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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아침을 열며] 약산 김원봉

2019-06-10

강도 일본이 내건 현상금만
현재 가치로 보면 320억원
김원봉 활약은 눈부실 정도
광복위해 헌신한 애국자에
남북한의 대접 이래서 되나

[아침을 열며] 약산 김원봉

며칠 전 현충일 추념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약산 김원봉의 역할을 인정하는 연설을 했다. 몇 년 전 인기를 끌었던 영화 ‘암살’에서 배우 조승우가 약산 김원봉 역을 맡아 한마디 했다. “밀양 사람 김원봉입니다.” 그 영화가 나온 뒤 김원봉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높아졌고 마땅히 서훈을 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어났지만 북한 정권 창출에 기여한 인물이라는 이유로 아직 반대가 강하다. 이번에 다시 대통령이 김원봉을 언급하자 아니나 다를까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강력 항의하고 있다.

김원봉이 누구인가? 1898년 밀양 출생, 의열단 단장, 조선의용대장, 광복군 제1지대장, 임시정부 군무부장을 지냈고, 1958년 환갑의 나이에 북한에서 세상을 떠났다. 어릴 때부터 민족의식이 강하여 반일 행동을 하다가 학교를 중퇴했고 20세에 중국으로 건너가 신흥무관학교, 황포군관학교에서 군사학을 배웠다. 1923년 의열단 창단 선언문을 써달라는 김원봉의 요청을 받고 단재 신채호가 쓴 ‘조선혁명선언’은 지금 읽어도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명문이다.

의열단은 강도 일본으로부터 나라를 되찾는 길은 오직 무장투쟁뿐이라는 신조를 가진 젊은이들의 조직으로서 조선총독부, 경찰서(부산, 밀양, 종로), 동양척식회사, 일본 왕궁에 폭탄 투척, 일본 육군대장 다나카 저격 사건 등 눈부신 활약을 펼쳐 일본 제국주의 세력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강도 일본으로서는 외교를 통한 이승만 식의 독립운동은 가장 만만했을 것이고, 무장투쟁과 테러를 들고 나온 의열단이 가장 두려웠을 것이다. 일본이 내건 현상금이 김구 60만원, 김원봉 100만원(지금 가치로 320억원)이었다고 하니 김원봉의 위상을 알 만하다. 김원봉은 일본 관헌의 단속을 피하기 위해 한 자리에 두 시간 이상 머물지 않았고, 잠은 다섯 명의 동지 집에서 돌아가면서 잘 정도였다. 그래서 중국에서의 혁명활동 27년 동안 한 번도 체포되지 않았다.

상해에서 김원봉을 만났던 님 웨일스는 저서 ‘아리랑’에서 이렇게 썼다. “약산은 냉정하고 두려움을 모르는 테러리스트로서 언제나 조용하고 거의 말이 없고 웃는 법이 없었다. 도서관에서 독서로 시간을 보냈는데, 투르게네프의 소설 ‘아버지와 아들’을 좋아했고, 톨스토이의 책을 모두 읽었다.” 약산은 북경에서 만난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차정과 사랑에 빠져 1931년 결혼했다. 박차정은 1939년 강서성 곤륜산 전투에서 큰 부상을 입었고, 그 후유증으로 투병하다가 1944년 34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김원봉은 박차정을 충칭에 매장했다가 광복 후 유골을 안고 귀국해서 고향 밀양에 안장했는데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와 애도했다고 하니 엄혹했던 시절 고생한 혁명가에 대한 마음속 예우였다고 하겠다.

광복 후 대한민국 각 분야를 장악한 친일파들에게는 김원봉이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수도경찰청 수사과장 노덕술은 1947년 3월 김원봉을 연행, 취조하며 온갖 모욕을 주었다. 노덕술이 누구인가? 일제 때 독립운동가들을 잡아 고문하던 악질 중의 악질 민족반역자가 아닌가. 노덕술은 반민특위에 체포됐으나 친일파를 애지중지한 이승만의 비호로 풀려난 바 있다. 노덕술에게 모욕을 당하고 풀려난 김원봉은 분해서 사흘을 통곡했다. 이 사건과 1947년 7월 백주 대로상의 여운형 암살을 본 김원봉은 1948년 4월 김구, 김규식 선생을 따라 남북대표자 연석회의 참석차 평양으로 간 뒤 돌아오지 않았다. 그 뒤 신생 북한 정권에서 국가검열상, 노동상 등을 지내다가 1958년 숙청된 것 같고 그의 최후는 아직 비밀에 싸여 있다.

6·25전쟁 중 김원봉의 동생 4명과 사촌 5명이 학살됐고, 아버지는 유폐돼 굶어죽었다. 그저께 취임한 김원웅 광복회 회장은 김원봉 서훈 논란에 대해 ‘대한민국은 약산에게 훈장을 줄 수 있는 도덕적 자격이 없는 나라’라고 일갈했다. 평생을 풍찬노숙, 오직 조국 광복을 위해 헌신한 애국자에 대한 남북한의 대접이 이래서야 되겠는가.

이정우 (한국장학재단 이사장·경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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