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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단상] 낙인

2017-08-19
[토요단상] 낙인
홍억선 한국수필문학관장

이런 일이 있었다. 어제 일어난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몇 년 전에 있었던 일도 아니다. 하루는 일흔이 넘은 경비원으로부터 추행을 당했다는 두 여학생의 신고가 들어왔다. 아침 등굣길에 옷에 먼지가 묻었다며 몸에 손을 대고 머리까지 만졌다는 것이다. 당사자가 수치심을 느끼고 신고까지 하였으니 성추행이 분명하였다. 이야기를 전해 들은 경비원이 허겁지겁 들어왔다. 사건이 오늘 아침에 일어난 일이 아니라 꽤 시일이 지난 것이기에 도무지 기억이 없다고 했다. 아니, 그런 일이 없었다고 했다. 참 난감한 노릇이었다. 대체로 경비직은 용역회사에서 파견 나온 분이 한두 해 근무하다가 교체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그동안 성실성을 인정받아 10년 넘게 한자리를 지키고 있던 사람이었다.

우선은 당사자를 따로 불러 내막을 소상히 들어보았다. 그리고 저렇게 완강하게 부인하니 어떻게 조처했으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혹시라도 오해일 수도 있으니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없도록 할 것이며, 재발한다면 그때 즉시 처리하면 어떻겠느냐고 물어보았다. 아이들은 단호하게 머리를 저었다. 잠시도 머뭇거릴 여유가 없는 것이 추행사건이다. 누가 옳고 그르냐를 따지느라 미적거리는 사이에 일은 커져가고, 사실은폐로까지 오해를 받기가 십상이다. 곧바로 용역회사에 통보가 되었고, 두어 시간 만에 사람은 교체되었다.

눈물을 훔치며 돌아가는 경비원은 내내 억울하다고 했다. 쉽지 않은 인생길을 넘고 넘어 왔는데 마지막에 이런 낙인이 찍혀 돌아가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항변에 원망까지 했다. 그 억울하다는 사람에게 충분히 변명의 기회를 줄 수 없는 현실이 서글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젊은 교사에게 일이 생겼다.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으로 교단에 선 초임 기간제교사는 누구보다도 의욕적이었다. 아침 일찍 교문 앞에 서서 용모와 복장을 단속하는 훈육 업무를 맡았다. 훈육 선생은 불가피하게 신체접촉이 생길 수밖에 없고, 때로는 거친 말이 나오게 되어 있다는 것쯤은 우리 모두가 경험으로 아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정당화된다는 말은 아니다.

아니나 다를까. 조바심이 현실이 되어서 민원서 두 통이 동시에 바깥 기관에 들어갔다. 훈육 선생이 속옷의 끈을 잡아당기고, 다리까지 주물렀다는 것이었다. 수사기관에서 득달같이 달려 나올 수밖에 없었고, 전수조사라는 것이 이루어지면서 교실은 뒤집혔다. 설문지가 나누어지고 지나간 시간까지 거슬러 올라가 자질구레한 것들까지 발가벗겨졌다.

시간이 가면서 차츰 체로 걸러지고 결국은 사법기관으로부터 ‘혐의 없음’ 통지가 왔지만 그것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었다. 큰물이 지나가고 송두리째 뽑힌 뿌리는 쉽게 치유될 수 없는 법이다. 거기에다가 증거불충분이라는 묘한 단서가 붙었기에 후속적인 조치로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었다. 일이 잠잠해질 무렵 초임교사의 부친이 찾아왔다. 궁벽한 시골이었지만 나름대로 총기가 넘치는 자식이 선생이 되겠다고 하여 어려운 사범대학에 진학을 했고, 소망대로 교단에 섰건만 세상 첫걸음에 어떻게 이런 낙인이 찍힐 수 있느냐며, 어떻게든 명예를 회복시켜 달라고 했다. 말하는 이나 듣는 이나 이미 엎어놓은 명예를 회복시킬 수 있는 묘수가 없다는 것은 잘 아는 사실이었다. 이런 억울한 일을 겪었다고 광고를 할 수도 없는 일이 아닌가.

요즘 밤낮을 가리지 않고 성추행 사건이 꼬리를 물고 있다. 성추행은 분명 파렴치한 범죄로, 엄히 다스려야 마땅하다. 하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가 생기고, 때로는 눈물로 항변하는 것을 보면 억울한 경우가 적지 않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문제는 참으로 억울하다 해도 엎질러진 후에는 막아줄 울타리가 없고, 맞설 방패가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임시방편으로 아예 1m 밖에 접근금지선을 그어 놓고, 떨어져서 대화를 나누라는 지침까지 생겼을까. 위로와 격려, 축하를 위해 어깨를 다독이는 것까지 몸을 사려야 하는 현실이 과연 정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홍억선 한국수필문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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