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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진단] 선거가 두렵다

2018-06-05

현대사회에서 선거는 숙명
잘하겠다는 후보 넘치지만
존재감 보인 사람은 드물어
철학·소신없는 당선은 재앙
사람 됨됨이가 선택의 핵심

[화요진단] 선거가 두렵다

‘술이 사람을 못된 놈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원래 못된 놈이라는 것을 술이 밝혀준다’.

일본의 어느 작은 술집 앞에 있다는 글이다. 절제가 힘들면 마시지 말란 뜻인지, 못된 놈은 술을 먹지 말란 이야기인지 저의가 궁금하다. 왜 술집주인이 굳이 이런 문구의 입간판을 가게 앞에 세워놓았는지 모를 일이지만 상당히 도발적이다. 술이 가져다주는 장점과는 별개로 단점 때문에 일어나는 폐해가 훨씬 크다는 점을 알리고 싶었던 걸까.

이제 1주일 정도 지나면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실시된다. 흔히 선거를 ‘민주주의의 꽃’이라 부르며 의미를 부여한다. 절차와 방법이 중요하고 결과도 충분한 가치를 가져야 한다. 이론적으로는 그래야 맞다. 하지만 실상은 계륵에 가깝다. 현대사회에서 독재가 아닌 다음에야 선거를 하지 않을 방도가 없다. 그런데 선거만 했다하면 곳곳에서 분열과 갈등의 파열음이 터져나온다. 정치는 물론 각종 단체나 모임에서조차 후폭풍은 다반사다. 이쯤되면 우리나라에서 선거는 ‘꽃’보다는 ‘덫’에 가깝다.

1948년 5월10일 실시된 제헌국회의원선거는 우리나라 최초의 민주선거로 기록된다. 이후 ‘테러’ ‘체육관’ ‘매수’ ‘막걸리’ ‘고무신’ 등으로 대변되는 흑역사를 거치면서 제도적·질적으로는 일단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룩했다. 선거비용 실사를 비롯해 부재자투표, 후보자 전과·병역·납세실적 정보공개, 시민단체의 낙천·낙선운동 전개, 매니페스토정책선거 등을 들 수 있겠다.

시스템이 아무리 좋아도 활용하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다. 뽀송뽀송한 이부자리를 펴놓아도 더러운 옷 입은 채 안 씻고 자면 거적이나 마찬가지다. 면학을 위해 쾌적한 여건을 만들어줘도 방바닥에서 뒹굴뒹굴하면 책걸상은 장식품일 뿐이다. 우리 정당 및 정치가 흡사하다. 이름만 바뀌었을 뿐 행태는 변한 게 별로 없다. 불행하게도 30여년 전 첫 투표를 해본 이후 지금까지의 기억으로는 아름다운 선거가 없었다. 선거 전과 후는 매번 얼굴을 찌푸리게 하는 일들이 따라다녔다. 정책이나 공약 대결로 심판을 받아야 마땅하나 폭로와 비난·흠집내기 등이 주된 레퍼토리다. 어쨌든 최종목적은 표를 달라는 것인데 세월이 흘러도 염치가 없는 건 마찬가지다. 적지 않은 유권자들은 이런 한국정치에 익숙해진 탓인지 단편적이거나 말초적인 지적질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기도 한다.

틀을 깰 수 없다면 사람이 달라지는 게 대안인데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누구나 잘하겠다고, 잘할 수 있다고 고개를 숙이지만 결과적으로는 거의 도긴개긴이다. 역사가 확인해준다. 정치는 세력이고, 그 세를 가지거나 빌리기 위해서는 정당이 필요하다. 하지만 소속되는 순간, 품어왔던 의지와 철학은 부지불식간에 수정 내지 축소 또는 변절을 요구받고 운신의 폭은 그만큼 좁아지기 마련이다. 정작 ‘사람’을 제대로 볼 수 없게 만드는 군더더기가 너무나 많다.

이번 선거는 말 그대로 자신이 살고있는 지역을 발전시키는데 앞장 설 수 있는 일꾼을 선택하는 일이다. 평소 어떤 생각을 갖고 그에 합당한 삶을 살아왔는지, 그럴 능력이 있는지 등을 판단하는 게 유권자의 책무다. 거름지고 장에 가듯 느닷없이 불어닥친 바람에 편승한 후보도 걸러내야 하고, 반성의 기미도 없이 보수와 향수를 동의어로 착각하는 후보도 식별해야 한다. 시켜주면 잘할 수 있다는 것이 당사자의 각오일지 몰라도,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은 그 사람이 길어온 길을 보고 판단한다.

요즘처럼 말만 잘하는 사람이 넘쳐나고 득세하는 시절에는 비교와 검증 자체가 어렵지만, 적어도 현재와 과거는 그렇지 않다. 과거가 유의미한 것은 현재를 구성하고 있는 조각들이기 때문이다. 정치가 무관심에다 냉소를 넘어 혐오까지 근접한 상태지만 그래도 투표는 해야 한다. 매번 같은 일을 하면서 결과가 다르기를 기대하는 것도 무책임하니까. 정치가 사람을 못된 놈으로 만드는 걸까. 아니면 그 사람이 원래 못된 놈이란 것을 정치가 밝혀줄까. 그래서 선거가 두렵다.

장준영 (편집국 부국장 겸 사회부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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