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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칼럼] 기생충과 바이러스가 만드는 세상

2020-02-19

기생충 수상에만 열광하고
사회적 불평등·모순 그대로
선거·광고용으로만 활용돼
영화 '기생충' 숙주로 삼아
표몰이 나서는 후보 없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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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몸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다종다양한 미생물에게 삶의 터전을 내어주며 그들과 공생관계를 구축한다. 몸 전체 세포의 약 95%에 조(兆)단위의 미생물이 활동한다고 하니 이 '공생자(symbionts)'들은 우리 몸을 구성하는 필수불가결한 요소이자 협조자이다. 그러나 미생물 중엔 인체에 침투하여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며 생존하는 소위 '기생자(parasite)'도 다수 존재한다. 이들은 우리 몸을 잔칫상 삼아 생존을 도모하는 비우호적 약탈자로서 흑사병, 천연두 등은 세계사를 바꾼 공포의 살인자로 유명하다.

인류 역사에서 전염병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전쟁의 그것을 압도하였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흑사병은 14세기 유럽 인구의 1/3을, 15세기 유럽인들이 미주 대륙에 퍼뜨린 천연두는 많게는 1억명에 달하는 원주민을 살해하였다. 이러한 사망은 단순히 생물학적 현상에 머물지 않는다. 흑사병은 중세유럽 봉건사회의 몰락을 알리는 조종(弔鐘)이었고, 천연두는 아메리카 대륙 원주민의 토착 문화의 몰락과 더불어 변종 유럽 문화를 생겨나게 하였으며, 천연두로 인해 전체 인구의 3/4이 사망한 잉카제국은 그 나라와 문화가 멸절되기까지 하였다.

따라서 인류 역사는 외부의 가시적인 적들과 벌이는 전쟁 이상으로 인간의 몸에 기생하는 병원체들과 벌이는 전쟁으로 점철되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다행히 최근 의료수준의 향상으로 희생자 수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바이러스와 박테리아는 인간보다 더 영리하고, 점점 더 똑똑해진다"는 학자들의 말처럼 신종 병원체의 출현은 계속될 것이다. 또한 인간이 벌인 수많은 전쟁과 교역 및 약탈적 자연개발, 그리고 최근 코로나19의 사례처럼 기이한 식도락의 욕망도 신종 병원체를 인간사회로 끌어들이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따라서 인간의 욕망 절제와 자연생태계의 복원 없이 전염병의 근절을 바라는 것은 헛된 꿈에 불과하다.

영화 '기생충'은 오늘날 극단적으로 양분된 인간 생태계의 파열음을 '사회적 기생충'으로 묘사된 '기택 가족'의 기생적 생존방식을 통해 촌철살인의 영상으로 구현함으로써 세계인을 열광케 하고 있다. 그러나 감독의 의도와 달리 축배의 잔에 가려진 우리 시대의 극단적 불평등과 이로 인한 사회적 모순에 대한 성찰과 치유의 노력은 찾아보기 힘들다. 휘발성 강한 소비재로서 아름다운 영상과 언동에 열광할 뿐, 경제적 불평등의 해소를 통해 세상 바꾸기를 꿈꾸는 이 영화의 화두는 희미해지고 있다. 반지하방을 비롯한 촬영 장소는 관광 상품으로 탈바꿈하며, '짜파구리'는 은근슬쩍 상품의 반열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을 뿐이다.

가관인 것은 봉준호와 송강호를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올려 표현의 자유를 억압했던 일부 정치인들이 일고의 반성과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아카데미상 수상이 마치 자신들의 공적인 양 변검의 마술을 보이며 상찬(賞讚)의 대열에 끼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대구와 서울의 총선 예비후보들 중에는 봉 감독의 출생과 성장 또는 활동 지역이 자신들 지역구와 유관하다는 점을 내세워 봉준호기념관, 봉준호공원, 봉준호거리, 시네봉준호센터, 봉준호명예의전당, 봉준호영화박물관 등의 건설 공약에 골몰하고 있다. 조만간 대구와 서울은 봉준호 마케팅 거리와 건물로 넘쳐날 지경이다.

이처럼 영화 기생충을 숙주로 또 다른 총선 표몰이용 기생충이 생겨날 기세를 봉 감독은 알고 있을까. 이보다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더불어 반지하방에서 하루하루 힘들게 지내고 있는 지역구민에 대한 대책을 공약화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지 않을까.

윤재석 (경북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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