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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김찬일의 방방곡곡/길을 걷다] 전남 순천 동화사 제석산∼벌교 조정래 문학관

2017-04-21

소설 ‘태백산맥’을 품은 산과 갯벌

20170421
전남 순천 제석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벌교와 해무 낀 여자만의 환상적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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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동화사에서 제석산 정상으로 가는 트레킹 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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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동화사의 대웅전은 1601년 중건하였다. 건축미가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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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에 등장하는 조선식과 일본식이 절충된 현부자네 집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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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교에 있는 태백산맥 문학관. 아름다운 건축미에 전시된 내용이 알차다.

산 아래에서 보면, 마치 이화우(梨花雨) 같았던 봄 구름을 열고 들어간다. 그 개운산 궁벽한 산속에, 동화사는 가부좌를 틀고 있다. 작고 야트막한 산봉우리들이 만월을 이룬, 따뜻하고 그윽한 배꼽 자리에는 부도(浮屠)가 참선에 빠져 있다. 사찰도 사찰이지만 절 뒤편 산자락에 수령 500년이 넘었다는 동백나무 수백 그루가 무성하다. 봄이 되면 더 윤기가 살아나는 동백의 초록 잎들. 아무렴 그렇지 한오백년 살고도 아직 정념이 타는지, 그토록 수많은 밤마다 별을 헤며 살아온 동백나무. 박무 피어나는 아침에 수채화처럼 아름답다.

500년된 동백숲 순천 동화사가 들머리
대숲 지나 대평마을과 사분사분한 숲길
임도 따라 제석산 정상…발밑 산·바다
여자만과 벌교·낙안·조계산까지 조망

능선 오솔길 따라 낭떠러지 위 신선대
암릉과 기암괴석에 트레킹 흥미 더해
나뭇잎 쌓인 숲길 지나 대치재서 벌교行
태백산맥 문학관·꼬막 맛기행으로 대미


순천에 있는 동화사는 화엄사 말사다. 868년 신라 말 도선 국사가 세우고, 고려 의천 대각국사가 개창했다. 고려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삼층석탑과 부도가 예사롭지 않다. 마침 대웅전에서 49재를 올리는 스님의 독경 소리가 청아하게 들린다. 중생은 미혹한 자기 마음을 밖으로 던진다. 마음의 투사는 모두 고통이다. 망자님이여, 이제 몸을 벗었으니, 애증에서 해방되고 자유를 찾아 가시지요. 저 허공에서 자기를 보며 독경 소리에 영혼 씻고, 동백나무 숲 건너, 정토에 다시 태어나시지요. 한 번의 생으로 어찌 그 애환을 다 씻겠습니까. 누구라도 가야 하는 저승길, 비록 알지 못하는 망자지만 그의 극락왕생을 빌어본다.

절 왼쪽 데크 계단을 오르면서 임도가 시작된다. 대나무 숲을 지나 7~8분 오르면 농가가 대여섯 집 있는 대평마을이 나온다. 여기 고샅길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걸어가면 다시 삼거리가 나오고 왼쪽으로 길을 잡아 외길 임도로 곧장 간다. 비록 임도이나, 사람이 다니지 않았는지 숲으로 많이 복원되어 있다. 정갈한 산길을 걷는 즐거움은 높은음자리다. 숲은 항상 치유의 젖꼭지다. 숲은 어머니 같은 자애로움으로 생명의 젖줄, 피톤치드를 먹여준다. 인류의 원인들은 숲 속 나무 위에서 살며, 차츰 현생 인류로 진화되어 갔다. 사람을 영장류로 만든 손과 발, 영성도 나무 위에 거주할 때 그 기본이 형성되었다. 나무와 숲은 에덴의 아이콘이다. 그 유쾌하고 사분사분한 숲길이 다하고, 임도와 연결된 시멘트 포장길이 나온다. 불과 몇백m를 걸어가면 삼거리가 나온다. 왼편은, 한때 한우를 1천 마리나 사육했다고 하는 순천만 자연드림목장으로 가는 길이고, 오른편은 제석산 가는 길이다.

오른쪽으로 접어든다. 이제부터는 여자만과 고흥반도의 아름다움을 등에 지고 가는 흥겨운 길이다. 봄의 예쁜 야생화를 머리에 꽂은 산등성이가 귀엽고 사랑스럽다. 조금 떨어진 목장의 목초지 아래, 확 트인 개활지는 위로 갈수록 더 넓어지고 높아진다. 큰 등성 어깨에 올라서면 헬기장이 있고, 오른쪽에 이태 전만 하더라도 활공장이었던 곳에 산불 감시초소가, 왼쪽에 제석산 정상이 있다. 우선 오른쪽 정상(576m)에 오른다. 이곳에서 보는 사방의 조망이 단연 으뜸이다. 그렇게 아득히, 더구나 바다가 보이는 조망권을 가진 산이 그리 흔하지 않을 것이다. 남으로 섬들이, 꼬막의 생살 같은 섬들이, 해무 속에 흩뿌려진 여자만의 풍경과 고흥반도와 팔영산, 첨산 두방산이 황홀하게 보인다. 더구나 벌교 왕 꼬막을 키워내는 광대한 갯벌은 보기만 해도 무릎까지 차올라 철퍼덕거리는 것 같다.

서로는 조계산, 모후산, 무등산이 낮은 산군 위에 아스라이 솟아있다. 북으로 낙안읍성, 금전산, 더 우로 보면 광양 백운산과 그 뒤 수려하고 장엄한 지리산 능선, 만복대 노고단 반야봉에서 천왕봉까지 12폭 산수화 병풍을 펼친다. 몇 차례나 몸을 돌려가면서 조망한다. 벅찬 감동은 가슴에 샘물 되어 끊임없이 솟아난다. 그대 오늘은 무슨 일로 가슴 뛰게 살 건가요.

◆제석산과 여자만의 비경

지금부터 능선의 오솔길 따라간다. 그 감동의 조망권을 눈꼬리에 달고 간다.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노랫말에 나오는 제석산(663m)은 지난날 활공장과 지척에 있다. 제석은 33개의 하늘 중 가장 마지막에 있는 도리천에 주석하며 모든 하늘을 다스리는 제석천왕을 뜻하는 이름이다. 제석산 정상에는 빗돌이 있다. 그 흙이 생기를 띠는 산에 녹색 풀들이 하품하며 해바라기하는 능선 길은 편안하다. 그러나 암릉과 기암괴석도 산재하여 트레킹의 흥미를 더해준다. 이어서 남쪽은 낭떠러지인 남봉에 올라가 새로운 감흥으로 사방을 조망한다. 옛날 신선이 내려와 놀았다는 신선대도 지난다. 조금 아래 남쪽 끝봉의 평탄한 자리에서 쉬며 한층 다가온 여자만의 아름다운 경치를 내려다본다. 끝봉에서 내려가면 조망이 점차 사라진다. 골산이 육산으로 바뀌면서 나뭇잎 쌓인 산길, 잡목림 우거진 숲길이다. 드디어 대치재에 도착하고, 벌교 2.7㎞ 이정표 따라 걷는다. 약수터를 만나고, 왼쪽으로 떨어지면 문중묘지,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0.7㎞ 걸으면 조정래 태백산맥 문학관이 나온다.

◆민중 역사의 대서사시 태백산맥 문학관

“문학은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인간에게 기여해야 한다”고 말한 소설가 조정래는 1943년 전남 승주군 선암사에서 태어났다. 그의 대표작 대하소설 ‘태백산맥’은 민중의 본모습이 지워진 역사에서, 민중의 진실을 찾아내는 일이었다. 역사적인 시간의 흐름에 묻히고 잊혀간, 죽음 앞에서도 겁 없이 불평등의 분노와 횃불의 혁명으로 민낯을 보이는 무지렁이들의 실체는 무엇이었을까. 그 어둠에 가득 찬 생리적인 공포를 밀어내는 멀고 먼 불빛 하나가 곧 그들의 흔적이고, 깊은 잠에 빠진 우리의 의식을 깨우는 우둥불이었는지 모른다.

소설 속의 주 무대로 등장했던 현부자네 집에 먼저 들른다. 일본식과 조선식을 절충한 고가가 부잣집임을 한눈에 보여준다. 태백산맥의 문을 여는 첫 장면에서 처음 등장하는 이 집은 소화와 정하섭의 애틋한 사랑의 보금자리이기도 하다. 중도 들녘이 질펀하게 내려다보인다. 이 구석 저 구석을 둘러보고, 마루에 앉아 잠시 휴식을 한다. 조금 뜸을 들이다가 소화의 집에도 들른다. 현부자네 전속무당이나 다름없는 월녀와 소화가 거처했던 조그만 집이다. 돌아 나와 곧장 태백산맥 문학관으로 들어간다. 작가 조정래에 관한 모든 것이 다 있는 것 같다. 그가 보여주는 이데올로기는 관념이 아니고, 영혼의 분비물이다. 사람다운 삶을 위해 싸우다가 허망하게 사라져간 이름 모를 숱한 영혼들. 그들의 이데올로기는 탈이념이고 원초적인 분노에서 오는 역사적인 에너지이다. 그들의 꿈과 사랑, 그들의 아픔과 눈물, 그들의 외침과 함성이 어찌 조작적인 이데올로기로 둔갑할 수 있겠는가.

태백산맥 문학관을 나서면서 다시 한 번 되삭임한다. 염상진과 김범우, 하대치라는 이름은 소설의 활자에서 떠나 우리의 일반 명사가 되었다. 이제 우리는 해방된 촛불과 횃불이 수도 서울의 거리를 행진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나는 알고 있다. 저 촛불이, 저 횃불이, 세상을 태우는 파괴의 분노가 아니라는 것을. 삶의 원초적인 향기와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한 분노의 촛불이고, 횃불이라는 것을.

벌교는 순천·보성·고흥지방 교통의 요지다. 모든 교통의 요지가 그러하듯이 벌교에도 제법 짱짱한 주먹패가 생겨나고,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벌교 가서 돈 자랑, 주먹 자랑 하지 말라”는 말이 생겼다. 이동하여 벌교 왕 꼬막 정식, 맛 기행으로 대미를 장식한다.

글=김찬일<시인·대구힐링트레킹 회장>

사진=김석<대구힐링트레킹 사무국장>

☞ 여행정보

▶트레킹코스: 동화사∼대평마을∼제석산 정상∼남봉∼끝봉∼대치재∼태백산맥 문학관∼벌교 식당가
▶내비게이션 주소: 전남 순천시 별량면 동화사길 208
▶주위 볼거리: 보성여관, 중도방죽, 벌교홍교, 김범우의 집, 홍암 나철 선생 유적지, 부용교, 벌교 왕꼬막 정식 식당가
▶문의: 순천 동화사 (061)743-4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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