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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타워] 3·1절, 대구3·8독립만세운동을 생각한다

2018-03-01
[영남타워] 3·1절, 대구3·8독립만세운동을 생각한다

‘우리 집 요리사는 돼지처럼 던져져 결박을 당했고 (일본) 기마병은 “죽여라”고 소리쳤다. 대구에선 이미 3명이 총에 맞아 숨지고 8명이 다쳤다.(중략) 죄수 가운데는 15살 소년 두 명과 나환자도 한 명 있었다. 두 소년은 키가 너무 작아 판사가 이들의 정수리도 볼 수 없을 정도였다. 대구형무소엔 5천명이 수감돼 있었다. 재령에서 온 화이팅 박사도 이곳에 있었는데 “여학생 한 명이 머리채를 잡혀 질질 끌려오는 것을 본 한 노인이 다른 여학생을 보호하기 위해 손을 들어올렸다 가슴에 총을 맞았다”고 했다.’

윗글은 대구경북 선교의 아버지로 일컫는 헨리 먼로 브루엔이 기록한 ‘한국생활 40년’ 일기 가운데 1919년 3월8일에 벌어진 대구독립만세운동을 목격하고 쓴 글이다. 2015년 번역된 이 일기에는 99년 전 큰장(옛 서문시장) 어귀에서 펼쳐진 만세운동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조선헌병대사령부 발표에 따르면, 대구경북에선 만세운동으로 26명이 사망했고 69명이 부상했다고 나온다. 하지만 박은식의 한국독립운동사엔 사망 1천206명, 부상자 3천276명으로 기록하고 있다. 브루엔의 증언처럼 일제가 피해숫자를 날조한 것은 명백해 보인다.

국내 첫 만세운동은 3월1일 서울과 평양, 의주, 원산 등지에서 일어났다. 2일엔 함흥, 개성, 해주를 비롯한 이북지역에서 봉기했으며 삼남지역 대도시 가운데에선 대구(8일)가 광주(10일)·부산(11일)·전주(13일)·대전(16일) 등지에 비해 가장 앞섰다. 대구에선 10일과 30일에도 덕산정시장에서 만세운동을 벌였다. 이와 함께 경북에선 의성(12일)·구미(17일)·안동 및 영덕(18일) 등지에서 만세운동을 이어갔다.

대구가 서울, 평양보다 늦게 봉기한 건 기독교·천도교·불교계와 유림이 함께하지 못하고 2월 말에야 서울의 운동본부와 선이 닿았기 때문이다. 대구에선 3처 교회(제일·남산·서문교회) 신도를 중심으로 계성·신명학교·대구고보(현 경북고) 학생이 만세운동을 이끌었다.

대구독립만세운동의 공식 희생자는 24살 청년 김용해 지사다. 그는 아버지 김태련 지사와 함께 만세운동을 벌였다. 김태련은 남산교회 장로다. 3·8독립만세운동 주동자 중 한 명으로 8일 큰장 소달구지 위에 올라가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인물이다. 부자(父子)는 큰장~본정(현 경상감영길)~경정(현 종로)~약전골목~현 중앙치안센터~달성군청(현 대구백화점 인근)까지 만세를 외치며 대구부민과 행진했다. 김용해는 행진 도중 아버지가 일경에 맞는 모습을 보고 저항하다 구타당해 피투성이가 된 채 현장에서 실신했다. 둘 다 대구형무소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던 중 김용해는 가출옥 3일 만인 3월27일 절명했다. 김태련은 감옥에서 아들의 죽음을 알고 그물을 짜서 3원50전의 돈을 마련해 출옥 후 아들의 무덤에 ‘기미년 3월초 의로운 피가 질퍽했나니 아비의 괴롬에 찬 품삯으로 아침햇살 아래 이 돌을 세우노라’는 내용의 비문을 세웠다.

일경이 이를 트집 잡자 아들의 이름을 ‘정훈(正勳)’으로 고치면서까지 철거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는 재판 도중 일제가 “피고”라고 부르면 “내 땅을 내어달라고 했는데 무슨 피고인가”라고 항의했다. 출옥 이후에도 끝까지 변절하지 않고 꼿꼿이 지조를 지키며 독립운동에 헌신하다 광복을 보지 못한 채 별세했다.

강제위안부소녀상이 대구경북에서 9번째로 오늘 구미에서 세워지는 것처럼 3·1운동은 3월1일에만 일어난 게 아니다. 대구는 3월8일과 10일, 30일(불교계 주동)을 기억해야 한다.

특히 8일에는 큰장 초입 대구3·1독립운동발원지에서 대구시민이 자체적으로 행사를 했으면 한다. 수년째 3월1일 동산언덕에서 큰장까지 만세운동행진을 재연하고 있지만 8일 큰장에서 출발해야 마땅하다. 의성과 영덕 심지어 중국 연변에서조차 그 도시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일을 기념한다. 더불어 불교계와 유림도 동참하면 금상첨화다. 행사를 마치고 김태련·용해 부자와 백기만 선생 등 대구만세운동 주역이 잠들어있는 신암선열공원을 찾으면 의미가 더 있겠다.

박진관 기획취재부장·사람&뉴스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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