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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머리의 작은 기적] 인성교육- 스스로 자라는 아이들

2018-07-02

초등생이 동아리 만들어 함께 활동하고 스스로 생각
책 돌려 읽고 밖에 나가 직접 조사
‘나무젓가락 사용말자’ 기막히게 표현
외래어 간판 가게엔 우리말 홍보도

[밥상머리의 작은 기적] 인성교육- 스스로 자라는 아이들

꽤 오래전 일입니다. 대구북동초등학교 6학년3반 담임을 맡았습니다. 남자아이 21명, 여자아이 16명 모두 37명이었습니다. 그해 아이들은 모둠활동을 참 잘했습니다. 다달이 학급문집을 만들었는데 모둠끼리 모여서 스스로 문집을 아주 잘 만들었습니다. 모둠 이름도 ‘우리는 하나’ ‘도깨비 방망이’ ‘정의로운 호돌이’처럼 특색있고 재미있게 지었습니다.

4월 어느 날 교실 뒷문 유리창에 이런 벽보가 붙었습니다.

동아리를 같이할 사람을 찾습니다.

1. 동아리 이름 : 제자리

2. 하는 일 : 우리말 살려 쓰기와 환경 살리기

3. 모집 인원 : 우리말(7명), 환경(7명)

4. 동아리 참가 자격 : 6학년 1·2·3반

5. 신청 방법 : 4월19일(금)까지 3반 한수희 앞으로 신청서를 낼 것(신청서는 한수희)

6. 시험 : 신청자가 많으면 필기시험을 치고 면접도 합니다. (시험 문제는 우리말과 환경에 관한 문제)

7. 첫 모임 : 20일(토) 오후 1시30분 6-3 교실

8. 활동 : 매달 2회 이상 조사도 하고 공부도 합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평소 모둠활동을 잘하는 우리 반 아이들이지만 대학생처럼 스스로 동아리를 만들어 활동하겠다고 이런 벽보까지 붙이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일이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하고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그렇지만 궁금증을 꾹꾹 누르고 슬쩍슬쩍 엿보기만 했습니다. 시험 문제를 만들고 면접할 것도 준비하는 게 보였습니다. 신청자가 들어왔다고 좋아 하는 모습도 가끔 보였습니다.

그렇지만 신청자가 적어서 시험도 못 치고 면접도 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모인 사람은 모두 아홉 사람·우리말 살려쓰기부에 다섯 사람, 환경살리기부에 네 사람이었습니다. 희망자가 적다고 실망하는 아이들에게 이만하면 결코 적은 수가 아니라고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그렇게 모인 동아리는 꾸준히 활동을 해 나갔습니다. 학교에서 모이기도 하고, 집에서 돌아가며 모이기도 하면서 책도 돌려 읽고, 밖으로 조사도 나가고 했습니다. 나는 아이들이 읽을 책을 구해주기도 하고, 아이들이 모이는 장소에 간식을 사서 몇 번 찾아가보는 정도였지 깊이 관여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우리 반에서 다달이 하는 ‘내 생각 발표회’ 시간이었습니다. ‘내 생각 발표회’ 시간에는 우리 반 식구 한 사람도 빠짐없이 차례로 앞에 나와서 자기 생각을 말합니다. 무슨 말이라도 좋습니다. 평소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해도 좋고, 친구들에게 부탁하는 말도 좋고, 학교나 선생님에게 ‘이렇게 해주세요’ 하는 의견을 말해도 좋았습니다. 또 자기 주장을 펴도 괜찮았지요. 길게 이야기하든 짧게 이야기하든 그것도 마음대로였습니다. 제자리 동아리 ‘환경살리기’ 부에서 활동하는 조윤제 차례가 되었습니다. 윤제는 칠판에 커다랗게 이렇게 써놓고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산에 불을 지르지 맙시다.

산에 불을 지르지 말자고? 우리 반 아이들 가운데 누가 산에 가서 불을 지른다고 저런 주장을 하나? 쓸데없는 껍데기 주장이다 하고 처음에는 실망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얼마 전에 봄 소풍을 갔을 때 많은 아이들이 나무젓가락을 가져와서 썼다는 겁니다. 그 나무젓가락은 산에 있는 나무를 베어서 만든 것이니 쓰고 버린 나무젓가락을 모아서 태우면 그게 바로 산에 불을 지르는 것과 같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앞으로 우리는 나무젓가락을 쓰지 말고 쇠젓가락이나 포크를 쓰자는 주장이었습니다. 무릎을 치면서 들었습니다.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윤제의 그 주장을 들은 뒤부터는 1회용 나무젓가락을 절대 안 쓰기로 단단히 마음 먹었습니다. 그 다짐은 지금까지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여름 방학이 되자 윤제는 나무젓가락 안 쓰기 홍보 운동을 방학과제로 잡았습니다. 방학이 되자 나무젓가락 쓰지 말자는 표어와 포스터를 많이 만들어 달성산단 안에 있는 식당과 버스정류장 같은 곳에 붙였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식당 주인에게 호되게 야단을 맞기도 했지만 그 일을 방학이 끝날 때까지 쉬지 않고 했습니다.

한수희와 함께한 ‘우리말 살려쓰기’ 부원들의 활동도 방학 때 더욱 빛났습니다. 한수희도 방학과제를 우리말 살려 쓰기 운동으로 잡아서 산단은 물론 대구시내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외래어로 간판을 달아놓은 집을 찾아다니며 홍보 를 했습니다. 수희 역시 가게 주인에게 혼쭐이 나기도 여러 번 했다는 게 방학 보고서에 실렸습니다. 아이들의 이런 활동이 알려져서 KBS와 MBC 텔레비전에서 특집으로 방영하기도 했습니다.‘함께’ ‘스스로’ 하는 활동은 우리를 성큼 크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한 번 생각해보세요. 이번 여름방학에.

윤태규<전 대구동평초등학교 교장·동화작가>

일러스트=최은지기자 jji1224@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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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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