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닫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
    스토리
  • 네이버
    밴드
  • 네이버
    블로그

https://m.yeongnam.com/view.php?key=20170619.010170736570001

영남일보TV

[‘정재걸 교수’의 오래된 미래 교육] 공부의 근본과 지말

2017-06-19

“다음 생에는 공부를 잘하겠습니다. 미안합니다.” 이 글은 20대 남성 A씨가 자신의 부모에게 남긴 한 통의 마지막 문자이다. 2017년 6월5일 서울 광진경찰서와 경기 의정부경찰서에 따르면 A씨가 이 문자를 남기고 가출한 뒤 나흘 만에 익사체로 발견됐다고 하였다. A씨의 부모는 아들의 문자를 받고 의정부경찰서 실종수사팀에 가출신고를 했는데, A씨는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반도체 회사에 취직했지만, 5개월 전쯤 실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기사를 접한 많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마음 아파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10일 트위터에 “인간이 공부의 도구가 되어버린 우리 교육 현실을 다시 생각해본다. 청년이 쓴 ‘다음 생에는 공부 잘 할게요’라는 말 속에 담긴 우리 사회의 현실이 마음을 무겁게 한다”고 썼다. 또 어떤 이는 “나도 두 명의 장성한 아들이 있지만, 공부가 절대 중요한 것이 아닌데 얼마나 힘들었겠나. 이 세상이 젊은 분들을 너무 힘들게 하나봅니다”라고 썼다.

이 문자를 본 A씨 부모의 마음을 어땠을까? 자식에 대해 관심이 없는 부모야 없겠지만 아들이 마지막으로 이런 문자를 남긴 것으로 보아, 그의 부모도 아들의 공부에 무척이나 관심이 많았을 것이다. 특히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아들에 대한 실망이 컸을 것이고, 이것이 A씨에게 커다란 압력으로 작용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도대체 우리 사회에서 공부를 잘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현행 우리나라의 교육제도에서 공부를 잘 한다는 것은 학문 분야별로 잘게 쪼개놓은 교과의 추상적 개념을 잘 이해하고 암기하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국가교육과정이란 이처럼 모든 학생이 배워야 할 지식의 내용과 순서를 정해 놓은 것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인터넷을 비롯한 다양한 매체를 통해 언제 어디에서나 필요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제4차 산업혁명 시기에 이런 파편적인 지식을 배우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 사태를 보는 두 가지 입장이 있다. 한 가지는 위에서 많은 사람들이 언급한 것처럼 우리나라의 국가교육과정과 입시제도가 근본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반면에 실패에 대한 반응이 근본적인 문제라는 입장도 있다. 엔소니 드 멜로 신부는 시험을 잘 못 보아 자살한 학생에 대해 “시험의 실패가 그를 죽인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실패에 반응하는 그의 방식이 그를 죽인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국가교육과정과 시험은 지말(枝末)이고, 공부와 시험에 실패한 학생들의 반응 방식이 근본(根本)이라는 것이다. 공자 또한 “송사(訟事)를 다스림이 내 남과 같이 하나, 반드시 백성들로 하여금 송사함이 없게 하겠다”고 하여 근본과 지말의 관계를 말한 바 있다. 재판을 공정하게 하는 것은 지말이고, 재판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근본이라는 것이다. 교육과정과 평가방식이 아무리 좋은 방식으로 바뀐다고 하더라도 결국 실패하는 아이들은 나타나게 되어 있다. 그런 아이들은 시험이 끝나면 결국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릴 것이다.

어떤 실패든 실패는 고통스럽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실패 없는 성장은 없다. 껍질이 찢어지는 고통을 겪지 않은 나비가 있는가? 따라서 우리가 진정으로 교육을 통해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은 인류의 삶에 기여한 수많은 위인들은 모두 실패를 통해 단련되고, 좌절을 통해 더 큰 도약을 이룬 사람들이었다는 사실과 실패가 성공보다 더 인간의 성장에 도움을 준다는 믿음이다. 주위를 돌아보라. 모든 단계마다 성공을 거둔 모범생들이 인류에 기여한 바가 있는가? 실패를 겪지 않고 ‘나’라는 피부경계선을 넘어선 사람이 있는가? 그러니 실패야말로 진정한 공부이다. 실패를 자신의 성장으로 삼는 공부가 있다. 동양의 마음공부가 그것이다. 공부란 곧 자신의 삶과 가치관을 변화시키는 것이라는 유학의 위기지학(爲己之學)과 마음공부가 바로 그것이다. <대구교대 교육학과>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영남일보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