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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김명환의 뮤직톡톡] 사교댄스

2019-06-28

2차세계대전 당시 미군이 전파한 ‘지터버그’, 어르신 어울리는 ‘지르박’ 변이

[김명환의 뮤직톡톡] 사교댄스
광복 직후 댄스붐을 틈타 댄스홀에서 춤을 추는 중년 남녀들.
[김명환의 뮤직톡톡] 사교댄스

왈츠, 스윙, 블루스, 맘보, 부기우기, 삼바, 고고, 트위스트, 힙합, 레게…. 열거한 단어들은 음악 장르인 것 같기도 하고 댄스 장르인 것 같기도 하다. 둘 다 맞는 말이다. 춤과 음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엔진과 바퀴와 같은 결속이라 할 수 있다. 하나의 음악 장르가 새로이 탄생하면 그 음악에 맞는 춤사위가 따라오게 된다. 넓은 공간에 연주자가 있고 플로어에는 수많은 사람이 짝을 이루어 춤을 추는 장면은 고전영화를 보거나 현대 영화를 보거나 똑같이 연출되는 장면이다. 위의 영화 장면들을 보면 마치 격조 있고 품위 있는 상류층이 모여 문화를 즐기는 모습으로 비친다.

조선은 남녀가 구별되어 공공의 장소에서 서로의 신체를 접촉하는 것은 망측한 일이라 생각해서인지 사교를 위한 춤은 고종에 이르러 고종에 의해 시작된다. 당시 공사관 부인의 레슨을 받은 조선 최초의 사교댄서는 고종이다. 그 뒤를 이어 젊은 유학생을 중심으로 서양음악이 유입되고 그 음악에 맞는 춤이 들어오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카페에서 소수의 상류층이 사교춤을 추기 시작했다. 하지만 1929년 댄스홀을 허해 달라는 일본인의 주장과 1937년 조선인의 주장이 있었으나 모두 불허되었다.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어진다. 특히 남녀가 만난다는 데 못 만나게 하면 가족도 버리고 맨손으로 야반도주를 감행하는 게 인간이다. 널찍하고 밝은 공간에서 떳떳하고 품위 있게 시작할 수 있는 첫 번째 기회가 일제의 통제로 날아간 것이다.

광복이 되고 두 번째 기회가 찾아 왔다. 2차세계대전 당시 미군들이 모여 이 춤을 추기 시작해 전 세계로 전파된 ‘지터버그’라는 장르가 국내에도 상륙한 것이다. 지터버그는 ‘어지럽다’의 ‘지터(Jitter)’와 ‘벌레’의 ‘버그(Bug)’가 합쳐진 단어다. 미군의 춤동작은 영국군에게는 마치 두 마리의 벌레가 서로 뒤엉켜 어지럽게 돌아가는 장면으로 보였나보다.

이즈음 다시 한 번 무도회장을 허해 달라 했으나 우리 정부에 의해 불허된다. 광복이 되고 자유가 도래한 시기에 온, 두 번째 기회마저 날아가니 조선의 무도회장은 눈에 띄지 않는 좁고 어두운 공간으로 대체될 수밖에 없었다. 장소가 좁은 데다가 점잖은 한복을 입은 사람들이 사방으로 움직여야 하는 춤 동작은 1자 스텝으로 바뀌게 되고 좁은 장소에서 많은 커플이 서로 부대끼니 파트너의 신체가 더 밀착될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조명까지 어두우니….

인간은 가끔 환경을 지배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 남녀가 모여 춤을 추는 것이 불법이고 타락한 행위라 국가가 재단해 버렸으니 사교댄스라는 생명체는 변이되어 환경에 적응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그후 1955년, 1959년, 5·16, 전두환 시대 등에도 사교댄스는 불륜, 제비족, 카바레, 단속, 패가망신 등의 연상어를 만들어내며 더욱 음성화되었다.

서울의 종로를 가 봐도 대구의 향촌동을 가 봐도 사교댄스 홀의 모습은 같다. 지하에 있고 어두운 조명에 장바구니(소지품) 보관실이 있으며 정적이고 소심한 동작만이 있다. 사교댄스, 이 얼마나 설레고 좋은 말인가. 사교의 반대말은 ‘절교’이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사교댄스를 추고 있는 어르신들을 절교의 눈빛으로 보고 있는 건 아닌지.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보릿고개, 군부독재, 산업화, 민주화, 경제위기…. 이 모두를 살아온 어른들은 남은 인생마저도 어둡게 보내야만 하는 우리의 환경이 아쉽기만 하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이기도 하고 놀랍기도 한 우연이 있다. 젊고 힘이 넘치던 미군 병사가 전파한 지터버그는 우리의 실정에 맞게 조정되어 어르신들이 추기에 신체적 무리가 가지 않을 만큼의 ‘지르박’으로 변이한 것이다. 멀리서 바라보면 참 소박하고 정감있게 어울려 춤을 추는 모습을 넓은 광장에서 밝은 조명 아래서 꼭 한번 보고 싶다. 절교는 싫어, 사교가 좋다!

재즈드러머 sorikong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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