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난 재주 가진 사람은 함부로 자랑하지 않아
자본이 압도하는 세상, 자본에 종속되길 경계"
물질만능의 세상, 자본이 인성을 더더욱 황폐하게 만드는 반(反)경학적이고 반(反)유학적인 이 시대, 공자 사상의 요체이기도 한 효제(孝悌)와 충서(忠恕)의 가치도 추락하고 말았다. 어디에 성인이 있고 어디에 군자가 있고 어디에 대인이 있겠는가. 두 명의 학인(學人)을 만나러 갔다. 남산골서당 남천 윤원돌 훈장(75)과 44년째 주역(周易) 연구가의 외길을 걷고 있는 중정(中正)서원의 이진수 원장(73). 대가를 바라는 맘을 감히 가질 수 없기에 그들의 가계는 더없이 빈한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냉엄한 시장경계에 순치된 세속인들이 그들을 찾아와 삶의 이치를 배우려고 한다. 희한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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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속으로 흐르는 모든 욕망을 최대한 억제하고 '명경지수'와 같은 선비의 삶을 자청한 남산골서당 윤원돌 훈장. 그는 현재 남산골서당에서 시민을 위한 서예교실을 운영하고 있으며, 거처는 대구 달서구 상인동의 한 임대아파트다. 윤원돌 남산골서당 훈장이 적은 신년 휘호 '학철부어'. '수레바퀴 자국에 괸 물에 있는 붕어'라는 뜻으로 매우 위급한 처지에 있거나 몹시 고단하고 옹색한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오른쪽 작은 사진). |
윤원돌 훈장은 한 평생 유유자적하는 선비로 살아왔다. 세인과의 통속적 소통을 멀리한 채 오직 독서와 서예로 일관하고 있다. 대구 중구 남산동 주민들에게는 '훈장선생'으로 불린다. 한 경지를 개척한, 특히 초서에 조예가 깊은 서예가이면서 개인전은 극구 거부한다. 재주를 자랑하는 것 같기도 하고 제자한테 피해를 주는 것 같아서 죽을 때까지 하지 않을 심산이란다.
그는 재주 이전에 사람의 됨됨이(인성)가 글보다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지금 세상은 인성보다 재주가 더 우선시된다.
윤 훈장은 이렇다 할 직업이 없다. 훈장 몫으로 받은 돈으로 혼자 생계를 꾸려간다. 틈틈이 이런저런 통과의례에 필요한 제문, 축문, 사성, 혼서지, 입춘첩 등을 써준다. 생존에 필요한 식료품 등으로 갚는 이들도 많다. 누가 금일봉을 주면 꼭 필요한 양만 쓰고 나머지는 필요한 데 쾌척해버린다.
한번밖에 없는 삶이기에 남들이 다 좇는 부귀공명 때문에 허송세월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호의호식의 삶을 포기하기로 맘을 먹는다. 그 결단력은 어려서부터 가학으로 배운 한학에서 발원됐다.
30대에 모든 인연을 정리했다. 지금은 사라진 중구 남산동에서 가장 허름한 한 누거에 자릴 잡는다. 종일 머리를 숙이고 그 누거에 올라가 공부를 했다.
그는 은거를 좋아하지 않는다. 일상이 최고의 스승이라 믿는다. 유별스러운 것도 경계한다. 남들이 하는 대로 살아간다. 당당하게 저잣거리에서 선비다움을 보여주는 게 그의 삶의 모토이다.
윤 훈장의 눈꺼풀은 조금 동공을 깊숙하게 덮고 있다. 하지만 그 시선은 상당히 매서우면서도 기품이 있다. 도골선풍이다. 누가 무례와 결례를 저질러도 그걸 말로 나무라지 않는다. 그냥 그를 한번 바라보기만 해도 상대는 쉬 제압당한다.
자본이 모든 것을 압도하는 세상이지만 그는 자본에 종속되는 걸 가장 경계한다. 가난의 최전선에 자신을 둔다.
현재 대구 달서구 상인동의 한 임대아파트 15층에 혼자 산다. 아침에 일어나면 냉수마찰을 한다. 제자들이 기다리는 남산골서당에 가서 제자들을 가르친다. 나머지 시간은 철저하게 '독락(獨樂)'의 시간.
비록 유객(遊客)일지언정 책과 벗하며 사는 선비, 이웃에게 지혜를 전해주는 훈장. 그는 그것으로 만족해한다. '천산조비절(千山鳥飛絶)'로 시절되는 당송팔대가 중 한 사람인 유종원의 '강설(江雪)'의 경지를 살고 싶단다.
그가 애지중지하는 문구가 궁금했다. 광이불요(光而不耀·빛은 나되 번쩍거리지 않기를), 화생어구(禍生於口·모든 재앙은 입에서 시작된다)….
그가 순자가 한 말을 또 들려준다. '군자지학비위통야 위궁이불곤 우이의쇠야 지화복종시이불혹야(君子之學 非爲通也 爲窮而不困 憂而意衰也 知過福終始而不惑也·군자가 학문을 하는 목적은 영화를 누리며 살기 위해서가 아니고 어려운 처지에서도 곤혹스러워하지 않고 우환을 겪으면서도 의지가 꺾이지 않으며 마음이 미혹되지 않기 위해서다)'.
재차 홍자성이 지은 '채근담'에 한 구절을 알려준다. 진렴무염명 입명자 정소이위탐 대교무교술 용술자내소이위졸(眞廉無廉名 立名者 正所以爲貪 大巧無巧術 用術者乃所以爲拙·참으로 청렴함에는 청렴하다는 이름조차 없으니 그런 이름을 얻으려는 것부터가 바로 그 이름을 탐욕함이다. 참으로 큰 재주가 있는 사람은 별스러운 재주를 쓰지 않으니 교묘한 재주를 부리는 사람은 곧 졸렬함이다)
청렴을 강조하고 다니는 사람은 실은 명예욕이 강한 사람이다. 깜짝 놀랄 만한 재주를 가진 사람은 함부로 그 재주를 자랑하지 않는다. 재주를 자랑하는 사람은 그 재주가 미숙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일 뿐이다.
그가 독자를 위해 '학철부어'란 휘호를 써주었다. '수레바퀴 자국의 괸 물에 있는 붕어'라는 뜻으로 매우 위급한 처지에 있거나 몹시 고단하고 옹색한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위정자가 가슴에 새겨 두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믿는 구석이 있는 자가 아니라 믿는 구석이 없는 자를 먼저 생각하는데서 정치의 미래가 형성된다'는 의미로 들렸다.
그래서 그는 지금 세상을 '명고난부(名高難剖)' 시절이라 규정한다. 이름만 번드르르할 뿐 그 알맹이가 없는 시절이란 의미다. 그 삶의 궁극점이 더없이 궁금해지는 경자년의 초입이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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