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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김남희의 그림 에세이] 조속, '고매서작(古梅瑞鵲)'

2020-02-21

매화와 까치가 부르는 봄의 이중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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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속, '고매서작', 종이에 수묵, 100.0×55.5cm, 간송미술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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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 겨울이 진다. 진분홍빛 호접란(胡蝶蘭) 꽃같이. 호접란이 늦가을 우리 집에 와서 입춘을 맞이하고도 큰 꽃망울로 거실을 밝히고 있다. 여덟 송이 꽃대에서 핀 꽃이 자연의 순리에 고개를 숙이듯 스르륵 지고 있다. 꽃 떨어지는 소리에 깜짝 놀라서 숨을 죽인다. 한 철을 곱게 밝힌 진분홍색 호접란 꽃이 나와 봄을 맞는다.

따듯한 남녘에서 매화가 봄을 터트렸다. 창강(滄江) 조속(趙涑, 1595~1668)의 '고매서작(古梅瑞鵲)'을 보면서 매화를 찾아 나선다. 단아한 매화나무에 앉아 매화 감상에 푹 빠진 까치가 있다. 매화는 봄을, 까치는 반가운 소식을 전하기에 '고매서작'은 희소식의 전령사다. 조속 작품의 정수를 보여주는 명작이다.

조속은 홍문관에서 재직한 증조부와 조부를 둔 서인(西人) 학맥의 가문에서 태어났다. 부친 조수륜(趙守倫, 1555~1612)은 우계(牛溪) 성혼(成渾, 1535~1598)의 학문을 계승한 사림(士林)의 유학자였고, 그런 부친에게 학문과 글씨를 배운 조속은 사림의 학문을 승계받았다. 그의 나이 18세 때 부친이 역모에 연루되어 옥사한다. 가세가 기울고 불행한 시절을 보낸 조속은 인조반정에 참여하여 성공하자 부친의 명예를 회복하고 가문을 일으킨다. 나라에서 추진한 공신에 이름을 올리는 것을 사양하고, 가족의 생계를 위해 지방에서 관직생활을 한다. 그의 곧고 청빈한 삶은 항상 끼니를 걱정하게 만들었지만 고매한 인품은 모든 사람에게 귀감이 되었다.

조속은 벼슬을 출세의 방편으로 삼지 않고, 당파의 경계를 두지 않았다. 그의 주위에는 당대의 지식인과 예술가들이 넘쳐났다. 남인(南人)의 총수 미수 허목(許穆, 1595~1682)과 서인의 대표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1607~1669) 등과 어울려 모임을 가질 정도로 성품이나 학문이 출중하였다.

17세기의 화단은 중국과의 교류를 통해 남종화풍과 절파풍을 수용한다. 서인계 문사관료들을 중심으로 성리학적 이념정치가 팽배하고 문인 집단은 명승지를 유람하며 자연을 즐기는 풍조가 성행한다. 골동품과 서화 감상이 유행하고, 심미적이며 탈속적인 문인문화가 확산되기 시작한다. 조속은 사회, 문화 전반을 이끌었던 문사들과 교유를 통해 문화를 선구적으로 향유하며 이끄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조속은 산수, 영모, 매화, 대나무 등에 능하여, 그의 작품을 얻으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고매서작'은 고목나무 둥치에서 뻗어 나온 가지에 몇 송이의 매화가 앙증맞게 피어 있는 작품이다. 매화 향기에 취한 까치는 허공을 바라본다. 화면 아래에는 담묵으로 대나무를 바람처럼 휘날리게 그렸다. 그 사이로 매화나무가 오른쪽으로 쭉 뻗었다. 잔가지는 아래의 왼쪽 공간으로 처리하여 매화의 고결함을 살렸다. 중간의 화면을 뚫고 오른 매화 가지는 힘 있고, 단정하다. 매화나무 둥치에 앉은 까치는 수려하고 말쑥하다. 그림이 맑고 정숙하여 조속의 인품을 보는 듯하다.

표현에도 군더더기가 없다. 대나무는 담묵(淡墨)으로, 매화는 담묵과 농묵(濃墨)을 조화롭게 사용하여 은근하면서도 깔끔하다. 까치의 형상을 농묵으로 정확하게 표현하였다. 앙다문 부리와 영리한 눈망울, 검은 깃털과 흰 깃털이 어우러져서 까치에 시선이 모이도록 했다. 길게 내린 꼬리는 수직으로 빠르게 붓질하여 강한 맛을 살렸다. 고목과 나뭇가지에 농묵을 찍어 포인트를 주었다. 간결하고 절제된 묵법으로 안정감 있는 화면을 연출했다.

영모와 매화, 대나무를 잘 그린 조속의 재능이 한껏 발휘된 작품이다.

조속은 작품을 남기는 것을 싫어했고, 그림에 낙관을 하지 않았다. 다행히 화첩 '창강유묵(滄江遺墨)'과 서화첩인 '영사첩(永思帖)'이 후손에게 전해져 그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화첩에는 영모작품 12점과 조속의 아들 조지운(趙之耘, 1637~1691)의 작품 4점이 수록되어 있다.

찬 바람이 좋아서 아침 일찍 산을 오른다. 아침 산에는 유난히 새소리가 맑다. 여러 종류의 새들이 합창을 한다. 정상에 앉아서 쉬고 있으니 새 한 마리가 나뭇가지에 앉아서 나와 같이 먼 산을 바라본다. '고매서작'이 바로 내 앞에 있다. 머지않아 나무에 잎이 돋아나면 새들의 울타리가 되어줄 것이다.

화가 2572k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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