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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타워] 이것은 시험인가, 실험인가

2019-02-14
[영남타워] 이것은 시험인가, 실험인가
이은경 경제부장

또 한 번의 폭풍같은 입시 시즌이 끝났다. 호환마마보다 무섭다는 ‘고사미’ 엄마를 두 번이나 해냈지만, 나는 여전히 입시가 어렵고도 무섭다. 대한민국에선 누구도 이 난관을 피해갈 수 없다. 오죽하면 입시 괴담을 드라마로 만든 ‘SKY 캐슬’이 그렇게 인기를 얻었겠는가. 허술한 스토리와 억지스러운 결말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가 연예 뉴스의 대부분을 차지한 것은 대한민국의 가장 민감하고 치명적인 분야를 건드렸기 때문일 것이다.

경쟁사회에서 우열을 가리는 시험은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입시제도에 대해 근원적인 회의는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 다만 거기에는 어떤 전제 조건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그 시험이 적합하며, 모두가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두 가지 차원에서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 하나는 시험 자체의 문제, 또 다른 하나는 시험이 치러지는 사회 시스템의 적합성과 신뢰도의 문제다.

먼저 올해 ‘불수능’이라는 표현으로 드러난 난이도 조절 실패는 시험 자체의 문제다. 이는 제도 내부의 문제이지만 입시제도의 기초이자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예사로운 사안이 아니다. 이것에 문제가 생기면 시험의 적합성과 신뢰성에 금이 간다. 난이도 조절 실패를 일컫는 ‘불수능’ 또는 ‘물수능’이란 말이 언급되는 동시에 입시제도 자체에 대한 비판이 밀물처럼 밀려오는 이유다. 불수능 논란을 빚었던 2019학년도 수능은 정상적인 고교 교육과정을 위반해 출제되어 수험생들에게 피해를 주었다는 이유로 국가손해배상청구소송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참에 단 한 번의 수능으로 모든 것을 결정짓는 시스템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미래사회 변화에 대비한 ‘미래형 수능’에 대한 교육적 논의도 있어야 한다. 수능이 실력을 검증하는 것이어야지, 운을 시험하는 것이어선 안되는 까닭이다.

수능 자체의 문제가 해결된다 해도 과제는 남는다. 입시 시스템에 대한 사회적 신뢰다. 이것은 지난 수십 년간 한국 사회를 휩쓸고 있는 주요 담론이자, 신뢰와 공정성을 포함한 한국 사회의 수준을 가늠해 주는 중요한 잣대다.

숙명여고 쌍둥이 사태에서 보듯 학교 내신조차 믿을 수 없어졌고, 학생부종합이라는 이름 아래 이뤄지는 ‘자동봉진’(자율활동, 동아리활동, 봉사활동, 진로활동)은 있는(공부 잘하는) 자들만의 리그가 된 지 오래다.

학교 공부만 열심히 하면, 공부는 못하더라도 특별한 재능만 있으면 대학을 갈 수 있다고 말하던 희망의 등대는 없다. 평준화 고교의 서열화는 공공연한 비밀이 되었고 믿을 수 없는 수시 대신 정시를 늘리라는 목소리는 커져가고 있다. 합격을 했으나 어떻게 합격한지 모르고, 떨어졌으나 무엇이 부족한지 모르는 것이 대학입시의 웃지 못할 현실이다. 신뢰를 잃어버린 교육 현장에서 아이들은 등대(는 처음부터 없었는지도 모른다)를 찾아 깜깜한 바다를 헤매고 있다.

혼종성, 다양성의 원리를 지키기 위해 입시 자율은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그것을 기반으로 현행 입시 제도도 모습을 갖췄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작동하는 많은 부작용을 우리가 애써 외면한 것도 사실이다. 대학의 서열화, 기울어진 운동장, 다른 출발선, 거인의 어깨 위에서 뛰는 일부 학생들, 숙명여고 사태에서 볼 수 있는 범죄 행위들을 방조하는 교육현장의 실태 등등.

그러다보니 학부모들은 존재하지도 않는 ‘김주영 쓰앵님’을 찾아다니고 검증되지 않은 사교육 시장만 그 세력을 키워가고 있다. 그렇게 시장이 미시적으로 움직이며 교육 소비자들의 불안한 영혼을 갉아먹는 사이, 교육정책은 그들의 은밀한 움직임에 무화된다. 해답은 멀리 있고 모든 논란은 수능 시험 후 수일 내에 사라진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 말이 무색하다. 이은경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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