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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잘 살고 싶었을 뿐

2018-01-11
[기고] 잘 살고 싶었을 뿐
강미아 (안동대 환경공학과 교수)

‘사생유명(死生有命)’이라 하늘이 우리의 삶과 죽음을 결정한다. 하지만 그래도 이건 심하다 싶다. 지난해 화재가 난 제천은 안동과 서울을 오간 지난 10여 년 동안, 30만㎞ 이상 중앙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적어도 100번 이상은 스쳤던 고장이다.

대중사우나장은 또 어떤 곳인가. 그곳은 일터와 배움터에서 녹작지근해진 몸의 원기를 살려내는 고마운 곳이며 자주 찾는 쉼터다. 낯설지 않은 고장에서 일어난 그날의 사고가 남의 일 같지 않고, 어쩌면 그들 중 하나가 나였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까닭에 슬픔은 더 컸다.

목숨이 아깝지 않은 이 있으련만 할머니, 엄마, 딸이 함께 떠난 사연에 눈물이 많이 났다. 딸아이는 수능을 마치고 엄마와 함께 할머니 댁을 찾았다고 한다. 살을 부비면서 서로 등을 밀어주기도 했을 3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수능을 마친 아이는 그야말로 만리전정(萬里前程)의 첫발을 디뎌보지도 못한 채 떠나야만 했다.

하지만 인명을 앗아가는 사고가 잊히기도 전에 또다시 일어났음에도 달라진 건 없다. 생업은 서민들이 세상에 내어 놓을 수 있는 재주로 생계를 잇고 그 재주로 얻어지는 열매들을 또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과정이다. 어떠한 과정을 경험하든 이 과정을 통해 주위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살아가는 즐거움을 찾아가는 소박한 자아를 실현하게 된다. 이 소박한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서 우리는 위협을 피해 가야 하는 직관을 우연히 갖고 있어야 하며, 그날 그곳에 있지 않아야만 할 필연 같은 우연들이 모이고 쌓여야만 가능한 내 나라를 조건 없이 이해해야 하는가. 분통이 터진다.

아이를 낳기만 하면 국가가 다 키워줄 것이라는 서비스 정신이 높은 분들, 4차산업혁명이 새로운 시대를 열어줄 것이라며 인공지능에 희망을 거는 귀한 분들, 무엇이 이렇게도 살아있는 목숨들을 안중에도 없게 하는가. 낳기만 하면 국가가 키워준다고 하는 것을 들으면 획일적이고 통일성 있는 기계적 인격체를 배양하여 분배하는 시스템이 떠오르고, 인공지능의 정확성과 편리성이 인간의 연륜과 경험보다 우선하여 모범답안이 되는 가치를 추구하도록 문제 많은 교육을 양산하게 하는 가능성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일개 소시민인 나조차도 나라의 미래에 대해 이런저런 고민이 끊이지 않는데 국책을 맡은 훌륭한 분들은 고민은 당연하거니와 해결방안을 제시하여 실행하여야만 하는 것이 생업 아닌가.

하나 낳아 잘 기르기 위해서도 얼마나 많은 정성을 기울여야 하는지 알면 지금 살아있는, 오늘을 살고 있는 아이들의 목숨이 얼마나 귀한지 가늠이 될 터이고, 갇힌 공간 아닌 열린 공간에서 청춘들이 희망을 키울 정책의 절실함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세월호 사건 이후 같은 사고는 두 번 없을 것이라며, 국민 안전을 책임지겠다고 한 대통령의 말다짐을 계속 믿어야만 하는지에 대한 갈등이 내 속을 할퀴며 달려든다.

말다짐은 말로 비롯돼 행동으로 옮겨져 지켜졌을 때 비로소 마쳐지는 속성을 가진다. 한정된 자원으로 이것저것 챙길 것이 많은 시대에 직면해 있으며, 정부의 지출이 앞으로 더 많아질 것이라는 사실에도 이견은 없다. 그러나 최소한 이것만은 부탁하고 싶다. 사생유명이 아닌 일에 세금을 아끼지 말고 쓰라고 말이다.

수많은 운 가운데 좋은 우연을 만났을 때에만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대한민국이 아님을 믿을 수 있도록 해 주어야 대통령의 말다짐이 완성되는 것이다. 그래야 고단한 20대들이 지닌 소박한 꿈, 학업을 하면서 성장하고 세상의 즐거움을 알아갈 수 있도록 하는, 잘 살고 싶은 꿈을 키우고 그 열매를 함께 나눌 수 있는 나라로 번영할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엄마와 함께 고향의 작은 목욕탕에 갈 것이다. 운 좋은 우연 없이도 안전하길 바라면서.

강미아 (안동대 환경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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