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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타워] “아들아, ‘기생’마저 ‘계획’대로 되지 않구나”

2019-06-06
[영남타워] “아들아, ‘기생’마저 ‘계획’대로 되지 않구나”
이은경 경제부장

(참고 영화 ‘기생충’을 패러디했음. 주의 스포일러 있음.)

열심히 살려 했다. 꿈을 갖고 계획과 목표를 세우고 차근차근 성실하게 움직였다. 그러나 세상은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결혼을 하고 자식도 생겼다. 이제 삶은 나 하나의 문제가 아니었다. 가족 전체의 생존, 또는 삶의 질이 달린 문제가 되었다. 다시 계획을 세웠다. 잘 살아 보겠다고. 인생은 뜻대로 이뤄져 가는 듯하다 다시 곤두박질쳤다. 비유하자면 소시민이 주식을 하는 것 같다. 오를 것이라고 기대(나름의 계획)했고, 계획대로 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한순간이다. 빚만 안고 우울하게 장을 떠나는 현실.

그렇게 치킨집이 망했고 사채까지 얻어 야심차게 시작한 대만 왕카스텔라 집이 망했다. 아파트에서 빌라, 옥탑방을 거쳐 햇빛 한줌 들지 않는 반지하방에 도달했다. 밤이면 취객이 창문에 실례를 하고, 비가 오면 집 안이 물에 잠겼다. 변기가 역류해 똥물이 솟구치기도 했다. 망연자실, 변기 뚜껑 위에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워 물었다. 지옥이었다.

아들이 돈 많은 친구 덕에 부잣집 과외 자리를 얻게 됐을 때 덕분에 남은 가족이 줄줄이 그 집 운전기사와 가정부와 과외교사로 들어가게 되었을 때, 진심으로 기뻤다. 나도 모르게 미소를 띠고 “아들아, 역시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라고 칭찬해 줬다.

처음엔 일이 순조롭게 풀리는 듯했다. 일자리를 얻었고, 삶은 풍요로워지는 듯했다. 주인 가족이 캠핑을 떠난 틈을 타 대저택 거실에서 가족이 함께 술을 마시며 꿈인 듯 취했다. ‘이 집에서 살 수 있다면’ 같은 더 큰 꿈을 꿔보기도 했다. 불안한 꿈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일이 틀어졌다. 아들과 딸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사태가 커졌다. 내가 나서야 했다. 아이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나는 ‘계획’이 있다고 했다.

계획이 있을 리 없었다. 계획이란 뭔가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을 가졌을 때라야 세울 수 있는 법. 가장 확실한 자원은 돈이겠지만 반지하방에서 네 명의 백수를 책임져야 하는 늙은 가장, 운전기사 자리도 거짓말과 꼼수로 겨우 빼앗은 나에게 무슨 계획이 있을까. 가난은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아들이 물었다. “아버지 계획은 무엇이에요?”. 나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결코 실패하지 않는 계획이 뭔지 아냐. 무계획이야. 계획은 실패하게 마련이야. 계획을 세우지 않는 것이 실패하지 않는 가장 확실한 계획이지”. 내 인생이 담긴 진심어린 체념이었다. ‘절대 실패하지 않는 무계획’이라는 이 좋은 계획으로 나는 결국 살인자가 되어 땅굴 같은 컴컴한 지하방으로 굴러 떨어졌다. 올라가는 사다리는 보이지 않지만, 아래로 떨어지는 계단은 있었다. 반지하방이 끝이 아니었다. 꿈조차 꾸지 않는, 욕망을 거세한 나에게 운명은 스스로를 감금시키는 극단으로 밀어 넣었다.

아들은 지하방에 갇힌 나를 구하기 위하여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일단 돈을 아주 많이 버는 것’이란다. 군대 가기 전 두 번, 군대 제대 후 두 번의 입시에 실패한 4수생 아들에게 무슨 기대를 할까. ‘결혼’ ‘직장’ ‘집’을 포기한 ‘3포 세대’를 대표하는 아들에게도 기회가 있을까. 가난으로 인처럼 몸에 박힌 반지하방의 하수구 냄새를 다림질로 구김살을 펴듯 없앨 수 있을까.

똑똑한 딸이라면 가능할까. 걘들 돈이 돈을 낳는 자본주의의 이 공고한 구조에서 무슨 수를 쓸 수 있을까. 고작 우리 가족이 그 부잣집에 취직했던 방식처럼 거짓과 꼼수로 더 가난한 사람의 것을 빼앗을 수밖에, 저 견고한 계급 구조의 사다리는 아무리 계획하고 발버둥을 쳐도 올라갈 수 없는 것이니. 그렇다면 가난은 우리의 운명이란 말인가. 이은경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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