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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왜'라는 질문

2020-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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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 번씩은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질문이 아닐까. '왜'라는 질문. 삶의 현장이란 그 누구에게도 호락호락하지 않으니, 그런 일상에 지칠 때면 저도 모르게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내가 지금 이걸 왜 하고 있는 거지? 과연 내가 하려던 게 이게 맞나?'

행위 자체보다는 그 행위를 하고자 하는 의도와 개념이 그 무엇보다 우선되는, 나를 포함한 예술계 종사자·창작자들에겐 위와 같은 질문의 빈도가 더 높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맞다. 이 힘든 걸 왜 할까. 사실 예술활동이라는 건, 달성해야 할 목표를 두고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도저히 하지 않고선 참을 수 없어서' 하게 되는 것이다. 저마다의 표현하고 싶은 가치와 드러내고 싶은 비밀이 작품으로 세상과 만나는 것이 예술활동이라 배웠고 또 알고 또 가르쳐 왔었다. 이젠 좀 옛 이야기가 된 것도 같지만 말이다.

언제부턴가, 예술활동이 '어떠한 가치를 추구하기 위한 수단'의 성격이 짙어졌다. 스스로 가치를 발할 수 있는 환경이 올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대체로 회의적이다. 물론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써의 예술활동이 나름의 가치를 발현하는 것과 예술활동 자체의 가치를 회복하는 것, 둘 다 옳고 그름의 기준으로 바라볼 일은 아니지만 말이다.

어떤 방향이 되었든 이제 예술활동은 하나의 산업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이는 자본주의 안에서의 경쟁구도에 들어섰다고 봐야 할 것이다. 물론 아직도 기초예술, 순수예술, 대중예술, 상업예술 등의 용어가 통용되고 있지만, 과연 명확하게 구분지을 수 있는 경계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 되지 않았나 싶다.

어느 쪽을 선택할지는 각자의 몫이지만, 그 선택 안에서의 생존 그리고 가치의 보존과 획득 등의 숙제는 저마다의 예술가, 예술단체의 공통된 숙명이 아닌가 한다. 이제 더 이상 '개인적 취향의 창작(생산)과 개인적 취향의 소비'로는 정의할 수 없게 되어버린 예술활동이 저마다의 방법과 가치를 가지고 다양하게 자리잡았으면 좋겠다.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모두가 똑같은 모습과 똑같은 방법으로 행해지고 또 존재하는 것이 못내 안타깝고 서글픈 건, 비단 종사자들의 마음만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전호성 (플레이스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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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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