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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1급지 중앙통 양복점거리 50여개 업소 경쟁하며 주름…현재 네 곳만 남아 명맥

2020-02-28

■ 대구섬유 어제와 오늘

◆섬유회관 & 섬유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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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유 특수와 함께 동고동락한 그 시절 재봉틀. 대구섬유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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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섬유 절정기인 1978년, 서문시장 근처에 세워진 '섬유회관'.

대구 중구 동산동 국일생갈비 옆 섬유회관(1976년 8월20일 오픈)은 바로 대구 섬유의 영광을 상징하는 당시 대구 최고층 빌딩이다. 69년 태어난 10층짜리 대구백화점보다 훨씬 높은 17층. 입구에 흉상이 하나 서 있다. 바로 이 회관 건립에 지대한 공헌을 한 당시 견직물조합이사장 겸 대원섬유 대표였던 최익성이다. 한창 때는 60여 섬유 업체가 입점해 있었다. 현재는 많이 빠져나가 10여 업체만 남아 있다. 여기 업체는 원단이 아니라 대다수 원사 메이커들이다. 2017년 조사결과 대구의 섬유공장은 657개로 전국(5천328개)의 12.3%.

대구 섬유의 상징물은 대구국제공항과 대구섬유박물관 앞에 세워져 있다. 대구국제공항에 조성된 스테인리스스틸로 만들어진 얼레와 타래실 조형물은 2001년 공항 준공 기념으로 채택된 공모작품이다. 다시 동구 봉무공원 한국폴리텍대학 맞은편에 잿빛 날갯짓을 하고 있는 대구섬유박물관(관장 박미연)으로 갔다. 건물 입구에 이상태 작가가 제작한 바늘과 실을 모티브로 한 옥외 상징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천장까지 뚫려 있는 건물 중심부에는 '고요속의 움직임'이란 수정 누에고치로 패션을 형상화한 박인숙 작가의 작품이 공중에 매달려 있다.

2015년 5월에 개관된 이 박물관은 섬유패션 비즈니스 마케팅 활성화를 위한 '비즈니스센터', 패션쇼 및 제품발표회를 할 수 있는 '다목적홀'과 함께 엮여 있는 대구텍스타일콤플렉스(DTC)의 한 공간이다. 대구 섬유는 물론 한국 섬유산업이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게 됐는가를 원스톱으로 보여주는 국내 유일의 섬유 주제 박물관이다. 이 박물관은 한국섬유개발연구원, 한국섬유산업연합회, 대구패션산업연구원, 섬유기계협회, 섬유마케팅센터, 다이텍연구원, 하이테크섬유연구소, 한국섬유기계융합연구원 등과 연계돼 있는 현재 대구섬유산업의 심장이랄 수 있다.

2층 패션관에는 다양한 기증품이 전시된다. 노라노, 미스김테일러(디자이너 고 김선자), 이노센스(천상두), 박동준, 루비나, 이영희 등 국내 패션1세대 디자이너와 지역 업체 등으로부터 2천300여점을 기증받았다. 최근 작고한 박동준의 프리다칼로를 모티브로 한 원색적인 기증품이 눈길을 끈다.

산업관에 가면 바늘, 실, 골무, 가위 등 바느질 도구를 담아두는 반짇고리, 명주다리미, 홀치기틀, 낙하산줄을 재활용한 블라우스, 제일모직의 첫 양모로 만든 장미표 원사, 코오롱의 100억달러 수출기념패, 그리고 나일론 양말 등을 볼 수 있다.

가장 나를 놀라게 한 곳은 4층 미래관. 탄소비행기, 연료탱크, 타이어코트지, 바이오셔츠, 메디컬섬유, 페트병을 재활용한 리사이클 섬유, 대나무티셔츠, 화산재의류, 코코넛의류, 투명망토…. 이게 과연 섬유로 만든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의 첨단특수섬유도 감상할 수 있다.

76년 대구 최고층 빌딩 건립 섬유회관
한창 때 60여곳 입점, 현재 10곳 남아
韓 섬유산업 변천사 대구섬유박물관
지역 디자이너·업체 등 기증 2300여점
탄소비행기 등 첨단특수소재도 감상

국내 첫 벨벳직물 개발 대구영도벨벳
수출국 전환·특수 IT 벨벳 24개 특허
전국 최대규모 양복지 전문 대구모직
세계 최고 고급천 제일모직 '란스미어'

대구 첫 양복명장 베르가모 김태식대표
75여년 이어온 가장 오래된 영진양복점
패션1세대 최복호 '섬유=문화' 마케팅


◆영도벨벳

대구 섬유 세계화, 그 정점에 <주>영도벨벳이 있다. 1960년 대구에서 창업, 한국 최초로 벨벳직물을 개발하여 79년 미국으로 첫 수출한다. 한국을 벨벳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전환시킨 발판이었다. 현재 사령부는 구미산단에 있다.

70년대는 아세테이트 벨벳, 80년대는 면 벨벳, 90년대는 물세탁 벨벳인 초극세사 폴리벨벳을 세계 최초로 개발한다. 급기야 휴대폰 화면 제작에 없어서는 안될 LCD용 특수 IT벨벳, 벨벳 벽지 등 영도는 모두 24개의 특허를 얻는다. 현재 원단의 명칭은 '쓰리이글'.

2012년 유병선 회장 자택 바로 옆에 섬유복합문화공간인 '영도다움' 벨벳 갤러리를 오픈한다. 벽체를 온통 벨벳지로 치장했다. 지하는 패션쇼도 가능한 컨벤션홀, 1층은 벨벳 카페, 2층 아트숍에 가면 벨벳패딩, 핸드백, 우산, 액자, 침구세트 등 벨벳의 활용이 어디까지 가능한가를 다 보여준다.

◆양복지 산증인 대구모직 김창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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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서문시장 4지구 원단상가의 산증인 중 한 명으로 제일모직 원단과 함께 해오면서 1988년 동아백화점 근처로 이전한 대구모직 김창환 사장. 대구에서 가장 많은 원단을 보유하고 있다.

현재 전국 최대규모의 양복지 전문점을 지키고 있는 데가 바로 동아백화점 근처에 있는 '대구모직'이다. 70대 중반인 김창환 사장은 72년 서문시장 4지구 2층에서 개업을 한다. 처음에는 '대구라사'로 시작했다. 88년 시장에서 벗어나 지금 자리로 이전을 한다.

그가 그 시절 주름잡던 양복지 브랜드를 다 알려준다.

"서문시장 4층은 전국 최강의 양복지 전문상가였어요. 제일모직이 만들어 준거나 다름없죠. 당시 유통되는 양복지의 반 이상은 제일모직이 독점하다시피 했어요. 그 뒤를 경남모직 K 앙고라텍스, 대한모방의 카멜텍스, 태광산업의 피존텍스, 원풍모방의 킹텍스 등이 메이저 양복지로 한시절을 풍미합니다."

당시 충북라사, 서울라사 등과 양복지 춘추전국시절을 구가한다. 제일모직 계열점 사장끼리 모임을 만든다. 대구는 일모회, 서울에서는 경일회, 부산은 부일회. 한창 때 제일모직 대구 출장소가 서문시장 옆 계성빌딩에 있었다. 하지만 경기가 하강하자 계열점 체제가 사라지고 본사 대리점체제로 넘어간다.

현재 술레인, 마르체, 템테이션, 카스텔, 보나비또 등 여러 양복지를 구비해 놓고 있다. 그가 제일모직 최고급 천을 보여준다. 이탈리아와 영국의 선진 섬유업체들을 제치고 2003년 출시된 '란스미어 230'.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천 중 하나다. 양모 가공 729 등급 중 초극세사 공법이랄 수 있다. 모두 4종류인데 1등급은 1마에 300만원, 고급 양복점에서 만들려면 수 천만원.

◆양복점의 어제와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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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첫 양복 명장인 김태식 베르가모양복점 대표.

한국맞춤양복협회는 광복 직후부터 세를 형성하다가 50년 전 노동청 사단법인1호 단체가 된다. 그동안 24명의 회장이 있었지만 대구 출신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런데 2018년 25대 회장은 대구에서 나왔다. 바로 대구 첫 양복 분야에서 명장이 된 베르가모 양복점 대표 김태식. 그는 2018년 대구에서는 처음으로 아세아주문양복연맹 총회가 열리도록 산파역을 했다.

현재 대구에서 가장 오래된 양복점은 시내 부산안면옥 옆 '영진양복점'. 1945년 정순도가 제일극장 맞은편에 문을 열었고 이어 가업은 80년 정은녕을 거쳐 전속 재단사 김익주에 의해 이어지고 있다. 2010년 현재 자리로 이전했다.

그 시절 중앙통 양복점거리에 가면 영진, 세림, 모모, 진흥, 만우, 서라벌, 봉봉, 대창, 일신, 멍텅구리, 유한, 문화, 천일, 경양, 백양, 신도, 백구 등 50여업소가 주름잡았다. 당시 양복점도 급지가 있었다. 1급지는 중앙통, 2급지는 동성로와 동아백화점 앞거리, 나머지 변두리는 3급지로 불렸다.

김태식은 67년 외사촌형이 경영하던 서문시장 내 '대진양복점'에서 첫발을 디딘다. 이후 만우, 그리고 동성로 태광라사 재단사를 거쳐 84년 중앙로 아카데미극장 맞은편에서 '김태식테일러'를 오픈한다. 그는 이후 동아양봉원 옆에 이어 2002년 옛 중식당 만리장성 맞은편 쪽으로 이전한다.

20년 전부터는 아내까지 그의 일을 돕고 있다. 5㎝ 이상 닳아버린 반세기 전의 재단용 가위를 자랑스럽게 보여주며 그시절 명인을 알려준다. "세림(유시석), 영진(정순도), 멍텅구리(김정발), 진흥(마숙명), 봉봉(곽종한) 등이 메이저그룹을 형성했죠."

이제 중앙통에 남은 양복점은 네 곳뿐이다. 런던, 이글, 형제, 화림.

특히 70년대 동아백화점 네거리 포정동은 양장점의 거리였다. 그 리더는 오스카와 자매양장점이었다. 칠성제화와 분홍신도 특수를 함께 즐겼다. 포정동 골목을 오래 지켰던 패션디자이너 허윤정은 사라진 김선자와 박동준의 뒤를 힘겹게 지키고 있다.

◆마지막 남은 패션1세대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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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으로 왕성하게 활동을 하고 있는 대구 패션1세대 디자이너인 최복호.

최복호(71). 그는 지금 마지막 남은 1세대 패션디자이너. 서울 국제복장학원 출신으로 서울 이화여대 근처에서 디자이너로 첫발을 디딘다. 이후 74년 동아백화점 2층에 '아름다운사람들'이란 브랜드로 자기 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70년대 반도패션, 그리고 제일모직의 국내 첫 여성 기성복 브랜드인 라보떼 등 잇따라 대기업발 기성복 시장이 형성되면서 맞춤복시대는 직격탄을 맞는다. 2000년대 넘어 글로벌 SPA 그룹인 유니클로, 자라 등의 급습을 극복하기 위해 2008년 청도에 복합문화공간격인 '펀 앤 락', 지난해 8월에는 서문시장 근처 한 공장터에 문화공장 '나나랜드'를 오픈했다. 대구섬유의 부침과 함께 한 그는 '섬유=문화'란 등식을 앞세우고 새로운 반전 마케팅을 시도한 것이다. 대구섬유도 나나랜드스럽게 붐업될 수 있을 것이다.

대구 첫 패션쇼는 59년 한국복장학원을 차린 김양순이 63년 반월당 현대예식장에서 열었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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