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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토요 '현장토크'] 대구 남산동 헌책방 골목

2017-05-20

“손님 인상만 봐도 원하는 책 척척…가끔 보물도 있죠”

20170520
대구 중구 남산동 헌책방 골목의 한 서점에 책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헌책방 골목은 1970년대 24곳이 운영되면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지만 지금은 4곳만 남아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손동욱기자 dingdong@yeongnam.com

좁고 허름한 공간에 책들이 빼곡하다. 건들면 무너질 듯 아슬아슬하다. 질서도 없고 규칙도 없어 보인다. 마치 책으로 탑을 쌓은 듯 위쪽으로 솟구쳤다. ‘책탑’은 쌓이고 쌓여 천장까지 닿았다. 그나마 팔려고 내놓은 책은 그 좁은 공간을 빠져 나와 길바닥에 널부러져 있다. 모두가 손때 꼬장꼬장 묻은 헌책들이다.

대구 중구 남산동 ‘헌책방 골목’. 6·25전쟁 직후 하나둘 서점이 들어선 후 1970년대에는 24곳이 운영되면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좌판까지 합치면 50곳이 넘었다고 한다. 하지만 대형서점이 들어서고 인터넷 서점까지 가세하면서 지금은 고작 4곳(대도·월계·해바라기 서점, 코스모스북)만 남아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 주 현장토크에선 남산동 헌책방 골목을 찾았다.

손때 묻은 책이 탑처럼 빼곡
70∼80년대 학생들 문전성시
친구 책 훔쳐팔다 난리나기도…
한때 좌판까지 합치면 50여곳
대형서점에 밀려 4곳만 남아


“이 골목 헌책방 주인들 대부분이 적게는 40년, 많게는 60년 가까이 여기서 일한 사람들이야. 대를 이어 하는 사람도 있고, 종업원으로 일하다가 자기 서점을 차린 경우도 있어.”

“1970~80년대가 좋았지. 그때는 책을 읽고 싶어도 새 책을 사 볼 형편이 안됐잖아. 특히 신학기만 되면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 교과서나 참고서를 사려는 학생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거든. 책을 구해서 갖다 놓으면 몇 시간도 안돼서 다 팔려. 남이 쓰던 책으로 공부하는 것이 부끄럽지 않던 시절이었거든. 용돈이 궁한 녀석들은 친구 책까지 훔쳐서 여기 와서 팔기도 했어. 그러다 걸리면 난리가 났지. 별의 별 일 많았어.”

“요즘은 손님이 많냐고? 하루에 한두 권 못 팔 때도 있어. 누가 요새 헌책을 봐. 그냥 지나가다 들르는 손님이 전부야. 대부분 나이든 노인네들 뿐이야. 젊은 사람들은 발길도 주지 않아.”

“우스운 이야기 하나 해줄까. 한 번은 은행장을 지낸 분이 책 정리를 한다면서 자기 집에 오래. 그래서 찾아갔더니 책이 엄청 많아. 은행장 하신 분이니깐 좋은 책 많겠다 싶어 보지도 않고 잔뜩 가져왔어. 그런데 정리를 하다보니까 야한 책이 그렇게 많이 나오더라고. 점잖고 교양있는 사람도 다르지 않구나 생각했지. 인간의 호기심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다 똑같은 것 같아.”

“수십 년 사람들 대하다 보니 이제 인상만 보면 어떤 책을 좋아하는지를 알아. 점쟁이 다됐지.”

“어떤 책이 어디에 있는지 다 아냐고?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도 문제없어. 제목만 말해봐 바로 찾을 수 있어. 가끔 희귀한 책도 들어오긴 해. 그런 책은 값도 꽤 나가지. 그런데도 큰 이윤 안남기고 싸게 팔아. 가끔 보면 여기서 판매된 희귀한 책이 경매에 올라온 것도 봤어. 분명 몇 만원에 팔았는데 수십~수백만원에 거래되더라고. 아깝지 않냐고?. 헌책방 하는 사람들은 돈에 미련두면 안돼. 좋은 책 여러 사람 읽히게 하면 그걸로 만족이야.”

“요즘 책 읽고 나면 많이 버리잖아. 그럼 책은 어떻게 돼?. 목숨이 다해서 죽은 거나 마찬가지지. 그런데 헌책방은 달라. 여기 책들은 누군가에게 다시 읽혀. 헌책방은 책의 생명을 연장해주는 호흡기나 다름없어.”

인터뷰를 마치고 책 하나를 집어들었다. 손바닥에서 먼지가 서걱거렸다. 윤기 빠진 표지는 푸석거렸다. 쿰쿰한 곰팡이 냄새가 나는 듯했다. “3천원만 줘”. 돈을 지불하면서 무심코 첫 장을 넘겼다. 책 장 사이에 끼워진 쪽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펜으로 쓴 몇 가지의 결심들이 적혀 있었다. 그걸 다시 지운 빠르고 굵은 선들도 보였다. 직전의 책 주인이 쓴 새해 계획인 듯했다. 차마 쪽지를 버리지 못하고 처음 그 자리에 넣고 책장을 덮었다. 헌책에는 누군가의 추억, 시간의 흔적이 남아 있다. 헌책만의 향기다.

백승운기자 swbac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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