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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정해준의 정원 인문학] 페르시아인의 낙원

2020-01-31

사막 속에서 누리는 파라다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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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이스파한 이맘광장. 〈출처 Wikimedia〉

사막, 불모의 땅, 그리고 분쟁으로 우리에게 각인된 아라비아반도. 이곳을 텃밭 삼아 화려한 정원의 지상낙원을 건설하고, 서구권에 정원문화를 전수하고 확산시켰던 민족이 있었으니 바로 페르시아인들이다. 사학자이자 페르시아 예술 전문가인 아서 포프는 "모든 페르시아인들의 마음 모퉁이에는 정원이 있다"라고 할 정도로 페르시아 문화권의 중심에는 정원이 있었다. 정치와 경제, 민족과 종교 간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세계의 화약고', 연일 국제뉴스에 보도되는 참혹한 사건이 계속되는 그곳이, 아이러니하게도 지상낙원 '파라다이스 가든'의 발원지였던 것이다.

거대 제국으로 성장한 페르시아
불모의 땅에 정원문화 널리 확산
탁월한 원예기술 지상낙원 건설

시원한 수로옆 진귀한 동·식물
아름다운 왕의 정원 동경의 대상
정의롭게 살면 내세에 받는 천국

수로·화단 사분원 장식의 카펫
적막한 사막 유목민 이상향 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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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명대 생태조경학과 교수

페르시아는 기원전 539년 키루스 대제(B.C. 590~530)가 현재 이란 남서부의 파르스(Fars)에 제국 최초의 수도를 건설하면서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수메르와 아카드의 뒤를 이어 바빌로니아로 이어지던 메소포타미아가 종결되고, 패권의 중심이 동쪽의 아라비아반도로 이동한 것이다. 페르시아는 동쪽으로 중앙아시아, 서쪽으로 지금의 터키, 남쪽으로는 이집트, 인도에 이르기까지 거대 제국으로 성장한다. 긴 세월 외세의 지배와 간섭 속에 살았던 유대민족의 경전이자 역사서인 구약성서에는 다른 나라 왕들은 여지없이 악당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구약성서에 '고레스'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키루스 대제는 유일하게 긍정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키루스는 바빌로니아를 정복하고 노예로 잡혀있던 유대인들을 해방시키고, 고향으로 돌아가 예루살렘에 성전을 세울 수 있도록 허락한다. 키루스는 종교적 관용과 다른 민족에 대한 배려가 뛰어난 관대한 군주로 칭송받았으며, 이는 개방과 융합으로 성장한 페르시아 제국의 기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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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분원 정원 조성을 감독하는 무굴 인도 초대황제 바부르 모습이 담긴 그림.(1590년, 빅토리아알버트박물관 소장) 〈출처 Wikimedia〉

페르시아 제국의 수도 파르스 지역은 북쪽 고원지대를 제외하고는 엄한과 혹서의 불모지였다. 그러나 키루스 대제와 그로부터 시작된 아케메네스 왕조의 후대 왕들은 온갖 악조건 속에서도 정원을 가질 정도로 정원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다. 타 문화에 개방적이었던 페르시아는 탁월한 원예 기술을 바탕으로 에덴동산보다 더 아름답다던 메소포타미아의 정원 조성법과 물관리 기법을 배워 국토 곳곳에 탁월한 정원을 조성하였다. 고원과 황야의 강하고 메마른 바람을 피해 높은 담장을 두른 페르시아 왕들의 정원에는 깨끗하고 시원한 물이 졸졸 흐르는 수로 옆으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진귀한 식물과 동물로 가득 차 있었다. 페르시아인들은 이들 왕의 정원을 Pairi(둘러싸다)와 Diz(담장, 형태를 만들다), 즉 담장으로 둘러싼 정원이라 하여 '파이리데자(Pairidaeza)'라 불렀다. 세상 밖 이야기에 관심이 많았던 고대 그리스의 학자들에게 담벼락 높은 페르시아 왕들이 정원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왕도, 담 높은 화려한 정원도 없던 그리스인들에게 페르시아 왕들의 정원을 기록하기에 마땅한 단어가 없었다. 우리가 외래어를 소리 나는 대로 들여오듯이, 그리스인들은 정원을 뜻하는 고대 페르시아어 '파이리데자(Pairidaeza)'를 발음에 따라 '파라데이소스(Paradeisos)'라 하였다. 시간이 흘러 그리스인들은 유대민족의 경전인 구약성서도 번역하게 되는데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였던 에덴 동산을 번역하기에도 마땅한 단어가 없었다. 이때 예전에 페르시아 왕들의 정원을 지칭했던 파라데이소스를 빌리게 되고, 이후 고대 그리스와 기독교 문화를 기반으로 성장한 서구사회에서 '파라다이스(Paradise)'라는 개념으로 확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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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그라나다의 제네랄리페 수로의 정원. 〈출처 Wiki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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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든 카펫(17세기, 크라쿠프 국립박물관). 〈출처 Wikimedia〉

기원전 6세기 페르시아인이 아라비아반도의 패권을 차지하게 되면서, 페르시아에서 발원한 조로아스터교(Zoroastrianism)의 교세 또한 확장되었다. 조로아스터교는 야외의 성소에 불의 제단을 가운데 놓고 제사를 거행하였다. 불을 숭상한다 하여 배화교(拜火敎)로도 불리는 조로아스터교에서 거룩한 불(聖火)만큼이나, 광명에 비친 모든 사물의 순전한 청결을 위해 맑고 깨끗한 물 또한 매우 중시하였다. 자연스럽게 페르시아 왕의 정원에 풍부한 물을 공급하는 것은 꽃과 나무를 키우는 것을 넘어 성소로서의 의미 부여와 정원을 더욱 풍성하게 하는데 필수였고, 수로, 못, 분수, 폭포 등의 수경시설이 파라다이스 가든을 압도하였다.

페르시아가 발명한 위대한 발명품 가운데 수로가 교차하여 4개의 구역으로 갈라진 정원, 즉 사분원(四分園, Four Gardens)이 있다. 차르바그(Charbagh)로 불리는 사분원은 벽으로 둘러싸인 네모난 정원 한가운데 분수나 작은 연못이 자리 잡고, 솟아오른 깨끗한 물이 수로를 따라 십자형으로 사방으로 뻗어 나간다. 4개로 분리된 화단에는 석류·호두·감·귤의 나지막한 나무와 아름다운 꽃이 심어져 활력을 더하거나, 때로는 물을 감상하기 위해 온전히 비어 있기도 하였다. 4개의 수로는 정원의 꽃과 나무에 물을 효율적으로 주기 위한 편의성과 수로에서 증발한 수증기가 대기의 열을 빼앗아 정원을 시원하게 하는 목적도 있지만, 무엇보다 상징적 의미가 컸다. 조로아스터교의 세계관에서 세상은 하늘·땅·물·나무의 4요소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그들의 정원에 대한 열망은 페르시아의 명물, 카펫에서 알 수 있다. 뜨거운 낮에 비해 엄동의 밤인 사막을 견디는 데 있어 지면에서 올라오는 냉기를 막는 두꺼운 양탄자는 필수였다. 페르시아의 카펫은 그 화려한 장식이 유명한데, 대표적 장식이 바로 4개의 수로와 4개의 화단이 수놓아진 사분원이었다. 비록 떠돌이 생활로 정원을 가질 수는 없지만, 사분원 카펫 위에 앉아 있음으로 아름다운 정원 속 나를 상상하고 현실의 고단함을 잊었던 것이다.

예언자 무함마드에 의해 성장한 이슬람 제국이 7세기 페르시아 사산 왕조를 정복하면서, 페르시아는 이슬람 세계의 일부로 흡수된다. 파라다이스 정원은 이슬람교 신자들에게 현세의 고단함을 이겨내고 정의롭게 살면 내세에 상으로 받게 되는 천국으로 여겨졌다. 낙원, 파라다이스 가든은 삶의 최종 목적지이자 영원한 생명과 기쁨의 약속의 장소였다. 이슬람교의 성서인 코란에는 파라다이스(낙원)가 130번 이상 언급되고 정원의 모습으로 구체적으로 묘사된다. 코란에서는 천국을 여러 개의 작은 정원이 서로 이어진 큰 정원으로 인식된다. 코란 55장에는 '심판대 앞에 서게 될 때… 두 개의 정원이 있나니… 두 개의 천국 외에도 다른 두 개의 정원이 있다'고 하는데, 이를 근거로 작은 사분원이 칼리프의 궁전은 물론, 단순한 주택, 여인숙, 시장 등에 만들어졌다. 이들 작은 사분원 4개가 수로나 길로 연결되어 큰 사분원이 되고, 또 합쳐져 더 큰 사분원이 되는 기하학적 무한증식을 통해 도시 전체가 정원이자 이슬람의 이상향, 지상낙원이 된 것이다. 이슬람 제국의 확장과 함께 페르시아의 파라다이스 정원은 인도의 무굴 제국이나 북아프리카의 무어인 지역, 스페인과 같이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곳까지 전수된다.

계명대 생태조경학과 교수 hj.jung@kmu.ac.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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