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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신화는 왜 실화 이상인가

2018-02-12

이성적으로 생각하기 이전
사람들의 원초적 감각에서
논리성 없이 나온 것이 신화
우리 인생의 희로애락을
적나라한 그대로 보여준다

[아침을 열며] 신화는 왜 실화 이상인가
백승균 계명대 목요철학원장

신화는 가상의 이야기이고 실화는 현실의 이야기다. 신화는 허황하고 실화는 확실하다. 따라서 실화가 우리에게는 더욱 흥미진진하다. 세상의 관심도 실화이지 신화는 아니다. 그런데 왜 신화가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올까? 가상의 현실 때문이겠지만 적나라하게는 우리의 삶이 너무나 팍팍해졌기 때문이다. 오죽 했으면 오늘날의 사회를 ‘피로사회’ ‘위험사회’라 하겠는가.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절대적인 옳고 그름의 판단도, 완벽한 논리성도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완벽한 절대성의 주장이 때로는 사람을 멍들게 하고 세상을 휑하게 할 수 있다면 거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신화다. 신화를 용납하지 않는 사회가 바로 절대성의 경직사회다. 아무리 신화가 허황하고 헛되다 해도 그것이 시공을 넘나드는 신들과 사람을, 초자연의 세계와 현실세계를 다함께 엮어내는 미래이야기라면 신화야말로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사건의 실화 그 이상의 실화가 아니겠는가. 우리에게도 단군신화가 있다. 중국에는 황제신화가 있고 인도에는 힌두신화가 있다. 건국신화건 창세신화건, 신화는 어느 민족에게나 나름대로 다 있다. 게르만신화와 켈트신화, 그리스신화는 유럽의 3대 신화로 꼽힌다.

그리스신화가 유독 전 세계인들에게 가장 인정받는 이유는 신화가 신들의 이야기이면서도 신이 중심이 아니라 사람이 중심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중심은 자유함에 있었다. 그런데 이들의 신들은 요상하게도 사람들이 행하는 짓거리를 꼭 그대로 행동하고 있다. 어쩌면 오늘날 졸부와 졸권(猝權)의 인간들이 처신하고 행각하는 꼴들과 그렇게도 똑같나 싶다. 올림포스 12신 중 최고의 신 제우스가 하늘을 무대로 바람과 구름을 불러 천둥과 번개를 치면서 핏빛 비를 퍼붓는가 하면 무지개를 펴 정실부인 헤라를 따돌리고 여러 다른 여신들과 바람피우는 꼬락서니며, 천지창조의 주신 중 막내인 ‘사랑(Eros)’은 솟구치는 욕망을 어떻게 처치할 수가 없어 ‘혼돈(Chaos)’의 심연 속에서도 ‘대지(Gaia)’의 신과 결합하여 하늘과 산 그리고 바다를 낳고, 많은 후손까지 태어나게 했다.

사실 ‘신화(Mythos)’는 처음부터 ‘로고스(논리)’가 아니라 ‘이야기’였다. 고대 그리스사람들이 세상사는, 아니 세상을 뜻대로 한껏 살고 싶어 하던 꿈의 경험담이었다. 경험담에도 사건의 선후 좌우가 있긴 한데 그 결과는 기상천외했다. 줄거리는 허황하고 결과는 터무니없었다. 신들이 직언하지 않고 묵시적으로만 전했기 때문이다. 늘 새로 해석해야 하고 다시 이해해야만 한다. 현실성을 이야기하면서도 현실은 없고 사실성을 말하면서도 사실은 없었다. 개연성은 처음부터 용납되지 않았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참세상의 모습을 자신들의 눈과 귀로는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었다. 때문에 그들은 신들이나 영웅을 통해서 참세상을 감각적으로나 직관적으로 바라만 봤다. 그들에게는 상상력이나 공상력, 표상력이나 구상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논리나 지식, 법칙이나 규범은 자신들을 옥죄는 틀이었고 감옥이었다. 오히려 자유하는 그들 자신이 바로 신들이어야 했고 영웅들이어야 했다.

신화란 이성적으로 생각하기 이전 사람들의 원초적 생활 감각에서 나온 이야기들이다. 여기에는 논리성도 없고 인과성도 없다. 그냥 신들의 이야기이고 사람들의 이야기인데 나름대로 줄거리는 있었다. 줄거리마저 과거를 미래형의 이야기로 바꾸어놨기 때문에 아직은 어느 누구도 들어보지도 못한 이야기들이었다. 신화는 과거를 안고 미래를 업고 산다. 신화가 과거를 잉태하여 미래를 낳는다는 것은 고대인에게나 현대인에게 크게 다르지 않다. 신화는 오늘날 우리의 삶과 죽음, 사랑과 증오, 희로애락의 양상을 적나라한 모습 그대로 보여준다. 사람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신화는 진정 우리의 삶 전체를 묵시적으로만 깨닫도록 한다. 오늘이 다가 아님을!
백승균 계명대 목요철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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