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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시네 토크] ‘변산’ 이준익 감독

2018-07-20

“랩·스웩 넘치는 빛나는 청춘…웃다보면 슬픈 영화”

20180720

‘패러독스 코미디’. 이준익 감독은 자신의 13번째 연출작 ‘변산’을 이렇게 소개했다. “한마디로 변칙과 역설의 웃음극이다. 굉장히 변칙적인 웃음포인트들이 있어서 감정에 젖으려면 갑자기 웃기고, 웃다보면 감정이 밀려온다. 웃음과 슬픔의 엇박에서 나오는 ‘벗센스(butsense)의 미학’으로 이뤄진 웃픈영화라 할 수 있다.” ‘변산’은 ‘사도’(2014), ‘동주’(2016), ‘박열’(2017)까지 한동안 시대극에 천착했던 이준익 감독이 오랜만에 내놓은 현대극이다. 이번 역시 틀을 깨는 새로운 시도와 인물을 바라보는 애정 어린 시선이 동시대 유행의 최전선에 있는 힙합과 전북 변산 한 시골마을의 촌스러운 정서에 잘 녹아들었다. “눌려 있는 것들을 펼쳐보고 싶고, 드러내고 싶고, 깨우고 싶은 열망이 있었는데 이번 작품을 통해서 그 틀을 확 깨는 시도를 했다.” 영화는 무명 래퍼 학수(박정민)가 고향으로 내려가 외면했던 과거를 마주하고 화해하는 과정을 담았다. 그 과정에서 청춘의 아픔과 슬픔을 위무하고, 한때는 청춘이었으나 어느덧 나이 들어 버린 아재들 혹은 그 윗세대까지 넉넉한 가슴으로 품는다. 이준익은 “그래서 ‘변산’은 내 영화 중에서도 나와 가장 유사한 정서를 지녔다”고 했다. 에두르지 않은 정공법이 투박해 보일 때도 있지만 그게 이준익 감독의 진심임을 알고 있다면 분명 가슴 따뜻한 온기로 전해질 영화다. 물론 “즐겁지 않으면 일하지 않는다”는 이준익 감독의 모토처럼 랩으로 채워진 스웩 넘치는 청춘들의 빛나는 모습은 시종 유쾌하다.


“과거에 미처 털어내지 못한 껄끄러움과 허물
서로 한바탕 뒹굴면서 싸우는 뻘밭 신 상징적
고향으로 내려가 외면했던 지난일의 화해 과정”

“내 젊은시절 해방구는 록…뜨거움·열정 공유
우리시대의 꼰대 아버지와 무명래퍼인 아들
요즘 젊은층 핫한 ‘쇼미더머니’ 대변한 힙합
학수가 갖고있는 내면의 고백 힙합으로 전달
올챙이시절 망각한 꼰대라면 영화 보길 추천”

“짝사랑역 위해 8㎏ 찌운 김고은 캐스팅 만족
사극·현대극 영화마다 소재·이야기 거리감
장르감독 아닌 이준익으로 살아가는 지향점”



20180720

▶한 판 신명나게 놀았다는 느낌이다.

“그런 의도였다. 과거 껄끄러웠던 친구들을 만나면 우리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대부분 마주치기 싫어 피하거나 도망쳐보지만 그러지 못할 경우 악수를 청하거나 살풀이를 하게 된다. 그게 한 판 신명나는 놀이로 비치길 바랐다.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학수와 용대(고준)가 서로 엉겨붙어 싸우는 뻘밭 신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인데, 난 그것을 싸움이 아닌 몸부림으로 봤다. 두 사람이 과거에 털지 못했던 껄끄러움과 허물을 오늘 여기서 한바탕 뒹굴면서 싹 털어버리고 ‘아따 후련하다’ ‘개운하다’라고 말하길 바랐다.”

▶변산을 기획한 의도는 뭔가.

“이 영화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결정적 동기는 작가가 쓴 ‘내 고향은 폐항, 내 고향은 가난해서 보여줄 건 노을밖에 없네’라는 두 줄짜리 시 때문이다. 나에게 울림을 준 그 시를 모티브로 고향의 다양한 군상을 보여주고 싶었다.”

▶힙합을 소재로 삼은 건 의외였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대중매체에 속한 영화는 대중문화를 수용하고 재가공하는 일을 한다. 요즘 젊은이에게 가장 핫한 장르가 지난 몇년 동안 ‘쇼미더머니’로 대변되는 힙합이다. 반면 학수의 아버지(장항선)는 우리 시대의 빛나는 꼰대라 할 수 있다. 그런 사람이 힙합과 마주했을 때 어떤 정서가 파생될지 나부터 궁금했다. 시나리오를 이 부분에 맞춰 각색하고 찍다보니 의도치 않게 청춘 3부작으로 묶여버렸다. 나는 목표지향형 인간이 아니다. 현실 순응자이고, 그 현실순응을 성실하게 대면하는 과정안에서 어제와 똑같은 언어가, 또 오늘같은 내일이 이어지다 보니 이런 결과물이 나왔다. 힙합이 소재지만 세대간의 갈등을 어떻게 극복하고 해소하느냐의 과정이 더 중요하게 작용하는 영화다.”

▶평소 힙합을 듣거나 즐기는 편인가.

“일부러 찾아서 듣지는 않지만 영화를 만드는 직업이다보니 새로운 트렌드나 장르의 영화가 나오면 솔깃해진다. 물론 관심이 있는 것과 좋아하는 건 다르다. 힙합을 좋아할 정도로 내가 신세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전 꼰대는 아니다.(웃음) 감독은 다양한 연령층의 관객을 아우르는 작품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동시대와의 호흡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일부러 힙합을 소재로 한 ‘8마일’ ‘스트레이트 아웃 오브 컨텀’ 등의 영화와 ‘쇼미더머니’도 찾아봤다. ‘쇼미더머니 6’는 세미 파이널 무대까지 직접 보고 왔다.”

▶전작 ‘동주’ ‘박열’의 시대적 상황이 주는 슬픔과 답답함에서 벗어나고 싶다고도 말했는데.

“충분한 힐링이 됐다. 내가 청춘이었을 때는 해방구가 록이었다. 1960~70년대의 록은 지금의 힙합과 똑같은 사회적 기능을 갖고 있었고, 당시 청춘들은 이를 통해 뜨거움을 공유했다. 그 흔적으로 밥 딜런은 노벨문학상을 받은 거다. 그가 상을 받게 된 록의 가치는 바로 공동체 의식의 가치다. 반전운동으로 시작해 지금 인류문명이 가져야 할 유가치한 이데올로기 중 하나인 공동체의 가치를 주장했던 게 록이다. 이젠 자식이나 손자세대가 힙합에 심취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힙합은 공동체의 꼰대성을 비판한다. 그래서 역사는 변증법일 수밖에 없다는 게 록과 힙합으로 설명된다. 힙합의 가사를 자세히 들어보면 공동체 가치에 억압된 개인의 항변과 저항이 래퍼의 진솔한 고백으로 나타남을 알 수 있다. 영화속에서도 학수가 갖고 있는 내면의 고백이 힙합을 통해 전달되는데, 그것은 현재 대한민국의 보편적 개인주의 가치성을 절박하게 외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힙합에 더 심취한 것 같다.

“그렇다. 어떤 일이든 잘 모르는 게 있다면 그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모른다고 귀찮아서 외면하는 것과 ‘저건 뭐지’하고 들여다보는 건 이해와 오해의 차이다. 그래서 사실 이 영화는 꼰대들이 봐야 할 영화다. 왜냐고? 청춘이 꼰대를 이해하는 게 빠르겠나, 꼰대가 청춘을 이해하는 게 빠르겠나. 당연히 후자다. 청춘은 꼰대의 시대를 경험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절대 이해할 수 없다. 이해를 강요해도 안된다. 하지만 꼰대는 청춘을 경험해봤다. 단지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을 못할 뿐이다. 올챙이 시절을 망각한 꼰대들이라면 꼭 이 영화를 보길 바란다. 보고 나면 ‘맞아, 나도 옛날엔 올챙이였어’라고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학수가 아버지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는 장면은 인상적이었다.

“우리의 모든 아버지나 어머니들은 다 누구의 아들이고 딸이었다. 그것을 일종의 연대감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데, 그 연대감이 상당히 분절되고 심화되고 세대간의 갈등으로 비치는 게 ‘변산’에선 다 무너져 버렸으면 했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게 학수가 아버지를 주먹으로 치는 장면이다. 아들이 아버지를 때린 비윤리적 행위지만 실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맞고자 애원한 것이기도 하다. 아버지에 대한 불만이 커서 평생 피해다니고, 미안하다고 손을 내밀어도 계속 외면하고 있는 자식을 보고 죽는 건 억울하니 아예 나를 치고 넘어가라는 의도다. 아마도 관객들은 학수가 진짜로 아버지를 때릴지는 몰랐을 거다. 하지만 내가 학수 아버지라도 그동안 잘못한 게 많으니 너무 맞고 싶었을 것 같다.”

▶과거 불편했던 사람과 마주칠 기회가 생긴다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 같나.

“생각하기조차 두렵다. 인간은 망각의 합리화가 있는데 그건 좋은 명약이다. 자다가도 벌떡 이불 속에서 얼굴이 빨개지는 수치스러운 기억을 매일 밤 떠올린다고 생각해봐라. 그건 지옥이다. 그것을 의지적으로 망각하는 게 인간이 지닌 자기합리화의 기능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부끄럽고 불편했던 과거의 기억을 피해 여기까지 왔으니 계속 멀리 도망갈 것 같다. 참 비겁한 인간이지.”(웃음)

▶서울이 고향인 것으로 알고 있다.

“태어난 곳은 서울인데 부모님 고향이 경북이라 어릴 때는 경주와 대구에서 주로 생활했다. 그런데 주로 전라도 영화만 찍고 있으니 나야말로 동서화합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는 사람이다.”(웃음)

▶‘동주’에 이어 박정민을 캐스팅한 것도 탁월했지만 선미 역의 김고은은 신의 한 수였다.

“솔직히 김고은의 연기를 제대로 본 적이 없다. 당시 빅히트를 쳤던 드라마 ‘도깨비’도 보지 못했다. 물리적으로 드라마 볼 여유가 없다. 1년에 한 편씩 영화 만드는 사람이 시간이 있겠나. 시나리오를 써놓고 연출부와 제작부에 선미 역을 추천해보라고 했더니 이구동성으로 김고은을 꼽았다. 그래서 박정민에게 김고은 배우에 대해 물어봤더니 ‘글쎄요. 지금 도깨비로 엄청 떴는데 할까요? 게다가 분량도 적어서 분명 퇴짜를 맞을 것 같다’고 했다. 그런데 하겠다고 하는 거다. 결과적으로 너무 좋았다. 흔히 감독은 자의식이 강하다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자의식이 없다. 타의식이나 무의식으로 영화를 찍는다. 내가 지금도 금과옥조로 여기는 공자님 말씀이 있는데,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을까를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아보지 못할까를 근심하라’는 말이다. 40대 후반에 정말 울림있게 다가온 경구였고 이후 이를 실천하면서 살고 있다. 역시 공자님 말씀은 틀린 적이 없다.”(웃음)

▶김고은이 살을 찌운 것도 본인 의지라고 들었다.

“그래서 대단한 배우라는 거다. 나는 살찌우라고 디렉션을 준 적이 없다. 스스로 체중을 늘렸다. 배우는 시나리오를 읽고 영화에 어떻게 접근할지 입구를 정해야 한다. 입구를 제대로 찾아서 들어가야 순탄하게 라스트까지 갈 수 있다. 선미는 학수를 짝사랑하는데 학수는 미경을 짝사랑한다. 누가 보더라도 선미보다 미경이 더 매력적으로 보여야 하는 거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관객들이 이 이야기에 공감하겠나. 고은이가 생각하기에 미경 역을 맡은 신현빈 배우가 예쁘긴 하지만 상업적으로 익숙한 배우는 아니라고 생각한 거다. 사람에겐 어떤 관성이 있다. 똑같이 예쁜 배우가 있을 때 좀 더 익숙한 배우에게 마음이 간다. 고은이는 당시 ‘도깨비’로 인기를 끌었으니 모든 포커싱이 자신에게 올 것을 경계했고, 미경한테 주도권을 주기 위해 살을 찌워 평범하게 만드는 방법을 택했다. 촬영하는 내내 먹을 것을 입에 물고 살더니 결국 8㎏을 늘렸다. 놀랍지 않나.”

▶매번 틀을 깨는 쉽지 않은 길을 선택해왔다.

“그건 내가 장르영화를 안 찍기 때문이다. 장르영화를 찍는 감독이라면 당연히 장르적 컨벤션에 충실한 영화를 찍어야 한다. 액션이면 액션, 스릴러면 스릴러, 멜로면 멜로를 더 잘 찍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내 작품은 모두 드라마다. 그래서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으려면 가능한 전작으로부터 멀리 벗어나야 한다. 예를 들어 ‘동주’를 찍었던 감독과 ‘변산’을 찍은 감독이 같은 사람이 아닌 것 같다는 말을 들으면 성공이다. 그렇게 ‘왕의 남자’에서 ‘라디오 스타’로, 또 ‘소원’에서 ‘사도’로 넘어가서 ‘동주’를 찍고 이번에 ‘변산’을 만들었다. 정신분열이 있는 게 아닐까 여겨질 만큼 소재나 이야기 측면에서 거리감이 많은 작품들이다. 그게 장르감독이 아닌 감독 이준익으로 살아가는 내 영화적 목표이자 지향점이다.”

글=윤용섭기자 hhhhama21@nate.com
사진제공=메가박스플러스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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