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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단상] 평창 동계올림픽과 북한청년 평산신씨

2018-02-10
[토요단상] 평창 동계올림픽과 북한청년 평산신씨
박재열 시인·경북대 명예교수

평창올림픽에 세계인이 함께 모였다. 몸으로 다 함께 모인 것은 아니지만 수십억의 지구촌 사람들의 눈과 귀가 평창에 모인 것이다. 역대 올림픽 중 가장 많은 선수가 참가한다고 하니 그 또한 기분 좋은 일이다. 더구나 북한이 참가하고, 또 예술 공연단까지 내려오고,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영남도 왔으니 갖출 것을 다 갖춘 민족의 경사라 아니할 수 없다.

꼭 10년 전에 필자가 개성관광단의 일원으로 휴전선을 넘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놀라운 것은 우리나라 초병을 마지막으로 본 뒤 숲 속의 조용한 아스팔트길을 3~4분 달리니 북한 초병이 나타난 것이다. 드디어 북한 땅, 금단의 땅에 들어선 것이다. 그때부터 우리 버스 안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북한 출입경사무소에서 수속을 밟고 다시 버스에 오르니 북한사람 두 사람이 우리 버스에 뒤따라 올랐는데 한 사람은 맨 앞좌석에 앉았고 한 사람은 맨 뒤에 앉았다. 앞에 앉은 사람은 명승지총국 무슨 과에 근무하는 신혁(가명)이라는 사람이라고 했다. 우리는 막연히 보위부 같은 무서운 부서에서 나왔을지 모른다는 의심을 품었다. 그들이 우리를 감시한다고 느꼈을 때 섬뜩하기까지 했다. 뒤에 앉은 사람은 등 뒤에서 무엇을 겨눌지 모르지 않는가.

버스가 개성공단을 지나 다시 철조망 안 진짜 북한 땅으로 들어섰다. 바깥 경치는 우리나라 1950~60년대보다 더 빈곤해 보여 몸과 마음이 시려 왔다. 도로, 하수도, 고샅길, 가옥, 전신주, 언덕, 교량 어느 하나 견실한 것이 없었다. 다 낡고 허술했다. 우리들은 내부에서 뭉클거리는 우울과 분노에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북한은 왜 여태 이 모양인가.

이 무거움을 깨고 대구 말씨로 한 아주머니가 물었다. “어이, 안내 총각, 여기는 휘발유 1ℓ에 얼마라예?” 이런 뚱딴지같은 질문이 있나? 주민이 이 모양인데 저 총각이 휘발유값을 어떻게 알랴? 우리도 차를 사기 전에 누가 휘발유값을 알았나? 대구 아주머니는 끈질기게 물었다. “그래 총각, 장가는 갔어예?” 그 아주머니의 호기심은 초이념적이었고, 자신이 이모나 된 듯 총각을 대했다. 우리들의 불안은 그 엉뚱하고 우스운 질문에 점차 녹아내렸다. 차츰 그 총각은 섬뜩한 감시자가 아니라 우리네의 ‘총각’, 우리네의 ‘아들’로 바뀌고 있었다.

통일각에서 11첩 반상을 받았지만 밥맛은 ‘여름에 쉬 빨아놓은 맛’이었다. 박연폭포, 선죽교, 숭양서원 등을 구경하면서 나는 차츰 긴장이 풀려 ‘총각’과 몇 가지 대화를 나눴다. 성과 본관을 물었더니 평산신씨라고 했다. 나는 놀랐다. 개성에 평산신씨가 산다고? 개성에는 무슨 혁명청년소조의 아무개, 협동농장의 무슨 돌격대의 아무개가 사는 곳이지, 어떻게 신숭겸의 후손이 산단 말인가.

그의 태도를 보니 그는 나를 연장자로 대해 주고 있었는데 그 태도는 내가 가르치는 대학생들의 태도나 다름이 없었다. 어느 학교를 나왔느냐고 물었더니 개성 고려성균관대학 식료경영과를 졸업했다고 했다. 그리고 개성에 무슨 학교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자기가 나온 고려성균관대학, 사범대학, 의학대학 3개가 4년제 대학이고 전문학교가 4개 있다고 했다. 우리가 다시 휴전선을 넘기 전에 나는 그 청년의 손을 꼭 잡고 아쉬운 이별을 했다. “대구에 오거든 꼭 나를 찾으시게. 대구에 조상의 유적지가 있어요.”

이번 올림픽 기간 북한 사람들이 내려오고 우리는 그들을 맞는다. 처음엔 양쪽이 다 긴장되겠지만, 털고 보면 북한사람은 그 총각처럼 같은 핏줄이고 우리는 그들에게 삼촌이나 이모 같은 사람들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통제되고 제한된 교류만 띄엄띄엄 이어왔다. 이번 올림픽에도 많은 사람이 내려오지만 우리들은 텔레비전으로만 그들을 대한다. 언젠가 그 개성 총각 같은 북한 주민도 내려와 우리와 함께 어울릴 때 통일은 성큼 다가와 있을 것이다.
박재열 시인·경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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