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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단상] 百年之歎( 백년지탄)

2017-04-29
[토요단상] 百年之歎( 백년지탄)
홍억선 한국수필문학관장

세상 일이 다 그렇다. 애써 가꾸어서 차곡차곡 높이 쌓기는 힘이 들어도 그것을 무너뜨리기는 한순간의 일이다. 나는 교직경력 35년차의 중등학교 관리자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세월 동안 교육현장이 오늘날의 모습으로 변해 가는 것을 직접 느끼고 지켜보았다. 물론 그 흘러가는 물결의 조력자이기도 하였고 공모자이기도 하였다.

오래전 나는 작은 도시의 변두리 고등학교에서 근무했다. 학교 주변의 환경은 그리 넉넉하지 못한 편이었다. 벼농사와 과수농사를 짓던 농촌마을이 공단으로 바뀌면서 사람들이 몰려왔다. 그들 대부분은 도시에서 이런저런 일을 해보다가 공단의 맞벌이 근로자로 옮겨온 사람들이었다. 생활은 팍팍해도 자녀들 중에는 눈이 초롱초롱한 아이들이 제법 있어서 학교에서는 그 아이들을 어떻게 관리할까를 고민했다. 결국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방안으로 기숙사를 만들어 밤늦게까지 공부를 시키기로 했다. 말이 기숙사지 빈 교실을 합판으로 막아 자습실을 만들고 한쪽에는 방을 몇 칸 넣은 임시 숙소 같은 것이었다.

기숙사 관리는 교감과 부장, 학력담당 이렇게 셋이서 돌아가며 맡았다. 일주일에 하루 건너 하루씩 아이들과 함께 먹고 자면서 심야지도를 했다. 그 결과는 바로 다음 해 입시에 나타나 그 어렵다는 서울에도 대학을 보내고, 누구나 보내고 싶어하는 의대 진학생도 나왔다. 그야말로 성공적인 프로젝트였다.

문제는 이듬해 일어났다. 전체회의에서 기숙사 관리를 세 사람에게만 맡길 수 없다고 했다. 모든 교사가 힘든 일을 분담하는 것이 옳지, 몇 사람만이 희생할 수 없다는 지극히 인간적인 제안이었다. 몇 사람씩 팀을 만들어 한 해 한 해를 돌아가자는 말이 있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30여 명의 교사가 하루씩 지도하게 되었다.

아무리 매뉴얼을 튼튼하게 짜놓아도 한 몸 같지 않은 것이 사람의 집단이다. 어떤 사람은 초저녁부터 코를 골고 잤고, 어떤 사람은 관리실에 앉아 텔레비전에 몰두했다. 새벽 일찍 아이들을 깨워서 운동장을 한두 바퀴 돌아야 하는데도 오히려 아이들이 교사를 깨우는 일도 있었다. 그 틈으로 아이들은 빠져나가 야심하도록 돌아다니는 일까지 생겼다. 결국 그 탄탄하던 시스템은 무모한 실험으로 무너져 내렸고, 그 복원을 위해 오랫동안 재정비의 시간이 필요했다.

이런 일이야 작은 울타리 안에서 일어나는 시행착오 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면 교육현장을 흔들어대는 일들이 수시로 있어 왔다. 특히나 정권이 바뀔 때마다 누가 어디서 배워 왔는지 얄궂은 것들을 가져와서 현장에 써먹으려고 애를 썼다. 참으로 실험정신 하나는 투철했다.

언젠가는 열린교실이라는 것이 도입 되어서 학교마다 한겨울에도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수업을 한 적이 있었다. 심지어 복도에까지 책걸상을 내어놓고 ‘교실이 열렸네’ 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어느 땐가는 교실이 조용하면 죽은 학교가 된다고 해서 이름도 생소한 버즈세션이라는 것이 들어와 이 교실 저 교실이 온통 와글와글 개구리판이 되기도 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어느 날부터 학교는 촌지나 받아먹는 파렴치한 집단이 되었다. 심성 고운 아이들을 매질하는 폭력집단도 되었다. 지금은 앵무새가 되어 “청렴, 청렴” 하며 노래를 부르고 다니고 있는 중이다. 과오가 있는 사람은 솎아내어 고강도로 처리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도 온 집단을 매도하여 손발을 묶어버렸다.

세상은 바뀐다. 당연히 학교도 변해야 한다. 하지만 절대로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학교는 세상 어느 곳보다도 귀하게 존중받아야 하는 곳이다. 대통령도 장관도 깊이 머리를 숙여야 하는 곳이다. 학교집단이 좋아서가 아니다. 그 속에는 정말로 우리의 미래와 꿈이 싹트고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곧 대선이다. 후보들의 면면을 살펴보면서 걱정이 앞선다. 누구 하나 통쾌한 미래 교육의 리더로 나서는 이가 없다. 저 사람들 밑에서 또 어느 누가 나타나 어디서 배운 것들을 가져와 흔들어 댈지가 먼저 근심스럽다. 교육을 백년지계라 하였거늘, 백년지탄이 되는 요즘이다.
홍억선 한국수필문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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