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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시네 토크]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 병수役 설경구

2017-09-15

노인 분장 대신 늙는 걸 택하다

20170915

일단 선택하고 사후 고민한다. 시나리오도 읽지 않고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 출연을 결정한 설경구의 선택 방식은 그랬다. 첫 미팅 자리에서 건넨 원신연 감독의 “쉽지 않을 것”이라는 말에 반색해 “그러면 같이 하시죠”라고 말했다는 그다. 이후 설경구는 어떤 비교대상도, 어떤 레퍼런스도 존재하지 않는 극 중 병수 역할을 통해 연기의 밑그림을 다시 그리기 시작했다. 이제껏 단순하게 받아들이고 피상적으로만 느꼈던 캐릭터의 얼굴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전에 없던 많은 고민도 따랐다. “신선한 자극이 됐어요. 최근 몇년 동안은 매너리즘에 빠져 연기했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달랐어요.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캐릭터였고, 그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너무 궁금했죠.”


김영하 작가 동명소설이 원작인 영화
치매 걸린 60代 연쇄살인범 연기 하려
매일 2시간 줄넘기 등 극한 체중감량
완벽하게 나이든 ‘캐릭터 얼굴’ 완성

‘나이 들어도 눈은 안 늙고 싶다’는 그
“이젠 얼굴 흥미 못 느끼면 출연 꺼리고
많은 궁금증 갖게 하는 센 캐릭터 끌려”
차기作 이수진 감독의 ‘우상’ 촬영 올인



작가 김영하의 동명 베스트셀러를 영화화한 ‘살인자의 기억법’은 알츠하이머에 걸린 과거 연쇄살인범 병수를 이야기의 중심에 놓는다. 병수는 우연히 접촉 사고로 만난 남자 태주(김남길)의 눈빛을 보고 본능적으로 그가 살인자임을 직감한다. 때마침 젊은 여성이 잇따라 살해되는 사건이 그가 사는 동네에서 발생하고, 병수는 자신의 하나뿐인 딸 은희(설현)를 지키려 고군분투한다.

“소설과 가장 가까우면서도 먼 영화”를 생각한 원신연 감독의 바람대로 영화는 원작의 1인칭 시점과 원형은 유지하되, 캐릭터에 살을 붙여 생기를 불어넣었고, 이야기를 비틀어 반전의 묘미를 살려냈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이를 바탕으로 병수의 과거와 현실, 상상과 망상을 숨 가쁘게 오가며 이야기를 펼쳐간다. 그 과정에서 설경구는 병수의 디테일한 감정 변화부터 예리한 눈빛, 얼굴의 작은 경련 하나까지도 놀라운 설득력으로 구현해내며 연기파 배우의 존재감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만약 퀭하고 차갑고 초췌한 모습의 그가 낯설게 느껴진다면 역설적으로 캐릭터의 얼굴에 대한 설경구의 고민과 변화의 의지가 제대로 표출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힘든 길에 도전할 배우가 대한민국에 또 존재할까? 내게 설경구는 신(神)”이라고 말한 원신연 감독의 말처럼 설경구는 지금 자신의 필모그래피에 인상 깊게 각인될 커다란 한 획을 그었다.

20170915

▶배우가 아닌 관객의 입장에서 영화를 본 소감을 말한다면.

“이번의 경우는 일일이 내 연기를 확인하면서 보다 보니 영화 전체를 보지 못하고 이야기를 뒤쫓아가는 느낌이었다. 영화는 속도감 있게 달려가고 있지만 나만 캐릭터에 매몰돼 힘들게 매달려가는 느낌이랄까. 목소리는 왜 저렇게밖에 안 나오는지, 또 헤어스타일은 왜 저런지 등 전에는 사소하게 생각할 수 있는 부분까지 모두 부족하고 아쉬움으로 남았다.”

▶결과적으로는 이제껏 당신이 보여준 캐릭터 중 가장 강렬하고 고민이 느껴진 모습이었다. 어떤 준비과정을 거쳤나.

“원작에선 김병수의 나이가 70대지만 감독님은 나를 배려해 50대로 가자고 했다. 하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아서 스스로 타협을 본 게 60대였다. 일단 그 나이에 맞게 허스키한 목소리가 나오도록 발성연습을 꾸준히 했다. 또 체중감량을 위해 매일 2시간씩 줄넘기를 했고, 탄수화물을 끊는 식이요법을 병행했다. 수분섭취까지 최소화하는 방법으로 쉽게 살이 빠지지 않는 손까지 노인의 손처럼 쭈글쭈글하게 만들었다. 테스트 촬영을 하는데 촬영 감독님이 ‘진짜 늙었다’고 해서 다행이다 싶었다.”

▶노인 역할을 표현하기 위해 분장보다는 감량을 택한 이유는 뭔가.

“‘나의 독재자’(2014)를 하고 나서 특수분장은 가급적 안 하기로 마음먹었다. 너무 부자연스러워서 연기를 하는 데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감독님에게 분장을 하는 대신 ‘내가 늙어보겠다’고 했다. 이후 기름기 빼는 작업에 돌입했다. 전에는 살을 빼고 찌우는 작업을 단순하게 생각했다면, 이번에는 캐릭터의 얼굴을 통해 그가 어떤 인생을 살아왔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를 제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병수는 그런 많은 고민 끝에 완성된 캐릭터다.”

▶체중감량을 위해 줄넘기를 주로 이용한다고 들었다. 칸영화제에 가서도 할 정도로 마니아로 통하고 있는데.

“줄넘기는 생활이다. 아무리 촬영일정이 빡빡해도 빼놓지 않는다. 지방 촬영이 잦다 보니 운동할 여건이 여의치 않아서 시작했다. 운동량은 물론 장소에 구애받지도 않고 시간을 많이 할애할 필요도 없으니 좋다. 처음에는 1천개 하는 것도 힘들었는데 이젠 땀복까지 착용하고 매일 1만개씩 한다. 한번은 갈대밭 촬영이 새벽 5시에 예정돼 있었다. 숙소는 전주였고 촬영장소는 김제였는데 이동시간이 40~50분 소요된다. 역으로 계산을 해보니 새벽 1시쯤 줄넘기를 해야 했다. 그래도 잠을 좀 포기했다.”

▶베스트셀러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질 때는 관객의 기대감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그 점이 배우의 입장에선 부담감으로 작용할 수 있을 텐데.

“나보다 감독님의 부담감이 상당했다. 대중에게 호평을 받은 작품이었고 나 역시 굉장히 빠른 속도로 읽었을 만큼 매력적이었다. 다만, 이를 영화로 보여주는 건 녹록지 않은 작업이 될 것 같았다. 무엇보다 캐릭터가 입체적이지 않고 기능적으로만 쓰여진 텍스트형에 가깝다. 원작에선 그의 1인칭 시점이 일기 형식으로 전개되는데 그 여백을 배우가 상상해서 채워야 한다는 점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결과물은 원작과 차별되게 성공적으로 재창조되었다고 본다.”

▶원작을 소재로 한 다른 영화들이 리모델링 수준이라면 ‘살인자의 기억법’은 재건축됐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야말로 뼈대만 남겨놓고 모두 새로 지었다고 할 수 있는데 연기한 배우로서 원작과 차별된 이 영화의 매력을 꼽는다면.

“원작에선 별로 비중 있게 다뤄지지 않았던 태주 캐릭터의 존재감이라 할 수 있다. 태주는 영화를 통해 새롭게 만들어졌고 불쑥 튀어나온 인물이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그런 두 사람의 대결구도를 이야기의 중심에 놓는다. 또 병수의 살인행각을 청소의 개념으로 설정하고 딸 은희에 대한 부성애로 같이 묶어둠으로써 살인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미덕이라면 이 모든 설정과 배치가 원작의 느낌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매력적으로 재창조되었다는 점이다. 구 연쇄살인범과 신 연쇄살인범의 마지막 대결신은 그 점에서 상업영화의 미덕으로 봐주셨으면 좋겠다.”

▶김남길과의 호흡은 어땠나. ‘강철중: 공공의 적 1-1’에 이어 두 번째 만남인데.

“현장에서의 자세는 변함이 없다. 스타가 되었는데도 똑같이 보였다. 장난기도 그렇고. 9년 전 분장팀들과 팔짱을 끼고 가는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내가 감히 평가할 수는 없겠지만 연기도 무서울 정도로 성장했다. 남길씨가 맡은 태주 캐릭터는 절대 녹록지 않다. 의심스럽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교활한 모습으로 시종 줄타기를 하듯 미묘하게 감정선을 끌고 가야 하는데 이를 인상 깊게 보여줬다. 덕분에 나도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간 천만영화의 주역으로 흥행의 기쁨도 만끽했고, 쓰디쓴 고배도 마셨다. 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무엇인가.

“달라진 건 별로 없다. 배우로서 언제나 새로운 캐릭터를 찾고 있을 뿐이다. 다만 캐릭터의 얼굴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큰 변화다. 얼굴에 집착하다 보니 새로운 것을 찾게 됐다. 그 과정에서 고민도 정말 많이 했다. 관객의 눈에 그게 제대로 비칠지 모르겠지만 나 스스로 고민을 통해 만들어지지 않은 캐릭터는 이제 보여주고 싶지 않다.”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이 최근 구설에 오르면서 흥행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이런 논란에도 당신의 연기력만큼은 호평 일색이다.

“나도 헷갈려 하고 있다. 칸 영화제를 갔다 오니 이렇게 돼 있었다. 난 한 게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너무 감사하고 과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열심히 더 잘하라는 채찍질로 받아들이고 있다.”

▶50대가 됐다. 나이가 들면서 찾아온 변화가 있다면.

“일단 나이가 드니 예전처럼 하지 못하는 건 있다. 그중 하나가 역할이다. 어느 날 촬영장에 갔더니 ‘하루아침에 왜 이렇게 늙어서 왔냐’고 하더라. 그런데 그 말이 되게 듣기 좋았다. 자연스러운 거다. 연기의 접근도 마찬가지다. 나이가 들었다고 거기에 맞는 다른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특별히 할 수 있는 것도 없다. 그때그때 주어진 상황에 맞춰 하는 거다. 독하게 빠져들어야 할 상황이라면 독하게 빠져들고. 다만 바람이라면 나이가 들더라도 눈만큼은 안 늙고 싶다.”

▶의도적이라 느껴질 만큼 최근 장르성 짙은 영화에 출연하고 있는데.

“얼굴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자꾸 그런 쪽으로 눈이 간다. 사실 센 캐릭터가 접근하기도 쉽고 재미도 있다. 이젠 얼굴에서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하면 선택을 꺼리게 된다.”

▶대중은 여전히 ‘박하사탕’(1999), ‘오아시스’(2002) 등을 당신의 대표작으로 꼽는다. 전작을 넘어서야겠다는 강박도 있을 것 같다.

“배우는 선택을 하는 입장이 아니라 선택을 받는 입장이다. 배우라면 누구나 좋은 작품을 기다리겠지만 특히 ‘이건 누가 봐도 개고생을 할 것 같다’는 작품이 들어온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할 것 같다. ‘살인자의 기억법’도 그 일환이다. 앞서 말했듯 시나리오도 보지 않고 선택했다. 오달수씨가 ‘배우가 많이 고통스럽고 고민하고 힘들어야 보는 관객들이 재밌어한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가슴에 와닿았다. 그렇게 하다 보면 좋은 결과도 자연스럽게 따라오겠지.”

▶그간 다양한 역할을 해왔는데 특별히 끌리는 캐릭터가 있나.

“특별히 끌리는 캐릭터가 있는 게 아니라 차기작은 무조건 끌린다.(웃음) 물론 그 얼굴이 많은 고민과 궁금증을 갖게 만들 정도로 센 캐릭터여야겠지. 지금은 ‘한공주’를 찍은 이수진 감독과 ‘우상’이라는 영화를 찍고 있는데 그 캐릭터가 매력적으로 끌리기 시작했다.”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은가.

“그런 건 없다. 나는 이미지 콘셉트를 생각하고 연기하는 배우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나 스스로도 못 견딜 만큼 이상해진다. 지금껏 해온 것처럼 나는 설경구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면 되는 거고, 이를 통해 만들어지는 이미지 메이킹은 온전히 관객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글=윤용섭기자 hhhhama21@nate.com
사진제공=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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