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닫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
    스토리
  • 네이버
    밴드
  • 네이버
    블로그

https://m.yeongnam.com/view.php?key=20171012.010230803250001

영남일보TV

[제24회 영남일보 책읽기賞] 중·고등부 최우수상 (대구시 교육감상) 정은교<경남 진주 공군항공과학고 3년> ‘뽑기맨’을 읽고

2017-10-12

“주인공처럼 가족의 슈퍼 히어로 되고 싶어”

다른 소설과는 사뭇 다른 게 첫 문장부터 느껴졌어. 이제 사춘기가 시작된 주인공 진서의 시각에서 보는 가족, 주변 인물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만화 원피스까지. 진서는 혼잣말을 하는 것 같이 조곤조곤 이야기를 풀어냈는데 그런 점이 날 매료시켰어. 진서가 풀어내는 이야기의 주된 내용은 아빠에 관한 얘기였어. 허리를 다쳐 실직하신 아빠를 옆에서 지켜보는 중 2의 마음속을 들여다 볼 수 있었지. 진서는 어떨 때는 어린 것 같으면서도 어떨 때는 나보다 훨씬 더 성숙한 것 같았어. 아빠의 허리가 다쳐서 직장을 그만 두어야한다는 얘기를 듣고 혼자 숨어서 펑펑 울거나 친구의 말만 믿고 엄마의 바람을 의심해서 며칠 악몽을 꾸던 진서의 모습은 영락없는 중학생이었어. 하지만 이런 모습 이면에 진서가 가지고 있는 순수하고 성숙한 모습이 이야기를 정말 매력적이게 만들었지. 진서는 아빠가 만화 원피스에 빠지자 친구들과 얘기하듯이 원피스에 대한 토론을 했어. 자연스럽게 아빠의 말동무가 되어주더라고. 또 아빠가 뽑기 게임에 빠지니까 옆에서 응원도 해주었어. 나중에는 아프리카 방송 촬영까지 해주더라니까. 만약 나였으면 아빠를 부끄러워했을 거야. 진서는 아픈 아빠를 귀찮아하지 않고 곁에서 병을 함께 이겨내는 듯 했어. 뭐 물론, 진서는 딸이어서 아빠랑 더 친했을 수도 있고 나랑 가정환경이 다르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중학교 2학년 때 아빠를 진심으로 이해해주고 곁에서 응원해주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중학교 2학년이면 나한테는 4년 전이네. 그때 난 아빠의 마음을 이해했었을까? 전혀 아니었어. 난 이제야 겨우 아빠의 마음을 아주 조금 이해했거든.

우리 가족은 다른 가족과는 조금 다른 점이 있어. 친한 친구에게도 쉽게 털어놓지 못한 그런 이야기야. 나랑 형은 아빠가 달라. 그러니까 낳아준 아빠가 다른 거지. 그래서 성도 다르고. 형의 친아빠는 엄마와 형을 매일 괴롭혔대. 그래서 엄마는 이혼을 하셨고 아빠와 재혼을 하셨어. 아빠는 엄마와 형을 가족으로 품기로 결심했어. 그리고 나를 낳으셨지. 하지만 지금까지도 엄마와 형은 많은 상처와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고 있어. 어렸을 때는 몰랐는데 커가면서 엄마랑 형이 가지고 있는 아픔에 공감이 가더라. 지금은 생각만 해도 마음 한 쪽이 막 저려와. 가족이니까 더 그런 것 같기도 해. 근데 나는 아빠는 하나도 상처가 없을 줄 알았다? 아빠는 아무 걱정도 없고 고민도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거든. 그래서 무의식중에 어려움이 없을 거라고 단정지었나봐. 정말 아빠를 몰랐던 거지. 하루는 형이 가족의 따뜻함을 잘 모르겠다고 한 적이 있어. 그러자 아빠가 가족 단체 채팅방에다가 장문의 문자를 남기셨어. 형이 이제는 그런 상처들을 딛고 행복해지면 좋겠다는 내용이었어. 그때 집으로 가는 버스 안이었는데 그 문자를 보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거의 한 시간 내내 울었었지. 형의 상처도 그렇지만 아빠가 힘들었다는 걸 알게 되었거든. 형이랑 나랑 차별을 두지 않으려고 얼마나 노력을 했을까. 얼마나 힘들었을까.

진서를 보니까 아빠 생각이 많이 났어. 진서는 아빠가 무기력함을 느끼는 것을 보고 아빠의 기를 살려주려는 노력을 많이 했어. 아빠의 마음을 정확히 이해하고 공감했던 거야. 절대 무시하지 않았지. 그리고 아픈 아빠의 서러움을 같이 견뎌내며 아빠의 슈퍼히어로가 되어주었어. 진서의 그런 모습을 보고 나니 아빠한테 아주 미안해 지더라고. 아빠를 무시했던 기억, 아빠에게 화를 낸 기억들이 스쳐지나가면서 말이야. 그리고 난 지금도 아빠한테 무뚝뚝한 아들이거든.

가만 보면 가족의 아픔이 내 아픔이 되기도 하는 것 같아. 물론 아무리 가족이라고 하더라도 그 아픔을 완벽히 이해할 수는 없겠지. 하지만 일부분은 공유하고 있는 상처들이잖아. 그러니까 더 힘이 되어주고 옆에서 버텨줘야지. 진서처럼 말이야. 나도 아빠, 엄마, 그리고 형의 슈퍼 히어로가 되고 싶어.

“마음속 이야기 처음으로 글로 표현…가족의 아픔과 마주한 계기”

■ 수상소감

먼저 이 상을 받을 수 있게 도와주신 대회 관계자 및 지도교사 안호범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글을 많이 써보지도 않았고 특히 독후감은 더 어려워하던 제게 과분한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처음으로 제 마음속 이야기를 글로 표현한 것이라 매우 뜻 깊은 상입니다.

첫 문장이 마음에 들어 읽기 시작했던 소설 ‘뽑기맨’은 처음의 느낌과는 다르게 가족의 따뜻함을 소소하게 풀어나가는 책이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까지 내다보며 아빠를 잘 보듬어 주던 어린 주인공을 보면서 ‘나는 가족의 아픔을 어떻게 마주하고 있는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때까지 외면했던 제 생각을 적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가족의 상처는 아주 오래되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겪은 일이 아니기 때문에 전 전혀 아프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최근, 가족의 편안함을 모르겠다고 하며 갑자기 힘듦을 토해내는 형을 보고 혼란스러웠습니다. 어렸을 때는 엄마, 아빠 그리고 형이 느끼는 감정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공감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고 나서는 가족의 아픔이 제 아픔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가족의 아픔을 잘 헤아리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읽는 내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아빠와 함께 힘든 것을 같이 극복해 나가는 주인공을 많이 닮고 싶었고, 생각을 정리해 보고자 글을 써내려갔습니다. 평소에도 잘 드러내지 못하는 제 그늘을 솔직하게 표현한 글이라 많이 부끄럽지만 좋게 봐주시고 상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Warning: Invalid argument supplied for foreach() in /home/yeongnam/public_html/mobile/view.php on line 399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영남일보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