내는 전(傳) 양식은 인간의 전 생애를 그 결과로부터 연역하는 서술적 특징을 보여줍니다. 가령 자객(刺客)으로 이름을 날린 사람이 있다면 그의 일생이 ‘자객이 되기 위한 과정’이라는 하나의 관점에서만 재해석됩니다. 다른 사건이나 행위들은 대폭 축소되거나 은폐됩니다. 이를테면 인간성이 드러나는 효행이나 성장기의 시련 극복 같은 것들도 ‘멋진 자객’이 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의 의미를 지닐 뿐입니다. 의리와 비장(悲壯)이 전경화되고 나머지 것들은 뒤로 밀려납니다. 만약 그가 자객이 아니라 효자로 기록된다면 그 반대가 됩니다. 그의 자객행(刺客行)은 효행의 한 수단으로 치부될 뿐입니다. 역사적 관점에 따라 한 인간의 삶이 전혀 다른 각도에서 조명될 수 있는 것입니다.

120여명의 삶을 기록한 ‘사기 열전’은 구술(口述)·구전(口傳)으로만 이어지던 이야기들이 비로소 그 역사적 가치를 획득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합니다. 한 인간의 삶을 하나의 관점에서 통째로 기록한다는 것은 곧 그의 삶을 후세의 거울로 삼겠다는 뜻입니다. 사마천은 역사는 곧 인간학이 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 탁월한 역사가였습니다. 한 연구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절대군주 위주로 재편되는 엄혹한 현실에 직면해서, 사회역사적 관점에서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기의 역사를 보는 태도는 타 역사서를 압도한다.” (김원중, ‘사기 열전’ 해제)

인간 탐구의 기록이며 동시에 역사적 지남(指南, 이끌어 가르치거나 지시함)의 역할을 하는 열전의 이야기들은 숱한 고사성어를 만들어냅니다. 토사구팽(兎死狗烹)도 그중의 하나입니다. “새 사냥이 끝나면 좋은 활도 감추어지고, 교활한 토끼를 다 잡고 나면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蜚鳥盡, 良弓藏, 狡兎死, 走狗烹)”가 그 출전입니다. 범려가 처음 썼으나 한신(韓信)에 의해서 더욱 유명해진 말입니다. 아시다시피 토사구팽은 쓸모가 다한 사람을 야박하게 내칠 때 쓰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 말이 가장 많이 등장하는 곳은 역시 정치판입니다. 권력을 잡기 위해 온갖 감언이설로 유권자들의 지지를 호소하다가도 일단 목적을 성취한 다음에는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문전박대를 일삼는 것이 못된, 못난 정치꾼들의 생리입니다. 얼마 전 너무 심한 문전박대를 견디다 못해 성난 민심이 촛불로 활활 불타올랐습니다. 이제 새로운 지도자를 뽑는 대선 정국이 가파르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유권자들이 토사구팽을 생각할 때입니다. 못된, 못난 정치꾼들을 몰아내야 합니다. 바야흐로 힘을 모아 큰 가마솥을 걸고 넘치게 물을 끓일 때입니다. 대구교육대 국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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