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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장우석의 電影雜感 (전영잡감) 2.0] 현진식 감독의 장편 다큐 ‘바람커피로드’

2017-08-11

당신에게 건네는 한 잔의 커피 같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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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바람커피로드’의 주인공 이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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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담씨가 몰고 다니는 커피트럭 풍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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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바람커피로드’의 티저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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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초 대구 수성구 범어동에 위치한 물레책방에서 조금은 특별한 상영회가 있었다. 습도가 꽤나 높은 무더위에 유료로 진행한 행사였지만 주최 측이 예상한 인원을 훨씬 상회하는 관객들이 찾아왔다. 이들은 영화를 보러 온 것일까. 극장 미개봉작 시사회를 겸한 상영회이니 맞을 것이다. 이들은 작가를 만나러 온 것일까. 초대 손님이 얼마 전 신간을 냈으니 그것도 맞을 것이다. 이들은 커피를 마시러 온 것일까. 초대 손님이 영화 상영 후 직접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려주기로 했으니 이 또한 맞을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이 많은 이들을 자발적으로 한 자리에 모이게 한 초대 손님은 누구인가.

커피여행자 이담씨. 커피에 관해 문외한에 가까운 나조차도 풍문으로 들어온 유명 인사다. 만화가 허영만의 데뷔 40주년 기념작으로 알려진 커피만화 ‘커피 한잔 할까요?’ 속 한 에피소드(53화 ‘커피트럭 풍만’)에 소개되기도 했던 낡은 트럭을 타고 2013년부터 5년째 커피여행을 하고 있다. 처음엔 1년을 예정한 여행이었다고 한다. 직접 개조한 커피트럭에서 한 잔에 5천원으로 정한 커피를 하루 10잔 정도만 팔면 계속 여행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단다. 원래는 여름과 겨울엔 여행을 쉰다고도 했다. 이때는 제주에 마련한 지하카페 ‘동굴커피’에서 원두를 볶고 커피를 내리며 충전한단다. 무덥기로 소문난 한여름 대구를 충전도 멈추고 찾은 것은 자신의 커피여행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바람커피로드’ 시사회 때문이었다. 전국을 돌며 진행한 올해 상반기 소규모 상영회의 마지막 지역이 대구였다.


5년째 커피트럭 풍만과 전국 누비는
커피여행자 이담씨의 여정 담아 반향
입소문 덕에 대구 특별상영회도 성황

인디밴드 뮤지션이기도 한 현진식 감독
첫 장편 연출작으로 음악 다큐 면모도
장면들 한 컷씩 떼어서 봐도 모두 작품



영화는 프랑스의 정치가이자 외교관인 탈레랑(Talleyrand)의 저 유명한 경구로 시작한다. “악마같이 검지만 천사처럼 순수하고 지옥같이 뜨겁지만 키스처럼 달콤하다.” 커피의 속성을 저렇듯 풀어내다니. 커피여행기였기에 커피에 대한 이야기들을 많이 들을 수 있어 좋았다. 이를테면 커피도 과일의 씨앗이기 때문에 원래 새콤한 맛이 있다든가, 커피에서 새콤한 맛이 나는 건 케냐산이고 고소한 맛이 나는 건 브라질산이란 이야기들. 오직 핸드드립으로만 내린 커피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이담씨의 여정 속에 인터뷰들이 이어진다. 이렇게 물었을 것이다. 이런 여정이 돈이 되는지, 노후가 걱정되진 않는지. 이어지는 이담씨의 대답. “우리가 살려면 돈이 필요하다. 지금은 많이 벌지 못한다. 하지만 여행을 계속 다닐 수는 있다. 늙어서 어떻게 살 것인가. 커피를 하고 있는 이상 나이가 들어서도 파고다공원 같은 데서 팔을 떨며 핸드드립을 하지 않을까.” 우스개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 “생각해 보면 우리는 필요한 만큼 버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을 벌기 위해 너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오지 않은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의 행복을 많이 포기하고 있지 않나. 조금만 바꿔 생각하면 미래의 행복은 언제 올지 알 수 없다. 그러나 현재 행복하다면 계속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 기간에 이담씨를 도와 일했던 이다현씨(그녀는 이 영화의 타이틀을 직접 쓴 캘리그래퍼이기도 하다)와 함께 나온 장면이 좋았다. 훗날 춘천의 한 카페에서 이담씨처럼 커피를 내리는 다현씨의 모습이 이어지면서 마치 스승과 제자, 멘토와 멘티 같은 이야기를 따로 속편처럼 만들어도 좋겠다 싶을 만큼.

이 영화는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 흥행 1위를 기록한 진모영 감독의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에서 구성과 편집을 맡은 현진식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이다. 무심한 듯 공들여 찍은 장면들은 어느 한 컷을 떼어 걸어도 모두 작품으로 여겨질 정도다. 현 감독은 연출뿐 아니라 촬영, 편집, 음악을 모두 맡았다. 또한 그는 다큐멘터리 감독과는 별개로 4인조 혼성 밴드 ‘파울로시티’에서 기타를 연주하는 뮤지션이자 영화음악 제작그룹 ‘보이그트-캄프’의 리더이기도 하다. 특히 ‘파울로시티’는 포스트 록과 슈게이징 장르를 표방하는 밴드로 음악을 좀 듣는 리스너들 사이에선 굉장한 호평을 받고 있다. 영상과 음악을 모두 이해하는 이가 만들었기 때문에 ‘바람커피로드’는 어떤 관객들에겐 여행 다큐멘터리이기도 하고 음악 다큐멘터리이기도 할 것이다.

이담씨 역시 커피여행자이지만 또한 커피철학자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했다. 가령 이런 이야기. “커피는 쓴맛, 단맛, 신맛같이 여러 가지 맛이 조화를 이루면서 그 맛이 만들어진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이 쓴맛이다. 쓴맛은 우리가 공통적으로 피하고 싶은 맛 아닌가. 그런데 그 쓴맛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 자리 잡고 있는가에 따라 커피의 맛이 좌우된다. 이게 우리 사는 것과 비슷하다. 우리가 살면서 겪는 인생의 쓴맛을 어떻게 기억하느냐, 여기에 따라 우리의 삶도 다양하게 바뀌는 것 아닐까.” 원래 서울이 고향이었던 그가 1990년부터 10년 동안 컴퓨터잡지 기자를 거쳐 벤처 열풍을 타고 2000년 회사를 차렸다가 실패를 맛본 뒤 홀로 제주로 내려가 10년을 살다 다시 5년 동안 여행을 통해 많은 사람을 만나며 얻은 깨달음이 주는 울림이 적지 않다. 이 이야기들은 지난 6월 나온 이담씨의 세 번째 책 ‘바람커피로드’(지와수)에 더욱 풍성하고 친절하게 소개되어있다. 특히 대구에 사는 독자들이라면 ‘대구를 모르고 커피를 논하지 마라’ 꼭지에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여기저기 돌아다녀 봐도 서울을 제외하고 커피를 가장 사랑하는 지역은 대구”라니, 그간 커피 문외한으로 살아온 나날이 덧없기만 하다.

이담씨는 영화의 엔딩 신에서 이렇게 말한다. “풍만이가 달릴 수 있고 제 체력이 남아있는 동안에는 계속 여행을 하고 싶어요. 아직 못 가본 곳도 많고 어디선가 만날지 모르는 좋은 사람들이 있으니까. 저한테는 커피가 있고 누군가는 저를 또 기다려 주겠죠. 네, 그걸로 충분해요.” 하여 나는 바란다. 풍만이가 좀 더 오래 버텨주기를, 이담씨를 만나고픈 이들이 많아지기를, 그래서 이담씨가 계속 여행을 할 수 있기를, 그리하여 그 여행이 늘 따사롭기를.

독립영화감독, 물레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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