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닫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
    스토리
  • 네이버
    밴드
  • 네이버
    블로그

https://m.yeongnam.com/view.php?key=20171201.010230754410001

영남일보TV

[자유성] 김장 독립

2017-12-01

거의 모든 무형문화재는 도제식(徒弟式)으로 계승된다. 무형문화재 보유자가 되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일정한 요건을 갖추고 무형문화재 보유자나 보유 단체로부터 수년간 교육을 받은 후 전수자가 되고, 그보다 더 긴 시간 동안 기능을 배워 보유자가 되기까지는 수십 년의 세월이 필요하다. 물론 오랫동안 배운다고 전수자가 되고 보유자의 지위에 오르는 것은 아니다. 소질과 노력·인내 등 많은 요건을 충족시켜야 가능하다.

김장철이다. 요즘에는 무슨 모임이나 약속을 하려면 우선 집안의 김장하는 날이 언제인가를 먼저 고려해야 한다. 나이가 쉰이 넘고 준노인층에 속하는 이들도 부모님이 살아 계시면 고향집으로 가서 김장을 한다. 어머니 밑에서 수십 년간 김장을 해왔을 것임에도 아직 이 분야에서는 독립을 못 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아내와 더불어 3년 전 김장 독립을 했다. 수십 년간 어머니로부터 김장김치 담그는 법을 배운 아내의 솜씨가 독립을 할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 아니다. 어머니의 근력이 소진돼서다. 어머니는 19년 전 양쪽 무릎에 인공관절을 댔으나 여든 전까지 김장을 비롯한 모든 집안일의 수장이셨다. 여든이 넘으면서 생긴 다발성 척추협착증은 순식간에 어머니를 늙게 만들었다. 자리에서 일어날 때마다 갓 태어난 송아지처럼 안간힘을 쓰신다.

아파트에서는 배추를 다듬고 절이는데 한계가 있어 절임배추를 사다 썼다. 아내가 찹쌀풀을 쑤고 마늘·양파를 가는 동안 필자는 강판으로 무채를 만드는 식으로 양념을 준비해 김장을 했다. 그래도 완전히 독립을 이룬 것은 아니다. 수십 년간 배웠음에도 어머니의 손맛은 흉내내질 못한다. 그 손맛은 설명이 안된다. 실체는 있는데 증명하기 어렵다. 그것은 손으로 길게 찢어서 고개를 한껏 뒤로 젖혀 입에 넣는 김장김치가 칼로 예쁘게 썰어 놓는 것보다 더 맛있는 이치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김장 담그는 방법은 지역마다 집집마다 각각 다르고 맛도 다르다. 김장김치의 숙성 시간을 길게 유지하기 위해 편리한 채칼을 놔두고 식도로 무채를 써는 이도 있다. 이처럼 우리의 유서 깊고 다양한 김장 문화는 2013년 ‘김장, 김치를 담그고 나누는 문화’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다. 그래서인지 김장 독립의 길은 무형문화재 보유자가 되는 것만큼이나 긴 인고의 과정 같다.

이하수 중부지역본부 부장


Warning: Invalid argument supplied for foreach() in /home/yeongnam/public_html/mobile/view.php on line 399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영남일보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