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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교육] 발레 수업에서 배우다

2018-11-12
[행복한 교육] 발레 수업에서 배우다
김희숙 <대구 새론중 교장>

삐걱거리던 발레 수업에서 일이 터졌다. 아침부터 학부모가 찾아와 예술 강사의 발레 수업을 거부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중1 남학생의 부모님이었다. 교사의 인성에 문제가 있다는 게 주된 요지였다. 지적질과 비꼬는 말투에 떽떽거리며 비하발언을 많이 한다는 것이었다. 한창 운동장을 뛰어다니며 거칠게 소리도 지르고 땀 냄새도 진동하는 남학생들, 반면 자라목이 되도록 게임에 열중하고 스마트폰을 붙들고 사느라 움직이기 귀찮아하는 사춘기 아이들에게 발레 수업이 요구하는 행동양식에 관한 에티켓, 수업의 기본이 되는 규율과 품행은 힘들 수밖에 없다. 정교한 움직임과 반듯하고 절도 있는 자세와 인내심이 요구되는 동작과 태도는 사실 요즘 우리아이들에게 필요한 교육인데도 말이다.

내가 어렸을 적 발레는 그야말로 귀족적인 예술이었다. 영화나 그림 속에서 가녀린 선을 지닌 발레리나의 아름다운 동작과 우아한 자세에 절로 감탄사가 나와 얼마만큼 수련하면 저런 경지에 오르는 걸까 선망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라서 나 역시 여중생 때 무용 수업 중 발레 시간, 도도한 자세로 목을 빼고 비음 섞인 불어로 구령을 부르다 순식간에 우아함은 간데없고 마녀처럼 앙칼지게 소리 지르던 선생님에 대한 기억만 남아 있다. 기본 동작 몇 가지 배우고, 바에 다리를 올려놓고 부들부들 떨며 자세 훈련을 하는 흉내(?)를 내노라면, 무용선생님이 ‘촌스러운 것들’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 그럴 때면 기분이 좋지 않아 아이들끼리 시내 병원장의 딸이라 경제력이 넉넉하여 선진문물을 일찍 접했겠지만 우리는 생전 처음인데 어떻게 잘하느냐는 식으로 쑥덕대곤 했다.

세월이 흘러 문화센터마다 유아발레는 골격이 형성하는 시기에 바른 자세와 리듬감과 감수성을 키워준다고 하여 인기강좌가 된 지 몇십 년이 되었다. 최근에는 젊은 여성들에게 당당한 자세 교정을 위해 발레가 부각되고 있다. 발레 수업을 예찬하는 사람들은 이것이 운동, 예술을 떠나서 그 기본이 몸의 무브먼트, 즉 ‘춤’인데 단순히 몸을 움직이는 수준을 넘어서 집중하고 단련시키노라면 몸 안에 존재하는 수많은 근육과 세포가 스스로를 향해 던지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고 한다. 한 동작 한 동작 깊은 호흡을 할 때마다 몸이 걸어오는 대화에 귀를 기울이게 되어 스스로의 생각과 몸을 소중하게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요즘 중학교 담임을 하는 중년 교사들은 학교생활이 더 버겁다. 피해의식이 강한 학부모에다 유난히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아이들이 모여 있는 반은 사소한 사건이 금방 위기가 된다. 가정불화에 성격 문제, 학업 문제, 친구 문제까지 연결되어 있으니 그 접근방법이 녹록지 않다. 몇몇 학생들과 되풀이 되는 씨름을 하고 나면 자괴감이 들고 털어 놓고 위로를 받고 싶어도 각자 바쁜 청춘들에게 구질구질한 면만 보이는 것 같아 혼자 삭이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에너지가 소진되어도 퇴근을 하면서 마음을 비우고 훌훌 몰입할 운동을 찾는다. 스크린골프를 치면 편한 친구와 오랜만에 수다를 떠는 느낌, 헬스장에 가서 횟수를 채우고 땀을 흘리면 푹 자고 상쾌한 아침을 맞는 느낌, 피곤하고 귀찮아서 죽기보다 하기 싫은 수영을 마치고 나오면 생크림에 딸기를 얹은 달콤한 와플을 먹는 느낌이 든다니 확실히 일과 삶의 밸런스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런 시대일수록 더욱 필요한 것은 스스로를 차분히 성찰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미국 경제학자 볼딩은 중국이 미국을 넘어서는 2030년, 중국몽을 실현할 대륙의 미래 인재를 가르치는 세 가지 조건 중 하나가 ‘나에 대한 탐구’라고 정의한다. 중국의 무술처럼 현대인에게 몸을 천천히 정확하게 움직이는 가운데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요가나 발레가 그래서 더 끌린다. 물론 어려운 동작을 가르칠 때도 인격 비하 발언은 삼갈지니….
김희숙 <대구 새론중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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