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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옥의 그림 같은 집] 녹홍설을 피운 집

2019-05-31

녹홍설 피운 듯 지조·절개 담긴 김정희 ‘세한도’, 신선도 부러워 할 풍경, 김홍도 ‘삼공불환도’와 대비

[서영옥의 그림 같은 집] 녹홍설을 피운 집
녹홍설(왼쪽). 김홍도의 ‘삼공불환도’에 나오는 집.
[서영옥의 그림 같은 집] 녹홍설을 피운 집

아침 해가 차오를 무렵 녹홍설 열 송이가 당도했다. 실은 전화기로 전송되어온 꽃 이미지다. 실물이 아니어도 보내준 이의 진심은 가슴으로 배어든다. 꽃향기를 직접 맡아보고 싶다는 욕심을 내비칠 수 없었던 이유다. 덕분에 아침나절을 녹홍설의 매력에 푹 빠져 지냈다. 조형에 민감한 감각은 가슴으로 다가온 감동을 눈으로 분석하곤 한다. 덤으로 얻은 삶의 환기에는 교훈이 따라붙는다.

작은 화분에 밀집한 꽃들의 화색이 밝다. 꽃의 자태는 금동미륵반가사유상처럼 여린 듯 당당하다. 끝은 뾰족하고 폭이 좁은 꽃의 아우라는 얼핏 보아도 고아하다.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을 측면에서 본 것처럼 녹홍설의 유기적인 조형이 연약할 법한 흰색의 감정을 보완해준다. 꽃잎 한복판에 숨은 홍색을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녹색 빛이 감도는 꽃잎 안쪽이 혀처럼 붉다고 하여 붙은 녹홍설에 홍색의 스며듦이 자연스럽다. 보색을 밀어내기보다 스며듦으로 조화를 이루어낸 꽃빛이 교훈적이다.

생뚱맞지만 녹색 결 꽃잎 안쪽에서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상이 얼비친다.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뜻의 피에타는 성모 마리아가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를 안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그림이나 조각상이다. 조각에 채색을 피했던 미켈란젤로는 마리아의 숭고한 이미지와 청순함을 하얀 대리석의 미감에 기대었다. 푸른색이었을 마리아의 옷을 흰 대리석의 형태에만 의존한 것도 마찬가지다. 대리석의 단단한 기세에 흰색이 합세하여 조각상의 의미와 품위를 드높인다.

흰색은 무채색으로 간주된다. 명도만 있고 색상과 채도가 없는 흰색은 화면의 바탕색으로 사용하기에 손색이 없다. 흰 여백이라는 말도 있듯이 동양화에서 흰 바탕은 여유의 의미와 상통한다. 얼핏 보면 약하고 여린 감성이 지배적이지만 자세히 보면 다른 색이 낼 수 없는 고결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꽃과 조각상, 삶할 것 없이 주변과의 어울림을 살펴서 차별화된 가치를 판가름하게 하는 흰색 또한 내게는 한 자락 교훈으로 자리 잡는다.

아마도 여러 날 정성껏 물과 햇볕을 가려 쬐며 보살폈을 것이다. 그렇게 녹홍설을 피워서 지인의 아침까지 밝혀준 주인공의 지극한 정성이야말로 교훈적인 삶의 표본이지 않을까. 사진에 묻어온 작은 공간이지만 녹홍설을 피운 그의 집에 내린 햇볕이 따스하다. 비교적 정갈한 발코니 바닥에는 흰 여백 같은 여유가 흐른다. 깨끗한 창틀에서는 검소함이 포착된다. 군더더기 없는 삶의 공간임이 짐작된다. 그의 집 풍경과 교차되는 그림의 집 한 채가 녹홍설의 감흥을 고조시킨다. 바로 김정희가 그린 ‘세한도’의 집이다.

세한도(歲寒圖)는 핍박과 오해로 점철된 곤궁한 시절에도 인격수양과 지조를 굳건하게 지켜내려던 추사 김정희의 다짐이 서린 그림이다. 고난의 순간에 비로소 지조와 인격을 가늠할 수 있다는 뜻이 담긴 분위기가 군자의 절개를 대변한다. 추사의 자기인식이 처연하다고만 할 수 없을 만큼 본질만 남긴 세한도의 집 표현은 단원 김홍도의 ‘삼공불환도(三公不換圖)’의 집 풍경과는 상반된다.

영의정·좌우정·우의정 삼공(三公)의 부럽지 않은 전원생활을 묘사한 삼공불환도는 속세를 떠난 선비의 기상을 대변한다. 신선도 부러워할 품위 있는 생활의 영위야말로 조선시대 사대부가들의 꿈이었다. 경우에 따라서 사치도 부렸던 그들의 행위는 일반 백성들과는 사뭇 다르다. 서민 대다수는 양반의 토지를 빌려 농사를 지었고 사대부들처럼 격식을 갖춘 생활은 희망사항에 불과했다. 실학자 박제가가 ‘북학의’에서 ‘천호나 되는 고을에도 반듯하고 살만한 집이 없다’고 한 것은 당시 주택상황이 얼마나 열악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녹홍설을 피운 지인의 집은 삼공불환도에 묘사된 집보다 세한도의 집과 가깝지 않을까. 소소한 나눔의 행보가 화가의 하루를 다양한 예술여행과 상상으로 물들인다. 더불어 화가의 빈 캔버스에는 삶의 쉼표 같은 녹홍설이 핀 집 한 채가 추가된다. 화가·미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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