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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우석의 電影雜感 (전영잡감) 2.0] 최국희 감독 ‘국가부도의 날’과 이권 감독 ‘도어락’

2018-12-14

현실 와닿는 위기·공포감…관객 공감 이끌었다

20181214
‘국가부도의 날’ ‘도어락’ 포스터(위)와 촬영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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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극장가에서 관객들의 호평을 받고 있는 두 편의 한국영화가 있다. 먼저 최국희 감독의 ‘국가부도의 날’은 제목처럼 국가부도라는 1997년 IMF 외환 위기를 막으려는 사람과 그 위기에 베팅하는 사람, 자신이 속한 회사와 가족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각자 다른 선택지를 고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당시를 떠올리면 ‘OECD 가입, 경제 선진국 반열, 아시아의 네 마리 용’ 같이 온통 호황만을 알리는 뉴스 속에서 정말 어떤 예고도 없이 마주한 경제 재난 직전의 긴박했던 일주일을 재구성하는데 주력한다. 영화는 당시 시대상을 반영한 현실적인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들이 눈에 띈다.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 ‘한시현’은 모두가 한국 경제가 낙관적일 거라고 전망할 때 국가부도 위기를 가장 먼저 예견하고 대책을 세운 인물이다. 그 반대편에서 위기를 통해 새판을 짜야 한다고 주장하는 ‘재정국 차관’은 엘리트 중심적인 생각으로 사사건건 한시현과 대립하는 가운데 비밀리에 입국한 ‘IMF 총재’는 양보없는 태도로 한국 정부를 옥죄며 극적인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또 한시현처럼 남들보다 빠르게 국가부도의 위기를 직감한 ‘윤정학’은 타인의 위기를 자신의 기회로 삼는다. 그리고 한국 경제는 문제없다는 정부의 호언장담을 굳게 믿고 있다가 부도를 맞게 되는 ‘갑수’는 회사와 가족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든 버텨보려 했던 가장이다.

‘한시현’을 연기한 배우 김혜수는 한국영화에서 보기 드문 강한 신념과 소신을 지닌 전문직 여성 캐릭터로 분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면모부터 계속된 갈등에도 흔들림 없는 돌파력, 위기 상황일수록 원칙을 지키려는 굳은 신념을 지닌 인물로 극을 이끈다. ‘윤정학’을 연기한 배우 유아인은 동물적인 투자 감각으로 지금의 위기가 인생을 바꿀 기회임을 직감하나 국가부도의 위기 앞에서 무능하거나 무지한 민낯을 드러낸다. ‘갑수’를 연기한 배우 허준호는 벼랑 끝에 몰린 가장의 절박함을 섬세한 연기로 소화한다. ‘재정국 차관’을 연기한 배우 조우진은 날카로운 연기와 강한 존재감으로 긴장감을 배가시킨다. 여기에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IMF 총재’를 연기한 배우 뱅상 카셀은 여유로움과 냉정함으로 협상의 주도권을 쥐고 흔들며 이지적이고 냉철한 카리스마를 출연 장면마다 표출한다. 뱅상 카셀을 한국영화에서 보다니, ‘설국열차’에서 배우 크리스 에반스를 봤을 때보다 강렬한 체험이었다.


‘국가부도의 날’
IMF 외환위기에 대처하는 여러 군상의 인물
최악의 상황 막는 한시현 중심 팽팽한 긴장감
기회주의자·한가족의 가장 이야기 기억 환기

‘도어락’
1인 가구 범죄 확산…20∼30대 젊은층 관심
낯선 존재의 위협…피부로 느껴지는 오싹함

현실 소재, 시대정신 담은 이야기 풀어내 호평



‘국가부도의 날’보다 며칠 뒤 개봉한 이권 감독의 ‘도어락’은 연이은 뉴스 보도를 통해 익숙한 1인 가구 범죄를 다루고 있다. 열려 있는 도어락, 낯선 사람의 침입 흔적, 혼자 사는 여성 ‘경민’의 원룸에 살인사건이 일어나면서 시작되는 스릴러물이다. ‘경민’이 겪는 불안과 공포는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들이 한번쯤 겪어봤음 직한 설정으로 공감을 성공적으로 끌어낸다. 영화적인 상상력이 아니라 일상에서 정말로 일어날 수 있는, 어딘가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매우 현실적으로 표현하는데 특히 젊은 20~30대 여성 관객들이 느낄 공포감은 유사한 영화들에서는 보지 못한 것이다. ‘경민’을 연기한 배우 공효진은 상상에서만 존재하던 공포가 눈앞에 나타났을 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인물의 감정을 표현하고 싶었다며, 혼자 사는 원룸에서 누군가의 침입 흔적을 발견하고 자신의 목숨마저 위협받는 캐릭터가 되기 위해 미세한 동공의 떨림이나 호흡의 강약을 조절하는 모습을 펼친다. 일상적이고 평범한 장면까지 새롭게 만드는 능력을 보여준 그녀는 한국영화 여배우 기근 상황에서 단연 돋보인다.

특히 영화에서 ‘경민’이 잠든 사이 침대 밑에서 기어 나오는 낯선 침입자의 등장은 관객들에게 잊지 못할 긴장감을 선사한다. 누군가 자신의 집에 침입한 것 같다는 ‘경민’의 직감을 아무도 믿지 않지만 관객들은 이미 그녀의 집에 살고 있는 침입자가 언제든 위협을 가할 것을 알고 있다. 주인공이 자신을 위협하는 존재의 실체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사건이 벌어지기 때문에 ‘경민’이 느끼는 서늘한 공포와 심리적인 불안감에 관객들을 더욱 몰입하게 만드는 것이 감독의 목표였다면 성공한 연출이겠다.

‘도어락’이 기존 스릴러물들과 차별되는 지점은 바로 이런 폭넓은 공감을 이끌어내는 현실감이다. 1인 가구를 노린 범죄가 날로 증가하는 속에서 영화는 ‘경민’이 혼자 사는 원룸이라는 현실성 있는 소재를 장르적인 재미로 잘 풀어낸다. 실체를 알 수 없는 낯선 존재의 위협에서 ‘경민’이 살아남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서늘한 공기, 마치 현장에 있는 듯 피부로 느껴지는 오싹한 공포를 디테일하게 표현한 제작진의 노고가 느껴진다.

‘국가부도의 날’ 역시 실제 1997년 외환위기 당시 비공개로 운영되었던 대책팀이 있었다는 한 줄의 기사에서 시작된 만큼 국가부도 상황을 예견하고 어떻게든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진 ‘한시현’을 중심으로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비공개 대책팀, 과감히 국가부도의 위기에 투자하는 ‘윤정학’과 무방비 상태로 직격타를 맞게 된 ‘갑수’로 당시를 대변하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씨실과 날실처럼 교차하는 신선한 구성을 통해 서로 다른 기억으로 내재된 1997년을 새롭게 환기시킨다. 비밀리에 입국한 IMF 총재와의 협상 과정이 본격화되고 서로 다른 선택을 했던 캐릭터들의 운명이 엇갈리기 시작하며 절정을 향해 달려가는 영화는 고용불안, 청년실업, 빈부격차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한국 사회 문제의 시발점이 된 1997년의 모습을 통해 2018년 현재에도 유효한 의미 있는 화두를 던지며 동시대의 공감대를 끄집어낸다.

매번 천문학적인 제작비를 쏟아부으며 영화적 상상력을 뽐내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맞서는 한국영화만의 정체성은 같은 제작비를 들여 규모 대 규모로 맞서는 것이 아니라 시대정신을 정직하게 담은 현실감 넘치는 이야기와 그 속에서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탁월한 배우의 연기가 아닐까. 관객의 생각도 궁금하지만 영화인의 생각 역시 궁금하다.

독립영화감독, 물레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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