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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모여라, 우리가 TK다

2019-02-22
20190222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 첫 문장이다. 이는 작가가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라고 해야 할지, 혹은 ‘버려진 섬마다 꽃은 피었다’라고 해야 할지 며칠 밤을 고민한 끝에 선택한 문장이라고 한다. 언어의 세계에서 한 음절의 조사가 빚어내는 내밀한 긴장과 찰나의 도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나로서는 작가가 뜬눈으로 지새운 밤의 속셈을 짐작할 수가 없다.

‘모여라, 우리는 TK다’를 ‘모여라, 우리가 TK다’로 바꿔 읽으면 분명한 어감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앞의 문장에서 ‘우리’와 뒤의 문장에서 ‘우리’가 전혀 다른 사람을 지칭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TK는 누구나 잘 알고 있듯이 대구경북 사람을 지칭한다. TK를 두고 각각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 서로 우리라고 부르는 양상은 사실상 언어의 문제가 아니고 현실의 일이다. 어떻든 한편에서는 스스로를 TK라고 자임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다. 이들은 대구경북에서 태어나 서울로 가서 입신양명한 사람들 가운데 이른바 국가주의의 위계를 맹종하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을 ‘TK1’이라고 명명한다.

이와는 매우 대조적인 다른 부류의 TK가 있다. ‘TK2’다. TK2는 TK1이 필요할 때 오로지 대상으로만 소환되는 사람들이다. 대구경북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 생업에 종사하면서 아이를 낳아 기르고 교육시키고, 일상을 이웃과 지지고 볶고 부대끼면서도 정붙이고 함께 살아가는 우리의 이웃이 바로 그들이다. ‘모여라, 우리가 TK다’는 경상도 말로 ‘너거’가 아니고 ‘우리’야말로 진짜 TK라고 말하는 TK2의 아름다운 반란의 말투와 주체 선언의 의지를 담고 있다.

‘우리’라는 말에 대해선 약간의 추가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우리는 대구경북에서 일상의 인연으로 얽히고설키고 있는 우리 모두를 일컫는다. 서울이나 광주에서 온 사람도, 미국이나 중국에서 온 외국인도, 심지어 우주에서 살다가 온 외계인이라도 날마다 한 울타리에서 만나는 이웃으로 살면 모두 함께 ‘우리’다.

국채보상운동기념일인 2월21일부터 2·28민주운동기념일인 28일까지는 대구시민주간이다. 다양한 행사가 준비돼 있다. 그런데 누가 이 모든 행사의 주체일까. 바로 ‘일상을 이웃과 지지고 볶고 부대끼면서도 정붙이고 함께 살아가는 우리’다. 우리가 TK인 것이다. 대구시민주간인데 왜 대구경북이냐고 묻는다면 대구경북은 원래 하나라고 답하고 싶다. 대구가 대구경북이고, 대구경북 또한 대구다. 경북 군위에서 살고 있다고 해서 대구사람이 아니라고 할 이유가 없다.

곧 있으면 3·1만세운동 100주년을 맞는다. 3·1운동은 근대적 국가 만들기의 엄숙한 시작이었다. 3·1운동 선언문은 ‘오등(吾等)은 자(玆)에 아조선(我朝鮮)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로 시작된다. 근대 국가 만들기의 100년을 넘어 이제 우리는 ‘도시 혹은 지역 만들기’의 시대적 과업을 마주하고 있다. 대구시민주간은 이를 위한 작은 출발의 팡파르다. 모여라, 오등은 TK다. 우리가 주체다.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그리고, 우리가 꽃이다.

김영철 (계명대 경제금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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