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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예술가에게 새긴 주홍글씨

2017-10-23
[문화산책] 예술가에게 새긴 주홍글씨
이도현<화가>

2012년 2월, 롤프 구를리트의 뮌헨에 있는 작은 아파트와 잘츠부르크 집에 독일 세관원들이 들이닥쳤다. 그곳에서 발견된 것은 놀랍게도 1천500점가량의 미술품이었다. 그것은 나치정권이 유대인으로부터 ‘퇴폐미술’이라는 명목으로 강제로 빼앗은 작품들이었기에 세계를 경악하게 했다. 일명 ‘구를리트 컬렉션’이라 불리는 이 사건은 독일나치의 추악한 면을 다시 세상의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나치의 앞잡이가 되어 약탈이나 다름없는 컬렉션을 한 아버지 힐데브란트 구를리트로부터 상속받은 이 예술품들은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발견된 나치 약탈 미술품 컬렉션 중 최대규모라고 한다. 금전으로 환산하면 10억유로로 추산할 수 있으며 피카소를 비롯하여 모네, 샤갈, 고흐, 마티스 등 유럽 거장들의 작품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나치가 예술에 행한 악행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퇴폐미술가 블랙리스트를 작성하여 감시하고 억압했다.

나치의 반인륜적인 만행을 반성하고 자각하기 위해 개최된 카셀 도큐멘타는 그 지독하고 처절했던 암흑의 시대를 독일스럽게 반성하는 해답이다. 특히 올해로 14회를 맞는 도큐멘타에 선보인 작품 중에 프리데리치아눔 앞 프리드리히 광장에 설치된 마르타 미누힌의 ‘책의 파르테논’은 나치가 1933년 5월19일 ‘독일정신과 맞지 않는다’는 명목하에 약 2천권의 금서를 불태웠던 장소에 세워졌다. 나치의 만행은 몇천 년이 흐른다 해도 예술가에 의해서 매번 역사의 단두대 앞에 세워질 것이다.

21세기의 우리나라도 나치와 다를 바 없이 자신의 정치 이데올로기에 반하는 문화예술인들의 블랙리스트를 작성하여 그들을 감시하고 탄압한 사건으로 우리 사회를 뒤흔들어 놓았다. 이미 이것은 세계의 조롱거리가 되었고 독일에서 만난 예술가들도 ‘설마 사실이냐’며 묻곤 한다. 그러나 동토의 시간에도 우리 예술가들은 숨죽이지도 않았고 또한 권력이 휘두르는 서슬 퍼런 칼날에 굴하지 않고 묵묵히 예술을 살려내고 있었다.

이처럼 예술은 뿌리 깊은 나무와 같아서 아무리 모진 풍파가 몰아친다 해도 그 뿌리는 살아남아 다시 싹을 틔우고 세상을 꽃피운다. 겨울이 모질면 모질수록 나무들이 더욱 아름다운 꽃을 피우듯이 우리나라 예술현장에도 다시 봄기운이 스며들 것이라 기대해 본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이번 블랙리스트 사태를 철저히 반성하고 자각하는 태도가 우선일 것이다. 그리고 세계는 우리가 어떻게 해답을 찾아 치유해 나가는지 주목할 것이다. 나치가 퇴폐미술가라고 낙인찍은 예술가들에 의해 지금의 독일 현대미술이 세계에서 주목하는 예술의 꽃을 피우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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